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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 스페이스의 `부활` <매트릭스>
■ Story

토마스 앤더슨에게는 두개의 신분이 있다. 하나는 거대 기업의 프로그래머 앤더슨, 다른 하나는 사이버 스페이스를 무법천지로 누비고 다니는 해커 네오. 어느 날 네오는 선글라스를 낀 비밀요원들에게 체포된다. 그들은 앤더슨에게, 전설적인 해커 모피스의 체포를 위한 정보를 제공하라고 협박한다. 앤더슨은 거부하지만, 요원들은 이상한 기계곤충 같은 것을 그의 뱃속에 집어넣는다.

놀라 깨어난 앤더슨은, 자신의 방 안에 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트린에게서 걸려온 전화. 앤더슨은 요원들을 만난 것이 꿈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고, 모피스를 만나게 된다. 모피스는 그에게 양갈래 길을 보여준다. 하나는 최근 벌어진 이상한 일들을 모조리 잊어버리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 다른 하나는 이 삶이 거짓이었음을 인정하고 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후자를 택한 앤더슨은, 이상한 곳에서 깨어난다.

머리 뒤에는 플러그가 장착돼 있고, 온몸에 케이블이 연결된 상태로 거대한 거미집 같은 곳에서 깨어난 것이다. 앤더슨을 구출한 모피스와 그의 동료들은 그에게 진실을 알려준다. 현재는 2019년이고, 인간은 인공지능을 가진 기계에 의해 양육된다. 인간의 생체에너지를 기계의 동력원으로 쓰기 위해서, 기계는 "매트릭스"라는 가상 공간에다 인간들을 양육하고 있는 것이다. 모피스와 그의 동료들은 기계에 대항하여 매트릭스와 현실을 오가며, 투쟁하는 중이다. 그리고 예언자 오라클이 예언한 "매트릭스를 조종할 수 있는 자"로 네오를 지목하여 데려온 것이다.

■ Review

얼마 전까지 사이버 스페이스 영화는 한물간 장르였다. 선구자인 <트론>에 이어 <론머맨> <해커스> <너바나> 등등의 영화들이 등장했지만, 바로 유행은 지나갔다. 도대체 사이버 스페이스가 어떤 곳인지 자신있게 보여주는 영화도 없었고, 기껏해야 마니아의 놀이터로 묘사한 정도였다. 그러나 <매트릭스>는 사이버 스페이스를 현실로 "부활"시켰다. 워쇼스키 형제는 전혀 망설이지 않고 단호하게 말한다, 사이버 스페이스는 바로 이곳이라고. 각본까지 쓴 워쇼스키 형제는, 이곳이 왜 사이버 스페이스인지 설명하기 위해 영화의 반 이상을 할애한다. 자연히 설정은 복잡해지고, 상황을 설명하기 위한 갖가지 장치들이 필요했다. 데뷔작인 <바운드>보다 먼저 쓴 <매트릭스>의 시나리오는 "이해하는 사람이 없었고, 이해하더라도 영화화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한번 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복선과 대사들이 가득한 <매트릭스>는, 시나리오에 반한 액션영화 전문제작자 조엘 실버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만들어졌다.

<버라이어티>는 <매트릭스>가 "아이들을 위한 영화"라고 조롱했다. 맞는 말이다. <매트릭스>는 "젊은 감성"을 지닌 사람이 아니면 이해할 수 없는 코드로 가득 차 있다.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시간여행, 인간을 지배하는 기계, 두개의 현실의 공존 등 기존 SF나 판타지에서 익숙한 소재를 자유자재로 변주하면서도 <매트릭스>는 낯선 세계로 달려간다. 하지만 일본 애니메이션에 익숙하다면, <매트릭스>는 이해하기가 한결 쉽다. 네오는 결코 운명을 믿지 않는다. 모피스는 운명을 믿는다. 오라클은 자신이 해야 할 대사만을 했고, 네오는 그것을 자신의 방식으로 받아들였다. 트린은 운명을 믿지만 사랑은 믿지 않았다. 마침내 트린이 네오를 사랑하자, 모든 조건이 완결되고 "각성"이 시작된다. <터미네이터>와 흡사한 느낌도 주지만, <매트릭스>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자장에 포섭된 "미래형"의 할리우드 SF영화다.

<매트릭스>는 한번 보면 결코 잊을 수 없는 독특한 시각효과가 만발한다. 워쇼스키 형제는 할리우드 SF영화에 홍콩영화의 와이어 스턴트를 이용한 액션연기를 접합했고, 일본 애니메이션의 표현 기법을 차용했다. 미래의 인간이 무술을 익히는 법은 간단하다. 머리 뒤에 장착된 플러그로, 무술에 대한 정보를 입력하기만 하면 된다. 공수도, 태권도, 쿵후 등을 섭렵한 네오는 모피스와 대결을 벌이며 이소룡 흉내를 낸다. 사실적인 무술만이 아니라 무협영화에 쓰이는 와이어 스턴트를 이용하여 공중을 붕붕 날아다니는 결투까지 벌인다. 워쇼스키 형제는 <취권>의 원화평 감독을 불러들이고, 키아누 리브스 등에게 4개월여의 무술훈련을 시켜 <매트릭스>의 액션장면을 연출했다. 지하철역에서 벌어지는 네오와 스미스 요원의 결투장면은 동서양의 특수효과가 비로소 하나로 융합된 보기 드문 경우다. 서극이 <촉산>에서 꿈꾸었다가 실패했던 도원경이 마침내 <매트릭스>에서 실현된 것이다. 모피스를 구출하기 위해 네오와 트린이 총격전을 벌이는 장면은 춤을 추는 것 같은 오우삼의 홍콩누아르에서 빌려온 것이고, 네오가 각성한 후 총알을 공중에서 멈추는 장면은 서극의 <요수도시>의 장면과 일치한다.

일본 애니메이션 마니아라는 워쇼스키 형제는, 애니메이션의 독특한 스타일을 실사영화로 완벽하게 옮겼다. 첫 장면, 경찰의 습격을 받은 트린이 우아하게 공중으로 날아오른다. 순간 동작이 멈추고, 카메라는 360도 회전하며 그 모습을 잡아낸다. 트린은 발차기로 경찰을 쓰러트린다. 애니메이션에서는 이미 익숙한 숏이다. 트린이 요원의 머리 옆에 바짝 총을 대고 당기자, 천천히 쓰러지는 장면도 애니메이션 기법을 빌렸다. <매트릭스>는 화면 전체가 사실적이 아닌, 만화적인 질감을 띠고 있다. "영화는 그래픽의 언어"라고 생각하는 워쇼스키 형제는 <매트릭스>의 촬영에 들어가기 전 만화가 조프 대로에게 부탁하여 중요한 액션장면들과 머릿속에 쉽게 떠오르지 않는 상상 속 장면들을 만화로 그렸다. <다크맨>으로 영화계에 입문했고 워쇼스키 형제의 <바운드>에 이어 <매트릭스>도 함께 작업한 촬영감독 빌 포프의 감각적인 영상도 한몫했다. <매트릭스>는 첫주에 3700만달러, 현재까지 1억달러를 거뜬히 넘어서면서, 기성세대가 무시하는 젊은 세대의 영화감각을 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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