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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천-김봉석,뒤늦게 도착한 <내츄럴시티>를 말하다 [1]
권은주 2003-09-26

" 당신이 원하는 게 없기 때문에 화를 내는가?”

민병천 감독-김봉석 기자, 뒤늦게 도착한 블록버스터 <내츄럴시티>를 말하다

그동안 튜브가 만든 ‘한국형 블록버스터’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튜브>는 모두 나쁜 평가를 받았다. 앙상한 이야기와 남발되는 특수효과는 번들거리기만 했지 관객의 머리와 마음을 만족시키지 못했다. 블록버스터에 대한 환상이 사라지고, 환멸만이 남은 지금 뒤늦게 <내츄럴시티>가 도착했다. 사실 튜브에서 가장 먼저 기획에 들어간 블록버스터였지만, 제작 기간이 길어지면서 막차를 탄 것이다. 몇번의 시사회를 통해서 도시의 전모를 드러낸 <내츄럴시티>는 엇갈린 평가를 받고 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기자와 평론가들 사이에서는 불호가 더 많았다. ‘비주얼은 뛰어나지만 이야기는 빈약하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하지만 민병천 감독의 비주얼이 단순한 테크닉 이상이라는 의견도 있다. <내츄럴시티>의 유려한 영상이 복제품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런 복제품에도 어떤 아우라가 존재한다는 의견을 낸 김봉석 기자가 민병천 감독을 만난 것은 그런 이유다. 영혼이 없는 사이보그를 사랑하는 R의 심정처럼, 그림자 없는 복제품의 마음이 무엇인지를 물어보았다.

김봉석 | 반응은 어떤가.

민병천 | 좋아하는 분들은 좋아하고, 씹는 분들은 엄청 씹고. 그런 걸 각오하고 만들었고 예상했던 결과다.

김봉석 | ‘이야기는 빈약하고 비주얼은 뛰어나다’, 거의 그런 어조더라.

민병천 | 왜 그런 얘길 할까 원인을 생각해보니까, 이 영화에 대해 사람들이 기대했던 스토리가 있었던 것 같다. 그게 뭔지는 알지만 그대로 따라가고 싶지 않았고,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게 안 나왔기 때문에 짜증을 냈던 거 같다. 대표적인 게 R과 리아가 어떻게 만났나, R이 얼마나 힘든 상황이었으면 그 여자를 저렇게 사랑하나, 하는 질문들이다.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에서 니콜라스 케이지가 엘리자베스 슈를 처음 만났을 때의 황폐한 상황들이 있는데, 그런 걸 보여줘야 되지 않냐는 논란이 굉장히 많았다. 그렇지만 그런 게 정답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굳이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 영화를 만들면서 힘들었던 시절의 나를 R에게 반영했다. 그런데 영화를 보는 분들은 감동을 원하더라. 끝날 때 한번 좍 울고 싶고. 내가 예전에 <씨네21>이랑 인터뷰할 때 두번 울릴 자신이 있다고 한 건, 눈물의 의미가 아니라 뭉클하게 자기만의 생각을 가질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 싶다는 뜻이었는데, 그게 와전이 돼서 신파 같은 걸 기대하고 영화를 보더라. 자기가 원했던 스토리가 아니기 때문에 화를 낸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스토리가 없다는 말은 정말 이해가 안 간다.

블록버스터에 대한 상투적 비판

김봉석 | 스토리가 없다라기보다 중간에 비어 있는 부분들이 많다고 생각했다. 그걸 굳이 다 이야기할 것인가 아닌가는 물론 전적으로 감독의 몫이고 연출 방법의 문제이지만, 한국 블록버스터에 대해 이야기할 때 항상 ‘액션, CG는 다 되는데 이야기는 약하다’고 말하고, 그런 얘기들만 반복한다. 구체적이기보다 비판 자체에 클리셰가 생긴 게 아닌가 싶다. 그럼 감독님이 이 영화에 스스로 점수를 매겨본다면.

민병천 | 처음에는 70%의 자신감을 가지고 이 영화를 시작했다. 소신있게 끝까지 밀고 나간다는. 이른바 블록버스터로서 공격받고 있는 스토리에 대해서도 긴박한 어떤 것을 만든다는 것보다는 블록버스터이지만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또 이 세상을 한번만 더 생각해보고 싶게 하는 영화를 만들겠다는 것이 철칙이었다. 다행히도 김승범 대표와 황우현 대표가 이해해줘서 잘 지켜왔는데, 아마 두분 모두 지금쯤 후회하고 계실 거다. (웃음) 블록버스터와 상업성은 뗄 수 없는 관계이지만 좀더 진지해지자라는 면에서 내 영화를 평가한다면 70점 정도 주고 싶다.

