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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

“한국은 베트남의 친구.” 지난주 <씨네21>에 실린 한쪽짜리 기사 제목이다. 어린이 글짓기나 관광공사 홍보문구에 등장함직한 이 순박한 표현에 담긴 내력인즉 이렇다.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서 베트남의 존경받는 지식인 중 한명인 반레 감독은 한국을 정말 싫어했지만, ‘미안해요 베트남’ 캠페인을 주도한 구수정씨를 알게 된 뒤 서서히 마음을 돌이켜 이제는 한국을 친구의 나라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는 구수정씨를 주인공으로 하는 다큐멘터리를 만든 바 있고, 베트남을 소재로 영화를 제작하려는 영화사를 돕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김에 5·18 묘역과 부산영화제를 둘러봤다.

그가 한국을 증오하고 이해하고 마침내 포용하는 치열한 생의 격류를 겪게 된 뿌리는 물론 베트남 전쟁이다. 1945년부터 10년간 프랑스에 대항한 독립전쟁을 치른 베트남에 다시 미국이 개입하기 시작한 것은 1961년. 한국 정부는 1964년 이동외과병원 장병과 태권도 교관을 100여명 파견하더니 점차 전투부대쪽으로 옮겨 급기야는 군단급 군인을 보냄으로써 미국 다음 가는 규모의 파병 국가가 되었다. 미국이 한국 외에도 여러 나라를 끌어들였으나 400만∼500만명의 사상자를 만들어낸 채 1973년 손을 털었다는 사실은 익히 들은 바다.

언제부터, 왜 그러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으나 미국은 이라크와 전쟁을 시작했다. 한국은 비전투원을 파견한 데 이어 이번에는 전투부대를 내보낼 거라고 한다. 기시감!

베트남에서 피묻힌 대가로 자식들 먹이고 입히고 교육시킨 부모 세대에 대해서, 그 혜택을 받은 세대인 나는 별로 할말이 없다. 이번 이라크 파병으로 얻게 될 모종의 이익으로부터 나만은 떡고물을 안 누릴 거라는 장담도 못한다. 모두가 복잡한 현실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가 비슷한 맥락의 선택을 거듭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어떤 고상한 논리로 포장을 하든 톡 까놓고 말해서 본질은 큰 나라 편들어 작은 나라 몽둥이질하는 데 앞장선 대가로 먹고 살아보겠다는 결정이다. 이 초라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지금 이 지구상에 있는 어마어마한 부를 제대로 관리하고 분배함으로써 존엄한 삶을 살아보자는 목소리를, 이번에도 우리는 내보지 못한 것이다.

다시 40년 뒤 이라크에서 제2의 반레 감독 한 사람이 나올 때까지 누가 또 우리 모두를 대신해서 ‘미안해요 이라크’ 캠페인을 벌여야 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