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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홀하도다,고전적 우아함의 극치!<파 프롬 헤븐>
■ Story

1957년 코네티컷 하트포드. 이곳에서 모범적인 여성으로 평판이 높은 캐시(줄리언 무어)는 남편과 두 아이들과 함께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다. 늦게까지 일하고 있는 남편 프랭크(데니스 퀘이드)를 위해 도시락을 싸들고 남편의 회사를 방문한 캐시는, 한 남자와 애무를 나누고 있는 남편을 발견하고는 충격에 빠진다. 프랭크는 캐시의 충고를 받아들여 정신과 치료에 응하기로 한다. 하지만 프랭크는 자신의 동성애적 욕망을 끝내 억제하지 못한다. 한편 캐시는 그녀의 집 정원사였던 죽은 아버지를 대신해 정원을 가꾸고 있는 흑인 레이몬드(데니스 헤이스버트)에게 호감을 갖게 되는데, 이웃의 사람들은 캐시와 레이몬드의 관계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며 악의적인 소문을 흘린다.

■ Review

다행스럽게도, 아주 가끔은 우리에게도 이런 영화와 만날 기회가 주어진다. 매우 지적이고 아름다운 영화 <파 프롬 헤븐>은, 의심의 여지없이 올해 우리가 스크린을 통해 이제까지 접할 수 있었던 모든 영화들을 다 합한 것보다도 더욱 풍성하고 황홀한 경험을 제공할 것이다. 단 우리가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인물들의 감정을 온전히 믿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는 전제하에서... 어쩌면 할리우드 고전기의 멜로드라마, 혹은 더글러스 서크(혹은 데틀레프 시에르크)의 세계에 익숙하지 않거나 그의 영화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 위와 같은 진술은 그저 호들갑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여겨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파 프롬 헤븐>은 표피적인 인용과 장르 뒤틀기를 통해 영화적 기억을 과시하고 비꼬는 듯한 웃음을 드러내 보이는 게 아니라, 매우 사려깊은 태도로 할리우드 고전장르의 미덕- 이를테면 표면적인 서사구조 뒤에 감춰진 불안과 히스테리를 배치하는 스타일상의 요소들- 을 소중히 받아들인다. 즉 외부로부터의 침투를 통해 장르를 파열시키는 대신, 안으로부터의 조심스러운 확장을 통해 고전기 장르의 무의식과 우리 동시대의 인식이 소통할 수 있는 미세한 구멍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파 프롬 헤븐>의 서사는 서크의 영화 가운데서도 특히 상류계층의 미망인과 정원사 아들과의 사랑을 그린 <천국이 허락한 모든 것>(1955)- 과거에 <순정에 맺은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국내 개봉되었다- 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토드 헤인즈는 이를 상류계층 사교계의 여왕 캐시와 그녀의 흑인 정원사 레이몬드와의 로맨스로 변주함으로써 서크의 다른 영화 <슬픔은 그대 가슴에>(1959)에서의 인종문제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것을 가능케 한다(또 <천국이 허락한 모든 것>을 번안한 파스빈더의 영화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1973)를 동시에 환기시킨다).

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인물 가운데 하나는 캐시의 남편 프랭크인데, 그는 동성애적 욕망 때문에 그간 쌓아올린 명성과 자신의 가정이 위협받는 것에 대한 공포로 시달린다. 그는 자신의 욕망을 ‘병’으로 해석하며 아내 캐시와 함께 정신과에 찾아가 치료를 부탁하기도 하는데, 아내와 관계를 갖는 데 실패한 그가 머리를 감싸쥐고 괴로워하는 부분에서 예기치 않게 (역시 더글러스 서크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바람에 쓴 편지>(1956)의 재벌 2세 카일 해들리의 모습을 떠올리게 되는 것은 매우 당혹스러운 경험이다. 토드 헤인즈는 서크의 영화에서 매우 모호하게 나타났던 게이 정체성에 관한 문제를 좀더 직접적으로 드러냄으로써 이것이 고전기 장르의 무의식 내에서 어떠한 균열을 만들어내는가를 차분히 응시한다.

물론 <파 프롬 헤븐>의 중심적 관계는 캐시와 레이몬드 사이에 놓여져 있는 것이라는 점에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 둘은 그들을 향한 하트포드 마을 공동체 성원들 각각의 시선이 만들어내는 일종의 그물망, 혹은 시선의 감옥에 포획되어 있는 존재들이다. 이러한 시선들의 감시는 공동체의 암묵적 윤리를 두 연인에게 강요한다. 딸의 댄스경연대회에 참석한 캐시를 무섭게 노려보고 있는 하트포드 여인들과 아이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시점숏은 이러한 주제를 시각적으로, 그것도 아주 소름끼치게 보여준다.

