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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 아저씨

옛날에도 이랬을까. 우리 시대는 빠르고 복잡하다. 생각해야 할 것은 늘 너무 많고 몸의 에너지도 종종 바닥을 친다. 신경줄과 근육이 마침내 늘어져버렸을 때, 무언가가 시작되는 것은 바로 그런 순간이다.

사무실 근처 골목 귀퉁이에 자리잡은 구두 센터 아저씨를 생각하고 있다. 아저씨네 가게를 멋지게 말하기 위해 센터라고 이름 붙여보지만, 실은 한 사람이 들어가 앉기에도 여의치 않은 공간이다. 그곳에서 아저씨는 구두를 닦으신다.

그 분은 <씨네21>이 창간될 때에도 거기 계셨다. 그러니까 적어도 9년째 한자리에서 같은 업에 종사하고 있는 셈이다. 아저씨는 하루에 몇 마디쯤 말을 하실까. 실은 그분의 목소리 자체가 궁금하다. 아저씨는 매일 이곳 한겨레신문사 건물에 규칙적으로 들러서 닦여야 할 만한 구두를 걷어가고 되돌려주는 일을 거르지 않지만, 무어라 소리내어 말씀하시는 경우는 없다. 종종 함께 나타나는 부인도 마찬가지다. 마케팅은 오늘날 모든 영업의 기본일진대, 이들 내외는 “신발 닦으실 때가 되었네요” 류의 기본 마케팅 언어도 구사하지 않는 셈이다. 덕분에 나는 아저씨를 만나도 내 구두를 내려다본다거나 사양을 위한 변명을 궁리할 필요가 없다.

다른 이에게 자신의 존재를 강조하는 법이 없는 아저씨는 마치 가부키 공연 중 무대에 올라와 있으면서도 없는 척하는, 검은 옷을 입은 보조배우처럼 여겨진다. 그러면서도 아저씨는 자신의 일터를 열심히 지켰을 테고 가정을 일구며 자녀를 길렀을 것이다. 한자리를 오랫동안 지킨 사람이 으레 그렇듯이, 세상과 사람을 보는 지혜로운 시선 한 줄기도 품고 계실 것이다.

오늘도 우리는 눈인사를 나누며 미소를 교환했다. 적잖은 나날인데 아저씨와 나 사이에 있는 것은 이것뿐이다. 오늘따라 아저씨의 미소가 내 마음에 환한 잔상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