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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인 소재의 공감할 수 있는 드라마화,<선택>
■ Story

스물다섯에 국경수비법 위반으로 유엔군에 생포된 좌익수 김선명(김중기)은 대전교도소로 이감되어 새 감방동료과 새 좌익수 전담 반장 오태식(안석환)을 만나게 된다. 인민군에게 아버지를 잃은 오태식은 좌익수들을 전향시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은 무자비한 탄압으로 인해 동요하기 시작한다.

■ Review

당신의 생각에 반대하지만 당신의 생각을 억압하는 이들과 싸울 것이란 볼테르의 경구가 잠시 화면에 머물다 사라진다. 45년 동안 세계 최장기 정치범으로 기록된 바 있는 김선명씨에 대한 영화 <선택>의 시작이다. 하지만 전기영화도 아니고 다큐멘터리도 아니다. 이것은 극영화다. 그러나 실화를 바탕으로 한, 그것도 정치적으로 민감할 수 있는 이슈와 연결된 영화는 좀더 특별한 고민을 함축하고 있을 수밖에 없다. 볼테르의 경구는 아마도 그런 고민의 조용한 노출일 것이다.

논픽션은 어렵다. 이른바 ‘극화’의 문제가 발생한다. 어떤 방식으로, 누구의 관점에서 사실들을 재구성할 것인가? 할리우드라면 순환논리에 가까운 휴머니즘을 바닥에 깔고 ‘감동의 드라마’를 만들어내기 위해 선명한 선악의 구도를 집어넣고 ‘영웅’을 창조한다. 그것 또한 장르의 공식이라면 공식이고 모두가 익숙해하는 방식임에는 틀림없다. 그렇지 않다면 영화적 허구를 사실들(facts) 사이에 끼워놓는 방식 자체를 사유하는 이른바 예술영화의 길을 가거나 현실(reality)을 부각하면서 역사나 진실을 추적하는 다큐멘터리적 방식을 예상할 수 있다.

‘한국의 켄 로치’ 홍기선의 ‘선택’은 일단 사변적이거나 정치적인 쪽이기보다는 모두가 두루 공감할 수 있는 정격 드라마의 길, 즉 ‘감동’의 길쪽이다. 하지만 그 안에는 극적 효과를 겨냥한 경탄할 만한 영웅도 없고 감옥 안팎을 교차하며 긴장의 스파크를 끌어오려는 숏의 장난도 없다. 너무나도 식상한 말이지만 ‘인간 김선명’의 내면에 조응하고 그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를 담담하고 꾸준하게 쳐다보는 드라마로 승부를 보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조미료를 치지 않기로 한 주방장의 손길과도 닮아 있다.

그래서 영화 안에는 거친 폭압에 대해 숭고하고 거친 목소리로 ‘자유!’라고 부르짖는 순교자적 영웅 대신, 곰팡이 선 빵을 몰래 안고 가는 동지에게 ‘자존심을 지키라’고 말해놓고는 화장실에서 그 빵을 몰래 뜯고 스스로를 합리화하는, 그리고 그런 자신에게 막막해하는 연약한 인간이 보인다. 십수년 이상을 맛보지 못한 여인네의 속살을 그리워하고 같이 노래하며 작은 것에 일희일비하는 이들의 모습과 함께, 종종 끔찍한 ‘빨갱이들의 옛 버릇’ 내지는 ‘암약하는 공산주의’의 환유처럼 여겨졌던 모스 신호조차 벽을 타고 전해지는 우정의 속살거림으로 화한다.

곰팡이 선 빵을 몰래 안고 가는 동지에게 ‘자존심을 지키라’고 말해놓고는 화장실에서 그 빵을 몰래 뜯고 스스로를 합리화하는, 그리고 그런 자신에게 막막해하는 연약한 인간이 보인다. 종종 끔찍한 ‘빨갱이들의 옛 버릇’ 내지는 ‘암약하는 공산주의’의 환유처럼 여겨졌던 모스 신호조차 벽을 타고 전해지는 우정의 속살거림으로 화한다.

그렇다고는 하나 영화는 한없이 부드러운 ‘감동의 휴머니즘영화’가 되기에는 여전히 생경하게 느껴지는 구석이 있다. 좌익수들의 전향을 강제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좌익 전담 반장 오태식에게도 공산주의자들 때문에 아버지를 잃고 다리를 절게 된 그의 사연을 소개할 만큼 균형감각을 잃지 않으려 애쓰고 비전향 장기수들을 미화하거나 영웅시하지는 않지만, 기본적으로 김선명의 입장에 감정이입토록 하는 영화적 충격은 인간적 면모의 산뜻한 묘사 탓이라기보다는 아무래도 전향을 위해 교도소쪽이 좌익수들에게 저지르는 ‘백화점식 폭력’의 반향에서 오기 때문이다.

