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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1995년 봄, 서울 시내 곳곳에는 이런 플래카드가 나붙었다.

'100년을 기다려온 그 잡지가 온다'

이 호방하고 대담한 기치의 주인공은 <키노>였다.

1995년은 영화 탄생 1백주년을 맞은 해였다. 세계 각국에선 기념 다큐멘터리가 제작됐고, 많은 영화 책과 이벤트가 쏟아졌으며, 한국에선 그 해 4월 두 영화 잡지가 동시에 창간됐다. 그 하나가 <키노>이고, 다른 하나가 <씨네21>이다.

동갑내기지만, 두 잡지는 많이 달랐다. <키노>의 편집장은 영화광 1세대가 낳은 스타 평론가 정성일이었고, 그 잡지는 처음 내건 기치대로 영화사 100년의 무게를 기꺼이 짊어진 채 미학적 정치적 전위의 언어로 자신을 구축했다. <씨네21>의 편집장은 한겨레신문 영화기자였던 조선희였고, 이 잡지는 긴 동면을 마치고 깨어나기 시작한 한국영화와 영화산업에 집중하며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를 격려하고 함께 호흡하려 했다. 달랐지만, 한가지 소망은 공유했다. 영화가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당대의 정신적 문화적 자산이며, 그것은 보다 풍부해지고 깊어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8년이 흘러, 이제 우리는 한 잡지의 퇴장을 지켜보고 있다. 김소희는 <키노>의 8년을 정리하면서 “시장의 악마적 합리성이라는 벽 앞에 무릎을 꿇었다”는 표현을 썼다(35쪽). 그 글을 보면서 ‘악마적’이라는 표현이 마음에 걸렸다. 그것을 악마라고 말하고 나면 시장에서 생존한 자들은(<씨네21>을 포함해서) 모두 악마와 손잡은 자들이다. 과연 그럴까. 솔직히 말하면 확신이 서지 않는다. 실은 내게도 그건 종종 악마로 느껴진다. 시장이 악마라면 나쁜 선택만을 하기 때문이 아니라 극히 변덕스럽고 예측불가능한 선택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고치자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한국영화가 미학적 산업적으로 눈부시게 비상하고, 영화사 100년으로부터 소외됐던 한국 관객들이 비로소 20세기 영화를 체험했으며, 영화가 한국 대중문화의 황제로 군림하는 동안 <키노>는 가혹한 시장 조건과 싸워왔다. 잡지 시장은 냉혹하다. 조선희 전 편집장은 신문이 항공모함이라면, 잡지는 돛단배라는 극단적 비유로 잡지의 가혹한 생존 환경을 말한 적 있다. <키노>는 결국 그 벽을 넘지 못했다.

또한 <키노>는 더할수 없이 가혹한 노동조건과도 싸워왔다. 갖가지 발행주기의 매체 중에서 주간지의 노동조건이 가장 열악하지만, 어떤 잡지도 <키노>보다 더 힘들 순 없었다. 한때 그들은 한달이면 3주 동안 회사에 먹고 자면서 잡지를 만들었다. 그 댓가로 그들은 50만원 안팎의 월급을 받은 적도 있다. 그렇게 8년을 버텨왔다.

모든 말들에 앞서, <키노>는 영화의 친구라고 생각한다. 친구의 자리를 <키노>는 한국에서 발행되는 어떤 영화잡지들보다 당당하게 또한 굳건하게 지켜왔다. 그 친구가 이제 퇴장하려 하고 있다. 아마도, 한 시대가 저물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