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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리포트2] SicAF를 찾은 아니메의 두얼굴
사진 오계옥 이혜정김현정 심지현 2003-08-19

<반딧불의 묘>감독 다카하다 이사오, <메조 포르테> 감독 우메즈 야스오미

제7회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SicAF)은 어렵게 바다를 건넌 손님 두 사람을 맞았다. <반딧불의 묘>로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린 거장 다카하타 이사오와 이미 한번의 상영 불발을 겪었던 성인애니메이션 <메조 포르테>의 우메즈 야스오미다. 다카하타 이사오는 한국애니메이션창작인회의의 초청으로 강연을 하기 위해 서울을 찾았다. 청중 앞에서 오랜 경험과 현명한 통찰을 들려준 다카하타는 공항으로 떠나기 전 잠시 틈을 내 한국 기자들을 만났다.

한 시간 동안, 쉼표를 찍을 틈도 없이 많은 말을 들려준 다카하타는 애니메이터에만 머무르지 않고, 현실과 역사에 밀착하고자 자신을 조이는 책임감 있는 지식인이었다. <메조 포르테> 관객과의 대화를 위해 한국에 온 우메즈는 제작비를 마련하기 위해 성인물의 형식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한국에서 정식으로 소개된 적이 없는데도, 자신의 작품을 미리 보고 찾아온 관객 앞에서, 우메즈는 솔직한 유머로 마음을 열어놓았다. 어렵게 시간을 내서 인터뷰에 응한 우메즈는 애니메이터로서 자신의 인생을 짧지만 풍성하게 들려주었다.

▲다카하타 이사오

1935년생. 미야자키 하야오와 함께 지브리를 이끌어가는 인물로, TV 시리즈 <빨강머리 앤>, 극장용 <반딧불의 묘> <추억은 방울방울>, <헤이세이 너구리 전쟁 폼포코> 등 연출 팍팍한 현실 속의 소박한 희망을 믿는다

다카하타 이사오

다카하타 이사오는 한국에서 단 하룻밤을 머물렀다. 육십을 넘긴 그는 “95년에 보았던, 철거 중이었던 조선총독부 건물이 어떻게 됐는지 궁금해서” 이처럼 무리한 일정으로 바다를 건너왔다고 했다. <반딧불의 묘> <헤이세이 너구리 대작전> 등에서 현실에 대한 발언을 계속해온 이 애니메이터는 처음 꺼낸 그 한마디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렸다. 다카하타는 “나는 현실주의자다. 그리고 희망을 믿는다. 현실은 거창하지도 그리 좋지만도 않지만, 희망이 없다면 견디기 힘들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자신이 바라는 애니메이션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직 말할 단계는 아닌” 신작을 준비하고 있는 다카하타가 최근 가장 많은 에너지를 쏟은 일은 프랑스 애니메이션 <키리쿠와 마녀>의 일본 개봉 추진이다. 지난해에 이 영화를 본 다카하타는 배급사에 일본 개봉을 제안했고, 8월2일 극장에 올리는 데 성공했다. “보고나면 재미있다, 감동적이었다가 전부인, 현실과 동떨어진 애니메이션”뿐인 일본에서, 다카하타는 <키리쿠와 마녀>가 방향을 틀어줄 키가 될 거라고 믿었다. “어떻게 현실 속에서 살아갈 것인가”를 말해주기 때문에. 다카하타는 “천재인 미야자키 하야오와 천재가 아닌 나 다카하타 이사오” 사이의 두 번째 차이도 역시 거기에 있다고 했다. 그는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일 외에도 글을 쓰고 발언을 한다. 천안문 사태 때문에 중지된 프로젝트 역시 일본인이 중국인의 땅 만주에서 왜 지주로 군림했는지, 왜 자신들은 지주로 살아야만 한다고 당연하게 생각했는지를 파헤치는 작품이었다.

다카하타의 빠듯한 한국 방문 일정 중에서 눈에 띄는 사건은 <마리이야기>의 이성강 감독과의 만남. 아름다운 애니메이션에 감탄을 표한 다카하타는 자청해서 이성강 감독을 만났고, 두 시간이 넘도록 이야기했다. 그는 아직 한국 애니메이션을 잘 알진 못하지만, 한국이 과거 일본처럼 애니메이션을 이끄는 국가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일본에서 사라져버린, “어떻게 그릴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이야기할 것인가”라는 태도를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걸작으로 칭송받는 TV시리즈 <빨간머리 앤>을 “제작사에서 요청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이런 걸 왜 만들어야 하나 의심하면서” 만들었다고 고백하는 솔직한 거장. 다카하타 이사오는 사인을 요청하는 몇몇 기자들을 위해 필통을 꺼내고 안경을 쓰면서 정성들인 잉크 자국을 남기는 정겨운 심성을 보여주고 떠났다.

그동안 몰래 보셨다구요?

<메조 포르테> 감독 우메즈 야스오미

▲우메즈 야스오미

1960년생. 일본의 성인용 애니메이션을 대표하는 감독.로봇 카니발 에피소드 <프레젠스>, <카이트>, <메조 포르테> 등 제작

엄마 아빠가 살해된 현장을 목격한 뒤 살인청부업자로 일하게 되는 소녀. 그녀를 살인청부업자로 키워 이용하는 자들은 다름 아닌 바로 소녀의 부모를 죽인 원수들이다. 소녀는 이들이 시키는 대로 목표물을 죽여나가는 가운데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청년을 알고 사랑에 빠진다. 내내 어두운 분위기의 연출, 마지막에 관객으로 하여금 안타까움의 탄성을 지르게 만드는 비극적 스토리의 <카이트>(KITE, 1998)는 18금(禁) 애니메이션 작가 우메즈 야스오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하지만 국내에 그를 알린 작품은 단편 옴니버스 <로버트 카니발>(Robot Carnival)의 에피소드 중 <존재> 편. <존재>는 우메즈가 성인 애니의 세계에 입문하기 전에 그린 작품이다. 아직 우리나라에서 그의 작품이 정식으로 상영·배급된 적은 없으며, 올해 SicAF에 초청된 <메조 포르테>(2001)가 국내 상영으론 처음인 셈이다. <메조 포르테>는 <카이트>의 후속작으로 비합법적으로 청부업을 하는 미쿠라라는 소녀와 두명의 남자가 한팀을 이뤄 의뢰받은 위험한 사건들을 해결해나가는 이야기이다. <카이트>에 비해서는 다소 밝은 분위기이지만, 전작의 분위기를 완전히 떨쳐낸 것은 아니다. 과격한 폭력 묘사, 포르노 수준의 성적 묘사는 그대로다. 액션신에서 그의 공력이 그대로 묻어나는데, 상당히 정교하고 역동적이기까지 한 화면은 할리우드 실사 액션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그가 ‘H물’(성인물을 ‘에찌’라고 발음하는 데서)을 그리기 시작한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다. <메가존23 파트2>(Megazone23 part2), <로버트 카니발>-존재 등을 비롯해 <갓챠맨> <캐산>의 캐릭터디자인, 작화감독, 감독 등을 거치며 활약해왔던 우메즈 감독은 제작비가 부족해 활동이 뜸했으나, 성인물을 그리면 투자해주겠다는 제의에 종목을 바꿨다. <카이트>와 <메조 포르테>에서 H신이 적고, 액션신이 많은 이유를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H물을 하기는 하지만, 그의 관심은 다른 데 있다. 현재 우메즈는 <메조 포르테>의 TV판과 <Kiss&Cry>라는 이름의 신작을 준비 중이며, < 트리플X >의 감독 롭 코언이 <카이트> 실사작업에 참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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