깡패 출신 재소자들을 이용해 찌르고 때리고 짓밟는 딱딱한 폭력에서부터 교화 방송을 통해 울려퍼지는 구슬픈 음악과 함께 오는 부드러운 종류에 이르기까지 국가가 냉전기의 특수상황을 빌려 개인에게 가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폭력이 열거되면서 드라마는 고조된다. 특히, 그들이 벽을 타고 나누는 소통을 차단하는 지능적인 면모나 여자까지 동원해 인간적 약점을 파고들어가려는 폭력의 집요함을 드러내는 부분은 거의 압권.

하지만 무엇보다도 폐쇄된 공간에서 살아남기 위해 끝없이 선택하고 꿈틀거리는 이들에게 가장 가혹한 것은 종이 한장에 도장 찍는 것만으로도 쉽게 이뤄지는 자기 살해(전향)의 편의성일 것이다. 김선명을 비롯한 많은 이들의 선택의 성격이 왜 ‘공산주의’인가 라는 이념의 선택이 아니라 스스로의 인간됨을 지키는 것인지, 전향서가 왜 단지 종이 한장일 수 없는지가 웅변되는 부분도 여기다. 영화는 이 부분만큼은 분명히 하고자 애쓰고 감동의 주제도 여기에 걸린다.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를 연출했던 홍기선 감독은 폐쇄된 공간 내에 놓인 사회적 타자들을 통해 음각화처럼 살아나는 우리 사회나 역사의 얼개들을 펼쳐 보이는 데 수완을 발휘한다. 카메라는 좀처럼 교도소 울타리를 벗어나지 않지만 관객은 ‘폭력의 세기’였던 한국사의 굴곡이 김선명의 고독한 투쟁과 어떻게 얽히는지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감방 위 명패가 바뀌고, 식단이 바뀌고, 감방 내 시설이 바뀌지만 김선명이 택한 운명의 이념적 불온함을 취조하는 질문만큼은 바뀌지 않았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된다. 그 질문은 지금 또 다른 ‘경계인’ 송두율에게 폭사되고 있는 참이다. 개봉과 우연찮게 맞물린 이 뉴스는 끝내 출소한 김선명이 가족들의 반대로 노모와 결국 단 한번밖에 못 만났다는 사실과 함께 아직도 우리가 이 영화를 왜 그저 ‘감상’할 수만 없는지를 씁쓸하게 깨닫게 해준다.

:: 굽은 길을 돌아온 <선택>

주인공도 체인지! 스타에서 운동권 출신으로

해방 이후 많은 좌익수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김선명이 최장기수의 명예 아닌 명예를 얻게 된 것은 그의 체포시기(1951년)와 깊은 관련이 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평택 이남의 좌익수들을 모두 ‘처리’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16 당시 전국 각지의 좌익수들을 <선택>의 무대가 되는 대전형무소에 모았을 때 그 숫자는 한때 800명에 이르렀다. 김선명이 이곳에 도착했던 것도 이때쯤이다. 대전형무소는 그래서 ‘남한의 모스크바’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강제전향이 시작된 것은 영화에서 묘사되었듯, 72년 7·4 남북공동선언으로 포로교환 문제가 대두되면서였다. 비전향자에게 전향을 강제하고 그렇지 않으면 설령 형기가 다 찼더라도 계속 감금할 수 있도록 하는 악법 ‘사회안전법’을 75년에 제정한 것(이 법은 1989년에 철폐된다). 그러나 전향을 했더라도 바로 석방되는 것이 아니었다. 영화에서 전향한 동지들이 오히려 김선명이 특사로 풀려날 때도 여전히 갇혀 있는 것을 보게 되는데 그것은 전향자들은 일반수로 자격이 변하는 정도라서 그 형기를 다 채워야 나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김선명과 같이 800명의 좌익수들 중 전향을 끝까지 거부한 비전향 장기수는 총 94명, 한 사람의 평균 징역기간은 31년이다.

장기수들만큼은 아니겠지만 이들을 주인공으로 한 이 영화도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몇번이나 엎어질 위기를 겪었던 것에는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에서 홍기선 감독과 함께했던 조재현이 당초 김선명 역할을 맡기로 했었던 것도 포함되어 있다. 완성된 현재의 캐스팅보다는 대중인지도가 높은 배우들이 들어 있는 이 캐스팅에서는 당시 오태식 역할에는 김갑수, 감방 동료에 김규철, 교도소 내 정신적 지주인 이운영 선생 역할에 유인촌이 내정되어 있었다. 2년이 지난 캐스팅에는 전대협 학생회담 남쪽 단장이었던 김중기가 김선명 역할을 맡는 쪽으로 변화되었는데 애초의 기획대로 영화가 만들어졌다면 어땠을까를 생각해보는 것도 나름대로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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