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피플 > 스텝 25시
`내림` 받은 조감독,<와일드카드> 정기훈
심지현 2003-06-11

김유진 감독과 정기훈(31) 조감독의 사이는 오영달과 방제수의 그것 같다. 꼭 부자관계 같다는 말이다. 무릇 현장 스탭들은 A프린트(1차 편집본)가 나오면 두손 탈탈 털고, 어깨가 가벼워지게 마련인데, 영화가 끝나도 여전히 김 감독과 한 지붕 아래서 살아야 하는 정기훈은 흥행결과까지 영 신경쓰여서 아직도 발 뻗고 잠을 못 잔다.

영화감독을 꿈꾸던 고등학교 시절을 거쳐 대학에서 단편 몇개 찍다가 충무로에 나왔을 때 제일 먼저 손을 내밀어준 이가 김 감독이었다. 김유진 감독의 <금홍아 금홍아>로 연출부 신고식을 치르면서 그는 자연스레 <약속> 현장에 합류했다. 그 즈음엔 김 감독과 한집에서 살게 됐다. 묘한 인연이랄까. 워낙 바지런하고 손발같이 일해주는 정기훈을 보며, 김 감독이 “우리집에 방 하나 남는데 같이 살까?”했고, 마침 독립할 공간이 필요했던 정기훈은 두말없이 김 감독의 별채에 들었다. 자그마치 10년을 충무로에서, 그리고 한집에서 부대낀 두 사람이었기에 부자관계를 닮았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와일드카드>의 시작은 조그만 술자리에서 비롯됐다. <약속> 이후 한동안 이야깃거리를 내놓지 못하던 김 감독이 스토리 구상을 위해 작가 이만희와 함께 충청도 어디께로 여행을 간 적이 있다. 술집에서 여독을 풀던 두 사람 곁에 우연인 듯 형사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워낙 이야기 듣기를 좋아하는 두 사람이 동석을 청하면서 <와일드카드>의 첫장이 열린 것이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울림이 있는 이야기를 원하던 김 감독은 형사 이야기가 썩 맘에 와닿았고, 여행에서 돌아온 뒤부터 이 작가의 손놀림은 바빠졌다. 정기훈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형사 파일과 사건기사들을 모았고, 드디어 퍽치기 잡는 형사들의 고달프고 눈물나는 현장일지 하나가 완성됐다.

캐릭터가 워낙 강해서일까. 방제수 역을 두고 한동안 여러 명의 배우가 물망에 올랐지만, 쉽사리 결정을 보지 못했다. 진작에 대열에 오른 정진영은 조급한 기색이 없었지만 스탭들은, 특히 정기훈은 애가 탔다. 그러다 양동근이 배역을 확정짓자 시나리오 수정(원래 방제수는 민첩하지도 노련하지도 않은 어눌한 캐릭터였다)을 거쳐 어렵게 카메라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정기훈은 김 감독의 이야기 주무르는 솜씨를, ‘내림’이라고 부른다. 국회의원보다도 적은 영화감독들을 그러한 ‘내림’을 받은 특별한 존재로 생각한다. 사물과 인간을 바라보는 별난 시선, 정기훈은 그런 눈을 가진 감독이 되고 싶단다.글 심지현·사진 이혜정

프로필

→ 1973년생→ 백제예술대학 방송연예과 92학번→ <금홍아 금홍아> <약속> 연출부→ <와일드카드> 조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