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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도 중,저기서도 중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오영수

반평생을 연기에 바친 노배우, 이제야 그를 만난다. “저절로 된 것이냐?”, <봄, 여름..>에서 나지막하게 질문을 던지던 그 노승의 목소리가 지금 그의 오랜 연기생활에 대해 말하고 있다. 오영수씨는 1967년 극단 광장에서 배우의 길을 시작했다. “극단은 5개밖에 없었고, 1년에 두번 공연을 하던 그때”에 “뒷일 다 해가면서” 연극계 초년생 시절을 보냈고, 3년쯤 지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의 스탠리 역으로 처음 주연을 맡았다. “그때로 보면 꽤 빠른 출발”이었다. 열정이 넘치던 시기였기에 아쉬운 실수도 했다. “원래 그건 메피스토 연극인데, 내가 파우스트를 하겠다고 우겼어. 그건 잘못해서 기억에 남는 거고….” 75년 <파우스트>에 관한 아쉬움이다. 하지만, 그렇게 경험이 쌓이면서 이제 연극은 “인생을 이해하는 것이고, 인생을 대변하는 것”이라는 소신을 갖게 됐다. 그는 요즘도 연극 <문제적 연산>에 출연 중이다.

그런데, 여기까지 들으니 궁금증이 든다. 이제 막 연극을 시작한 신참도 아닌데, 그러니까 경제적인 이유도 아닌데, 갑자기 왜 영화에 출연하기로 한 걸까? 사실, 그 전에는 “기회가 와도 하고 싶은 역할이 없었다”. 또 “몇 십년 만에 하는 건데, 기록이 되는 영화”를 하고 싶었다. 주경중 감독의 <동승>에 출연한 것은 “희곡이 먼저이기도 했고, 예술가의 입장에서 하려고 하는 게”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연극이나 영화나 같은 예술 아닌가?” 이것이 그 현답이다. “<철도원> 같은 영화, 우리 나이에 맞는 영화는 왜 안 만드는지… 요새 연극다운 연극도 많지 않지만 영화도 그런 거 같아요.” 그래서 “화제를 일으키는 사람”이라는 정도만 아는 김기덕 감독의 영화에 또 노승으로 출연했다. “나도 시대가 요구하는 역할을 많이 해봤지만, 지나가고 보니까 그런 것보다는 할아버지하고 손자하고 얘기하는 것이 더 좋게 느껴져. 요새 영화에는 사건은 많지만, 인생은 없는 것 같아.” 그 순간 겹쳐지는 노승의 얼굴.

오영수씨의 말대로 지금까지의 역은 “이것도 중이고, 저것도 중”이었다. 하지만 그가 양복 윗도리를 걸치고 서 있는 모습을 보면 윤회의 나이에 도달했다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멋쟁이’이다. 그리고 재주꾼이다. <봄 여름…>에서 고양이 꼬리를 붓삼아 마룻바닥에 새기는 그 힘있는 필체들은 모두 오영수 자신이 쓴 것이다. 대필하는 사람이 왔다가 할 일이 없어서 갔을 정도라고 하니, “지방 쓰면서 할아버지께 배운 실력으로, 심심할 때 집에서만 한다”는 말은 또한 겸손일 것이다.

오영수씨는 지금, “중만 하다가 그만둘 수 없으니” 당연히 후속작들을 얘기 중이다. “<철도원> 같은 영화가 주어진다면 자신도 있다.” 그리고 연극배우인 이상 <세일즈맨의 죽음>과 <리어왕>은 언젠가 꼭 한번 해볼 생각이다. “자연스럽게 연기한다고 리얼리티가 아니에요. 거기에 미적인 것이 들어가야지. 실제적인 게 리얼리티라고 생각하는데 그건 틀렸어요.” 연기에 대한 이런 신념이 그 흔한 말, 연륜을 생각나게 한다. 다시 겹쳐지는 노배우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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