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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LA에 대한 영화사적 보고서
옥혜령(LA 통신원) 2003-11-10

LA를 관찰한 톰 앤더슨의 다큐멘터리 <LA 즐기기> 개봉

LA, 로스앤젤레스, 천사들의 도시, 할리우드 입간판이 내려다보고 있는 영화산업의 도시, 디즈니랜드와 스튜디오, 영화 스타들, 범죄와 지진의 도시, 사람보다 자동차가 주인공인, 사시사철 푸른 하늘과 매연이 공존하는 도시, 미주 최대의 코리안타운이 있는 도시. 그러나 정작 LA를 방문해본 사람이면 누구나 공감하듯 LA는 이 모든 이미지의 총합이기도 하며, 사실 아니기도 하다. 올해 토론로영화제의 화제작이자 11월5일, 로스앤젤로들에게 첫선을 보인 톰 앤더슨의 다큐멘터리 <LA 즐기기>는 어떤 도시보다도 많이 ‘보여졌지만’, 동시에 그 어떤 도시보다도 ‘알려지지 않은’ 도시, LA에 대한 영화사적 보고서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영화학자 노엘 벌흐와 함께 매카시즘의 광풍에 희생된 영화인들을 재조명한 전작 <레드 할리우드>(1995)에서 볼 수 있듯, 톰 앤더슨은 영화사의 기억에 남다른 관심을 가져왔다.

실험영화의 산실, 칼아츠의 교수이자 60년대부터 아방가르드영화를 만들어온 톰 앤더슨은 시카고 출신이지만, LA에서 줄곧 생활해온 앤젤로로서 일상의 터전인 LA와 스크린 속 이미지로서의 LA의 괴리를 3시간에 달하는 다큐멘터리로 담아내고 있다. 영화사를 더듬어볼 때 베르토프의 <무비 카메라를 든 사나이> <베를리 심포니> 등에서처럼 현대적인 대도시는 다큐멘터리영화의 단골소재가 돼왔다. 상업영화, 독립영화를 망라한 100여개의 영화에서 골라낸 클립으로 구성한 <LA 즐기기>가 남다른 점이 있다면, 영화의 배경으로서의 LA, 필름누아르가 그려낸 영화주인공으로서의 LA, 그리고 <차이나타운> <LA 컨피덴셜> 등에서 영화의 주제로 등장한 LA 등 영화를 통해 만들어진 LA의 이미지를 적나라하게 분석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자동차가 점령한 LA의 거리처럼 이들 할리우드영화에서 실종된 것은 베벌리힐스가 아니라 바로 옆집에 살고 있는, 때로는 버스를 이용하는 각양각색의 얼굴색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과연 우리가 알고 있는 LA가 우리가 살고 있는 LA인가라는 감독의 물음은 스타와 갱들이 아닌 이민자와 소수 인종의 도시로서의 ‘숨겨진’ LA의 면모를 담아낸 영화들의 기억을 들출 때 더욱 분명해진다. 일반 관객에게 알려지지 않은 켄트 매켄지의 <추방자들>(1961)만큼이나 LA에 아메리칸 인디언 커뮤니티가 번창했었다는 사실 또한 생소하다. 영화는 미국에서 재개발이 가장 활발한 도시답게 할리우드영화의 드라마틱한 이미지 속에 감춰진 도시의 역사를 실제 도시 공간에서도 찾기란 쉽지 않음을 보여준다. 영화클립 사이사이, 지금은 잊혀진 동네들과 건축물들의 뒷이야기를 추적하는 톰 앤더슨의 LA 보고서는 실재든 허구든 겹겹의 이미지로 구성된 LA의 역사에 한장을 더하는 셈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