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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의 옷을 벗겨라!
2001-05-23

심산의 충무로작가열전 19 임유순(1956∼ )

폭주족과 본드 흡입 그리고 상시적 폭력과 무절제한 성관계. 2001년에 발표된 <눈물>이 아니다. 1984년에 발표된 <수렁에서 건진 내 딸>이다. 무려 17년 전에 발표된 영화이니 이 작품이 당시의 관객에게 얼마나 커다란 충격을 주면서 사회적 물의를 불러일으켰을까를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냉정하게 말해서 <수렁에서 건진 내 딸>은 당시 우리 청소년들의 실상을 좀더 선정적으로 왜곡 내지 과장시킨 측면이 없지 않은데, 그렇게 된 연유의 일단은 그 원작소설이 일본산(産)이었다는 데 있다. 어찌되었건 김진아가 10대 가출소녀로 나와 몽롱하면서도 도발적인 연기를 선보였던 이 작품은 <눈물>과는 달리 흥행에 성공하여 그 속편까지 만들어진다. 본래 김호선이 연출할 계획이었으나 제작 도중 불의의 사건으로 갑자기 구속되는 바람에 그의 조감독이었던 이미례가 완성시킨 작품이기도 하다. 1986년에 김호선이 연출한 속편까지 시나리오는 모두 당시의 신예였던 임유순이 썼다.

건국대 국문과 출신의 작가 임유순의 작품세계는 선정적인 소재와 강렬한 드라마로 특징지워진다. 여고동창생 세명의 각기 다른 남성편력을 그린 <유혹시대>는 김진아·오수비·이혜숙이 저마다 자신만의 매력을 뽐내며 스크린을 뜨겁게 달궜던 작품이다. <학창보고서>는 여고생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들만의 갈등과 방황 그리고 학교로의 복귀를 그린 작품인데 아역 출신의 배우 이상아의 앳된 얼굴이 해맑다. 남편과 아내가 각기 따로 애인을 가져 서로에게 상처를 주다가 다시 가정생활의 회복을 조심스럽게 타진해본다는 스토리라인을 가진 작품이 <제2의 성>이다. 본래 이혜영의 골수팬인 나(정확히 표현하자면 유년기의 친구다. 어렸을 적 우리 집은 이만희 감독의 집과 바투 붙어 있어서 뻔질나게 놀러다녔다)는 이 영화 역시 극장에서 봤는데, 그 음울하고 쓸쓸한 분위기와 핍진한 심리묘사가 꽤나 인상적인 작품이었다고 기억한다.

임유순의 필모그래피는 1989년부터 김호선 감독과 손잡고 연달아 발표한 세편의 작품에서 그 절정을 이룬다. 극동스크린에서 제작된 이 세편은 모두 흥행에서 성공하여 연타석 안타를 기록한다. 유홍종 원작의 <서울무지개>는 신분상승을 위해 발버둥치는 연예계의 여인과 그녀를 철저히 빨아먹은 다음 간단히 폐기처분해 버리는 권력과의 함수관계를 다룬 사회성 짙은 드라마. 당시 신인이었던 강리나가 열연을 펼쳐 영화 속의 플롯 그대로 스타덤에 올랐는데, 그녀가 맡은 배역 유라의 실제 모델이 누구냐를 놓고 선정적인 가십들이 난무하기도 했다. 재일동포 여배우 김구미자를 주연으로 기용한 <미친 사랑의 노래>는 일종의 베트남전 후일담이라고 할 수 있는 암울한 멜로. 베트남전에서 실종된 옛애인을 그리워하던 그녀가 결국 풀장의 익사체로 떠오르는 라스트가 긴 여운을 남긴다. <사의 찬미>는 현해탄에서의 동반자살로 유명한 윤심덕과 김우진의 실화에 약간의 영화적 손질을 가하여 스크린에 담은 작품. 시대극 특유의 우아한 미장센과 화려한 의상이 일품이어서 그해의 각종 영화상을 거의 싹쓸이하다시피 했다. 윤심덕 역에 장미희, 김우진 역의 임성민, 그리고 이들 두명 모두와 묘한 우정관계를 유지했던 작곡가 홍난파 역에 이경영이 출연한다.

<아담이 눈뜰 때>는 19살의 재수생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장정일의 감각적인 중편소설을 각색한 작품. 타자기와 뭉크화집 그리고 턴테이블이라는 장정일식 화두를 스크린으로 옮기는 데에는 아무래도 역부족이었다는 평을 받았다. 이후에 집필된 임유순의 작품들은 태작이라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혼자 뜨는 달>은 언제 개봉됐는지도 모르게 소리소문 없이 묻혀버렸고, 임성민의 유작으로 기록되는 <애니깽>은 아예 실체도 없이 소문만 무성한 영화가 되어버렸다. 대종상 심사위원회가 프린트도 완성되지 않은 <애니깽>에 온갖 상들을 몰아줌으로써 그렇지 않아도 공정성 시비가 일곤 했던 대종상의 권위를 완전히 바닥에 떨어뜨리는 역효과를 낳은 것이다. 이후 대종상과 영협이 장기간 표류상태로 돌입했으며 젊은 세대들을 주축으로 한 영화인회의가 새롭게 발족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올해는 영협과 영화인회의가 손을 맞잡고 대종상을 국민적 영화제로 거듭나게 만들려 노력한 원년이다. 훗날의 영화사가들은 올해의 대종상을 어떻게 평가할지 자못 궁금해진다.

심산/ 시나리오 작가 besmart@netsgo.com

시나리오 필모그래피

1984년 이미례의 <수렁에서 건진 내 딸> ⓥ

86년 정인엽의 <유혹시대>

87년 이미례의 <학창보고서>

88년 고영남의 <제2의 성>

89년 김호선의 <서울무지개> ⓥ ★

90년 김호선의 <미친 사랑의 노래> ⓥ

91년 김호선의 <사의 찬미> ⓥ ★

93년 김호선의 <아담이 눈뜰 때> ⓥ

94년 이형탁의 <혼자 뜨는 달>

96년 김호선의 <애니깽>

ⓥ는 비디오출시작

★는 자(타)선 대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