김봉석 | 난 이 영화를 재미있게 봤고, 돋보이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한다. 물론 <내츄럴시티>가 아주 독창적이라고 생각진 않는다. 그 의미는, 이 영화에 나타나는 세계가 <블레이드 러너>가 이전의 영화들과 선을 그으면서 만들었던 독창적인 세계관에서 더 나아가지 않았다는 뜻이다. <블레이드 러너> <공각기동대> 같은 것들과 비슷한 점이 많단 얘기도 맞다. 하지만 난 그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굳이 개념을 만든다면, 복제품인데 아우라가 있는 복제품이다. 장면장면을 그냥 멋있게 꾸미는 것이 아니라 봤던 것 같은 장면들에서도 그것 자체로 어떤 감정을 끌어내고 있지 않나 하는 것이다. 이건 감독님의 재능이라고도 생각이 된다.

민병천 | 이 영화의 순제작비가 75억 정도 들었는데, 물론 큰 액수긴 하지만 이 영화를 제대로 만들기엔 터무니없이 적은 자본이다. 이런 말 하고 싶진 않지만 제한된 예산이며 이 영화를 만들기엔 터무니없이 작은 자본이다. ‘초극저예산 SF영화’다. (웃음) 변명 같지만 이 예산만으로는, 국내에 SF영화에 대한 아무런 기반도 없는 상태에서 독창적으로 도심을 디자인하고 소품을 디자인하고 컨셉을 끌어낼 수 있는 여건이 전혀 안 된다. 이런 상황에서 일반 관객이 저건 2080년의 미래야라고 할 수 있는 느낌을 가장 저렴하게 만들려고 하다보니 어쩔 수 없이 그런 영화들 테두리 안에 있게 되더라. 영화를 만들기 전에 그런 영화들에 대한 오마주라고도 얘기했었다.

민병천 감독이 뽑은 베스트 #1

R과 리아가 물 위에 떠 있고 그 위로 무요가가 지나가는 장면 두 사람이 무언가 유영을 하면서 꿈을 꾼다는 느낌

아우라가 있는 복제품

김봉석 | 요즘에도 뮤직비디오 연출을 하고 있나.

민병천 | 최근에 만든 건 브라운 아이즈의 <위드 커피>다.

김봉석 | 그러니까 이른바 뮤직비디오식의 어법들, 말하자면 만날 누가 죽고 구해주고 그런 신파적이고 뻔한 스토리텔링인데도 막상 보고 있으면 그 감정에 따라가고, 감동까지 받게 되는 것 말이다. <내츄럴시티>에 바로 그런 느낌이 있었다. 전혀 설명이 없는데 그냥 알 것 같다라는 것. 무작정 뮤직비디오만 늘려놓은 것 같은 영화들은 지루하다. 이 영화가 뮤직비디오 스타일을 그대로 가져왔다는 게 아니라 뮤직비디오에서 느껴지는 정서적 고조감을 가졌다는 말이다. 단순히, 테크닉은 좋아졌다, 이제는 다 표현할 수 있다, 라는 표현은 싫다. 그건 비주얼에 대한 감각이고 재능이다, 라고 생각한다.

민병천 | 처음에 이 영화를 찍으면서 이재진 음악감독하고 먼저 이야기했고 음악이 먼저 완성돼 있었다. 그 음악을 듣고 거기에 맞는 것을 대사로 전달하는 게 아니라 화면하고 어우러지게 해서 관객에게 전달하자고 생각했다. 오프닝과 엔딩 시퀀스에 내레이션 트랙을 집어넣었는데, 사실은 그것도 너무 설명해주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김봉석 | 시사회에서 젊은 관객의 반응은 어떻다더라 하는 얘기는 들었었나.

민병천 | <유령> 때는 별로 떨리는 것도 없었는데 <내츄럴시티>는 불안하고 이상하다. 비밀리에 모니터 시사를 했다. 10대부터 30대까지 설문지를 줬는데, 놀랍게도 10대는 50명 중 48명이 이 영화 죽인다, 그랬다. ‘내용을 알겠습니까’라는 질문에는 뭘 설명을 하냐, 다 아는 거 아니냐고 대답하더라. 걔네들이 정말 다 이해를 해서 그러는 건지, 영상만 보고 그러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런데 20대로 가면 뚝 떨어진다. ‘모르겠다’, ‘전혀 모르겠다’는 반응이 ‘재미있다’는 사람과 5 대 5 정도 된다. 30대로 가면 ‘재미없다’가 8이고 ‘볼 만하다’가 2다.

