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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사람이 성장한다는 것은 보는 눈이 입체적으로 된다는 말과 통할 성싶다. 내가 속한 세대를 기준으로 말하자면, 십대까지는 대부분 사물을 파편적인 지식으로 분절하는 법을 암기했고, 20대는 세상을 보는 전혀 다른 시선을 충격적으로 접하는 반역의 시기였으며, 그것조차도 단지 가능한 하나의 시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갈 무렵 우리의 청춘도 막을 내렸던 것 같다.

그러고 나자 해체의 시대가 도래했다. 고정된 모든 질서와 경계가 의심받았으며 진실은 상대화되었다. <매트릭스>는 심지어 세계 전체의 존재방식에 이원론을 재도입했다(이 시리즈의 속편들은 전혀 다른 영화이지만).

상대주의는 비단 거시적인 차원에만 해당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의 일상도 그러하다. 누군가의 확고한 믿음이 나에게는 도전해야만 하는 과제가 된다거나 나의 진실이 누군가에게는 의심스러운 대상일 수 있다. 이건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다. 존재하는 것은 오직 ‘내가 보는 법’이다.

모든 가능성을 다 품고 있는 세상, 바라보는 법도 개인마다 천차만별인 이 입체적인 상황에서, 그렇다면 내 존재의 확실성, 내 시선의 정당성을 보증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친구가 하나의 답이라고 생각한다. 친구끼리는 잘했든 못했든, 어떤 상황에서든 서로의 편에서 사태를 해석하고 조언하며 기뻐하거나 위로한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일지라도 그가 자신의 친구와 함께 있는 것을 보면 사랑스럽다. 심지어 “결혼이란 무조건 내 편이 되어줄 친구가 한명 생기는 것”이라는 말은, 결혼에 관해 지금까지 내가 들은 가장 매혹적인 정의다.그러니까 친구란 같은 방식으로 보는 사람이다.

살다 보면 내가 누구인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헷갈리는 순간이 종종 있다. 어떤 때는 그런 순간들이 숨가쁘게 엄습해온다. 그럴 때 친구는 내가 잊고 있는 것을 상기시키며 균형을 잡아준다. 현대인은 신을 버렸으나 신은 친구를 통해 현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