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칼럼 > 편집장이독자에게
꿀벌과 곰

근년에 종종 누리는 쏠쏠한 재미 하나가 있는데, TV드라마나 CF, 연극에 나온 새 얼굴 중에서 ‘찜’했던 이들이 뒤에 유명스타나 역량있는 배우로 등장하는 것을 보는 일이다. 이런 경험이 시작된 것은 유오성씨가 나온 연극을 볼 때였다. 꽤 오래전 일로, 대학로의 어느 소극장이었던 것 같다. 마치 생고무로 만든 공이 마루 위에서 튀듯이, 온몸 가득 충전된 기를 무대 위에 팡팡 발산하는 한 배우가 있었다. <친구>의 준석을 볼 때 그 젊은이의 기가 문득 다시 떠올랐었다.

이런 인연(?)으로 엮어진 나의 기억 파일 속 인물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하나는 TV에서 탄생하고 성장한 선남선녀들이고, 다른 한 부류는 어디서 나타났는지 기원을 알 수 없는데다 다소 실례를 무릅쓰자면 그리 잘생기지 않은, 이팔청춘이기보다는 약간은 나이 든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자는 영화의 중량감과 흥행까지 좌지우지할 만큼 풍요로운 역량을 갖고 있다. 당연히 생명력도 길다. 그들은 도대체 어디서 불현듯 솟아오르는 것일까?

답은 연극무대다. 이를테면 <살인의 추억> <올드보이> <실미도>의 송강호, 최민식, 설경구라는 영화배우들은, 아득한 기억이긴 하지만, 연극배우였다. 이들 제왕적 배우가 아니더라도 이른바 탄탄한 조연급 배우들은 거의 예외없이 연극무대 출신이다.

지금도 공연장에서는 수많은 배우들이 목소리와 발성법, 육체의 표현력, 작품 해석력, 그리고 한 호흡에 무대 전체를 끌어가는 연극 특유의 그 원초적이고 전방위적인 훈련을 거듭하고 있다. 이렇게 오랜 계발과 거듭되는 공연으로 닦이고 다져진 배우들을, 영화는 ‘발탁’한다. 꿀벌들이 수천번의 비행으로 모아놓은 꿀을 한입에 냉큼 집어삼키는 곰의 모습을 여기서 연상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의젓하게 성장한 한국 영화계가 이제는 연극을 위해서 무언가를 할 때가 되었다. 영화인뿐만 아니라 관객 그리고 저널이 연극과 더불어 사는 방법을 찾았으면 좋겠다. 도우면 서로 커질 것이다. 비즈니스든 즐거움이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