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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권하는 인생,<아마도 악마가>
홍성남(평론가) 2003-07-09

“정부는 근시안적인 시각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버스 안에 탄 한 청년이 내뱉은 말은 일종의 논쟁을 불러오는 불씨가 된다. 그 앞의 자리에 앉은 남자가 말한다. “어디에도 제대로 된 정부는 없소. 눈에 보이지 않는 권력층이 힘을 휘두르고 있는 것이지.” 그러자 버스 승객 가운데 또 누구인가가 이야기한다. “인류 전체를 웃음거리로 만들고 있는 게 누구지? 우리를 이간질하고 있는 게?” 이에 대한 대답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에서 이반이 비슷한 질문을 받았을 때 했던 이야기를 흉내낸 것으로 되돌아온다. “아마도 악마겠지요.” 바로 그때 마치 무언가 알아서는 안 되는 비밀을 엿들어서 당황하는 것처럼 버스는 급정거를 하고 만다.

이 세상의 혼돈은 정말이지 악마의 탓인 것일까? 사실 그건 일종의 모함일지도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이 장면에서 버스 승객이(그리고 영화를 보는 관객도 함께) 공유하는 것이 있긴 한데 바로 누군가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싶을 만큼 이 세상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확신이다. 로베르 브레송의 열두 번째 장편인 <아마도 악마가>는 그처럼 짙디짙은 페시미즘의 시각으로 절망을 포착하는 영화다.

흔히들 브레송의 후기 영화가 이전 작품들과 달리 구원의 빛줄기를 찾지 못하고 어둠 속으로 빠져든다고 이야기할 때, 그 시발점에 해당하는 것은 브레송의 첫 번째 컬러영화인 <유순한 여인>(1969)이다. 그 점을 입증이라도 하겠다는 듯 이 영화는 ‘유순한 그 여인’의 죽음으로 시작한다. 브레송 스스로 자기 영화들 가운데 가장 으스스한 것이라고 불렀다는 <아마도 악마가> 역시 절망적 색채에서 앞선 영화에 뒤지지 않겠다는 듯 주인공의 죽음을 알리며 막을 걷는다.

영화는 크레딧 시퀀스가 지나가면 샤를르(앙투완 모니에)라는 청년의 자살 혹은 타살 기사가 실린 신문을 보여주고는 6개월 전으로 돌아간다. 이제 펼쳐질 영화의 경로는 샤를르가 어떻게 해서 죽음에 이르렀는지 그 발자취를 따라가는 것으로 메워지게 되는 것이다(여기서 분명히 할 것은 그 경로가 인과 연쇄의 고리로 엮여 있는 스토리가 아니라 그저 단편들을 모은 ‘발자취’라는 점이다. 이건 결코 관습적인 내러티브 경로를 따라가는 영화는 아닌 것이다). 영화는 삶에서 의미 같은 것을 발견하지 못하는 지독한 염세주의자인 샤를르가 발걸음을 따라가서는 그가 만나는 제도나 삶의 부분들에 대해 그와 함께 냉소를 흘린다. 파괴를 선포하는 정치집단도, 갈 길을 몰라하는 종교도, 이익을 위해서라면 파괴를 서슴지 않는 세상도, 삶에 어떤 충일감을 주지 못하는 사랑(혹은 열정)도, 뻔한 과거의 기억이나 들춰내는 정신분석학도, 여기서는 모두 싸늘한 부정의 대상일 뿐이다.

<아마도 악마가>에서만큼 “브레송이 그토록 화를 내면서 그리고 근본적인 태도로 그 어떤 담론에 대해서든 경멸을 표시한 적은 없었다”는 영화평론가 세르주 다네의 지적은 정말이지 적확한 것이라고 아니 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브레송이 그런 부정적인 태도로 그려내는 이 세계는 68년의 유토피아적 에너지가 파괴된 이후 70년대 중반 프랑스 젊은이들이 빠져든 패배적인 분위기와 정확히 조응하는 것이기도 했다.

<아마도 악마가>라는 영화를 내내 지배하는 지극히 염세적인 분위기는, 앞에서 이야기한 버스장면과 함께 이 영화에서 가장 강한 인상을 남겨주는 마지막 시퀀스로 그 절정에 이른다. 자신을 죽여줄 사람을 구한 샤를르는 그를 데리고 자신이 최후를 맞이할 페르 라셰즈 묘지로 향한다. 샤를르는 중도에 한순간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으며 위안받기도 하지만 그건 찰나적인 것에 불과할 뿐이다. 최후의 목적지에 다른 그는 마치 최후의 변론을 하려는 듯 이야기한다. “이렇게 엄숙한 순간에는 고상한 생각이 들 거라 믿었는데…. 하지만 내가 무슨 생각을….” 샤를르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성급한 ‘집행자’는 권총으로 그를 쏴버리고는 샤를르의 옷에서 돈을 꺼낸 다음 뛰어간다. 그러면 영화는 놀랍게도 우리로 하여금 샤를르의 죽음에 어떤 식이든지 감정을 느낄 한순간의 여유도 주지 않은 채 검은 화면을 보여준 다음 바로 끝을 맺는다. 이것은 아마도 브레송의 영화들뿐만 아니라 영화사를 통틀어서도 가장 비정한 엔딩일 것이며 또한 이것이 ‘동정없는 세상’에서 일어난 일임을 다시금 확인시켜주는 효과적인 엔딩일 것이다.

이처럼 설득력 있게 냉정한 <아마도 악마가>는 프랑스에서는 개봉 당시 젊은이들에게 자살을 너무 합당한 것으로 여기게 할 수도 있다는 이유로 18세 이상만 관람할 수 있다는 판정을 받았다(국내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브레송의 이 잔혹한 걸작은 <사형수 탈옥하다>(1956), <호수의 란슬롯>(1974)과 함께 박스 세트로 발매되었다). 홍성남/ 영화평론가 gnosis88@yahoo.com

Le Diable probablement, 1977년감독 로베르 브레송출연 앙투안 모니에, 앙리 드 모블랑DVD 화면포맷 풀 스크린오디오 돌비디지털 2.0자막 한국어출시사 스펙트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