김봉석 | 그게 더 좋은 얘기 아닌가? (웃음)

민병천 | 난 우리 어머니가 보고 이 영화를 좋아하셨으면 좋겠다. (웃음)

김봉석 | 10대들은 ‘왜?’를 중시하지 않는다. 10대가 좋아하는 영화들을 보면 인과관계가 별로 설명 안 되고 에피소드들만 가지고 연결된다. 아까도 얘기했지만 뮤직비디오들도 그런 걸 설명하지 않는다. 그냥 그런가보다 한다. 그런데 중요한 건 그러면서도 감정이 전달된다는 거다. 이 영화가 그랬다. <공각기동대>를 10대들이 좋아했던 건 그 난해한 개념과 철학들이 완벽히 이해가 돼서라기보다 감각적으로 받아들여져서라고 생각된다. <내츄럴시티>가 궤를 뛰어넘는 독창적인 영화는 아니지만 그런 공감을 갖고 있지 않나 싶고, 그런 점이 긍정적으로 생각된다. 시대가 변하고 있고 시대가 요구하는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민병천 감독이 뽑은 베스트 #2

R이 자신의 집에서 창 밖으로 도시의 전경을 바라보는 장면 결전의 날이라는 암시와 새롭지만 두려운 감정 등을 표현

비주얼로 감정을 전달하기

김봉석 | 이 영화를 어떻게 만들었나 하는 것보다 감독님이 갖고 있는 비주얼 감성이 어떻게 나왔나를 듣고 싶다. 말하자면 감독님이 영화나 영상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 경위다.

민병천 | 정말 단순하고 무식한 건데, 중학교 2학년 때 이현세씨의 만화 <지옥의 링>과 <공포의 외인구단>을 보고 너무 감명을 받아서 편지를 썼다. 내가 커서 꼭 영화감독이 될 테니 판권을 나한테 달라고. (웃음) 그런데 정말 답장이 왔다. 참 당돌한 소년이군요, 당신한테 판권을 줄 테니까 꼭 영화감독이 되세요, 라고 써 있었다. 그 말을 철석같이 믿고 고등학교 때부터 영화를 조금씩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때 가장 불만스러웠던 건 할리우드나 외국의 영화들은 때깔이 이렇게 죽이는데 우리나라 영화들은 왜 이렇게 하나같이 푸르딩딩하면서 이상할까 하는 거였다. 그러고선 영화감독이 되면 촬영은 꼭 내가 해야지, 하는 생각을 했다. 고등학교 때도 영화를 하려고 미술을 했고, 색채심리를 공부하려고 미술을 한 거였다. 사람이 색을 보며 느끼는 심리적 요소에 관해 쓴 책들만 사서 봤다. 근데 고3 때 <지옥의 링>과 <공포의 외인구단>이 전부 영화화되더라. 그래서 다시 편지를 썼다. 왜 약속을 어기냐. 난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데.(웃음) 근데 답장이 안 왔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때부터 알고 있었다. 내가 미대를 가면, 사람들이 날 보고 드라마가 없다는 얘기를 하는 감독이 될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그런 걸 방지하기 위해 다큐멘터리를 찍어야겠다고 결심하고, 1학년 때 장애인이 후지산 정복하는 이야기를 담았는데 운좋게 SBS에서 다큐대상을 받았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SBS에서 일하게 됐고, 내가 편집을 잘한다는 소문이 나서 뮤직비디오 좀 편집해 달라는 부탁이 ‘야메’로 들어왔다. 50만, 60만원 줄 테니까 일주일 만에 편집 좀 해줘라, 그래서 당시 뮤직비디오만 700편 가까이 편집을 했다. 그렇게 편집을 하면서 편집의 감을 알았다. 편집을 알았다는 말은 한번에 20컷 정도를 외운다는 거다. <내츄럴시티> 때 현장에서 콘티를 보지 않았던 것도 그런 자신이 있어서였다. 배우한테 연기를 시키더라도 중요 감정을 메인 컷으로 잡으면 다른 컷은 즉석에서 조달할 자신이 있었다.

김봉석 | 어릴 때 봤던 인상적인 작품이나 좋아하는 감독은.

민병천 | 지금도 변함이 없는데, 앨런 파커, 리들리 스콧을 정말 좋아하고. 에이드리언 라인도 좋아한다. 비주얼이 좋은 사람들을 좋아한다. 이와이 순지도 좋다. <스왈로우 테일>은 아직 못 봤는데 <내츄럴시티>랑 비슷한 데가 많다고 하더라. 한번 보고 싶다.

김봉석 | 처음부터 영상에 관심을 가졌었고 그걸 하기 위해 책도 읽고 미대도 갔다. 그런 면에서 <내츄럴시티>는 자연스러운 결과다. 그런데 앨런 파커나 에이드리언 라인은 영상도 좋지만 초기 영화들을 보면 이야기도 잘 만든다. <나인 하프 위크>도 이야기를 끌어가는 방식이 탁월하다. 드라마가 약하다는 비난을 받을 것 같아서 다큐멘터리를 찍었다고 했는데 그 작업은 어땠나.

▶ 민병천-김봉석,뒤늦게 도착한 <내츄럴시티>를 말하다 [1]

▶ 민병천-김봉석,뒤늦게 도착한 <내츄럴시티>를 말하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