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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의 경쟁

이번주 <씨네21> 특집 기사는 영화와 TV쪽에서 동시에 일어나고 있는 사극의 변화를 관찰했다. 필자들은 MBC의 <다모>와 <대장금>, 지금 극장에 걸려 있는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와 <황산벌>을 대표 사례로 들고 그 정황을 진단했는데 공감하는 바가 크다.

이 현상은 여러 가지로 음미할 만한데, 우선 사극이 한국 대중영화의 장르로 부활하는 기폭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 관객은 멜로와 코미디, 액션에 이어 공포와 사극을 반복 재생산이 가능한 장르로 끌어올리고 있다. 한국영화사의 황금기라고 평가되는 1960년대 전반기에 거의 10여 가지 장르가 동시적으로 성행했던 것을 상기할 때, 지금의 한국 영화계 또한 성장기를 지나 황금기로 진입하고 있다는 판단을 내려봄직하다.

또한 역사라는 것이 얼마든지 새로워질 수 있는 상상적 공간으로 재인식되고 있다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그동안 사극이라 하면 대부분 조선왕조실록이라는 어마어마한 텍스트로서 지식을 정당화하는 가운데, 남성 중심의 가족과 권력에 대한 환상을 재구축하는 무대로 사용돼왔다. 사극이 낡은 느낌을 주었다면 오래전 이야기를 해서가 아니라 그 이데올로기가 보수적이다 못해 낡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위에 언급한 새로운 사극들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과거의 사극들을 해체하면서, 역사를 다양한 종류의 문화적 실천이 경쟁할 수 있는 상상력의 공간으로 바꾸어놓고 있다. 왕에서 왕자로 이어지는 남성의 계보를 뒷받침하느라 암투를 그치지 않는, 가부장제에 꽁꽁 포박당한 히스테릭한 여성들 대신 끝없는 호기심과 희망으로 질문을 그치지 않는 장금, 혹은 제도 속 삶을 유희하는 조원과 조씨 부인을 만난다는 것은 얼마나 상쾌한가.

질문하는 여성 주체란, 가야트리 스피박에 따르면 페미니스트 해체주의의 핵심이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겠지만, 역사의 탈을 쓴 권력 담론 대신 그 같은 담론을 거듭 질문하는 하위 주체들이 사극 안에 속속 등장했으면 좋겠다.

참고사항 하나. <대장금>은 궁중에서 아이를 낳아 키운 상궁 이야기를 잠시 언급한 적이 있다. 신상옥 감독이 1969년에 만든 <이조여인잔혹사>는 옴니버스영화인데 마지막 에피소드가 바로 궁중에서 아이를 낳은 나인과 그들을 돌본 궁녀들의 발칙하고 전복적인 이야기다. 대단한 신상옥 감독!김소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