<파 프롬 헤븐>이 서크의 <천국이 허락한 모든 것>과 크게 갈리는 것은 결말부에 가서이다. 캐시와 레이몬드에게는 서크의 연인들에게 마련되었던 것과 같은 모호한 재결합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자신의 딸이 린치를 당한 뒤 급기야 레이몬드는 하트포드를 떠나기로 결심하고 기차에 오른다. 승강장에 간 캐시는 살며시 손을 들어 작별을 고하는 레이몬드의 모습을 말없이 응시한다. 아마 여기서 느껴지는 아픔에 비견할 만한 것은 데이비드 린의 소품 걸작 <밀회>(1946)에서의 이별장면 이외에 달리 없을 것이다.

이 영화가 처음 발표되고 난 뒤 여러 사람들이 지적했듯이, <파 프롬 헤븐>은 서크의 영화가 보여주었던 테크니컬러의 질감, 음영과 색채의 효과를 극대화해 이루어낸 표현적 미장센 등을 고스란히 되살려내고 있다(게다가 엘머 번스타인의 사운드트랙 또한 영화에 맛을 더한다). 즉 우리가 이 영화에서 보게 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오늘날의 우리가 거의 경험해보지 못했던 고전적인 우아함의 극치이다. 사실 <파 프롬 헤븐>을 처음 보게 될 때 이 영화는 무엇보다도 그 시각적인 황홀함으로 보는 이를 사로잡는다. 예컨대 캐시의 머플러가 바람에 날려 사라진 자취를 따라 그대로 허공을 날아 비상하는 카메라를 눈앞에서 마주하는 순간, 우리는 한번쯤 숨을 고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캐시 역을 맡은 줄리언 무어, 그녀의 남편 프랭크 역의 데니스 퀘이드, 그리고 레이몬드 역의 데니스 헤이스버트의 연기도 주목할 만하다. 덧붙이자면 <파 프롬 헤븐>은 2002년 베니스영화제에 출품되었으며, 미국 내의 평자들로부터는 거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국내에서는 제4회 전주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선정, 상영되기도 했다.

:: 멜로드라마의 장인 더글러스 서크

불안한 해피 엔딩을 멜로 품안에

<슬픔은 그대 가슴에>

<바람에 쓴 편지>

<하늘이 허락한 모든 것>

더글러스 서크는 본디 독일 태생으로 1930년대 후반 나치 독일을 떠나 미국으로 오기까지 독일의 우파(UFA) 영화사에서 감독생활을 했다. 이후 그는 할리우드에서 다수의 멜로드라마들을 만들어냈는데, 특히 1950년대 그가 자신의 팀을 이끌고 유니버설사에서 만든 일련의 영화들은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당대의 서크는 대중적으로 폭넓은 관객에게 인기를 끄는 이른바 ‘최루성 멜로드라마’를 만드는 상업영화감독으로 인식되었으며, 프랑스의 소수 지지자들을 제외하고는 미국 내 평자들 가운데 그에게 진지한 관심을 기울인 이는 거의 없었다. 그는 1959년에 발표된 <슬픔은 그대 가슴에>를 끝으로 더이상 상업영화작업을 계속하지 않았지만, 이후 정신분석학적 영화연구 패러다임에 재발견되어 중요한 거장의 지위에 올라서게 된다. 그는 말년에는 독일로 돌아가 거기서 영화를 가르치기도 했다.

언뜻 평범한 줄거리를 지닌 그저 그런 멜로드라마처럼 보이는 서크의 영화들은 여러 평자들에 의해 지적되듯이 독특한 색채감각과 조명의 활용, 기묘하게 불안감을 유발하는 미장센과 카메라워크 등의 스타일적인 요소들에 의해 평범한 멜로드라마들과 구분된다. 토드 헤인즈의 <파 프롬 헤븐>이 환기시키는 서크 영화들은 대략 <천국이 허락한 모든 것>, <바람에 쓴 편지> 그리고 <슬픔은 그대 가슴에> 등이다(이 영화들은 최근엔 EBS를 통해 모두 방영되었다). 이들 영화들은 공통적으로 다소간 모호한 불안을 감춘 ‘이상한’ 해피 엔딩으로 끝나는데, 이는 오히려 그러한 결말을 낯선 것으로 받아들이게 만들고 의심하게끔 만드는 역할을 한다고 종종 지적된다. 그외 서크의 영화 가운데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것으로는 <마음의 등불>(1954), <사랑할 때와 죽을 때>(1958) 등이 있다.

서크의 영향을 받은, 그리고 그것을 공공연히 인정한 감독으로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를 떠올릴 수 있다. 모더니스트적이고 실험적인 그의 영화들과 서크의 영향 아래 만들어진 몇몇 멜로드라마들은 분명히 양식상의 차이를 드러낸다. 파스빈더는 서크가 독일로 돌아와 영화를 가르칠 때 그를 직접 찾아가 만나보기까지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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