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News & Report > Report > 기획리포트
한국영화아카데미 20주년 기념영화제 <성인식>
박혜명 2003-12-17

스무살은 성인식을 치르는 특별한 해다. 올해로 설립 20주년을 맞는 한국영화아카데미 역시 특별한 생일잔치를 준비했다. 영화아카데미 20주년을 기념하는 영화제 <성인식>이 오는 12월19일부터 21일까지 3일 동안 짧은 축제를 펼친다. 해마다 아카데미 학생들의 졸업작품을 모은 영화제가 있어오긴 했지만 올해의 영화제가 좀더 특별한 이유는 일반인들과 공유할 수 있는 메뉴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디지털 단편 프로젝트 <이공>(異共)이다. ‘따로 또 같이’라고 영화제쪽이 풀이하는 이 프로젝트는 알려진 대로 아카데미 출신 감독 스무명의 5분 내외 디지털 단편을 모은 옴니버스다. 주제는 ‘20’ 혹은 ‘이공’. <아나키스트>를 연출한 유영식 감독과 함께 이 프로젝트를 공동기획한 김영 PD는 “해마다 졸업작품만 상영해온 영화제는 식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20주년인데 내부인 행사로 그칠 게 아니라 일반 관객과 함께할 수 있는 행사를 고민했다”고 기획 배경을 밝히고 있다.

<이공>에 참여한 감독은 아카데미 1기 졸업생이자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로 재직 중인 김소영을 비롯해 김의석, 오병철, 이용배, 장현수, 황규덕, 권칠인, 박기용, 이영재, 정병각, 이현승, 김태균, 박경희, 조민호, 유영식, 허진호, 봉준호, 이수연, 김태용, 민규동 등이다. 주어진 러닝타임은 ‘5분’이지만 7∼8분에서 10분, 심지어 15분까지 “반칙을 저지르는” 감독들도 있었다고 김영 PD는 말한다. 어쨌거나 스무 가지의 독특한 색깔을 한자리에서 경험한다는 건 이후로도 흔치 않으리란 점에서 이 프로젝트는 더욱 눈에 띈다.

<시월애> 이후 작품활동이 없었던 이현승 감독의 과 허진호 감독의 <따로 또 같이>, 박경희 감독의 <이공>(異共) 등은 모두 남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그리는 방식이 전혀 다르다. 가 어이없게 시작된 두 연인의 갈등을 씁쓸한 결말로 이끌고 있다면, 이미 관계가 달라져버린 두 연인을 바라보는 <따로 또 같이>는 허진호 감독의 전작인 와 <봄날은 간다>처럼 짧은 러닝타임 안에 긴 시간을 압축해넣고 이 시간이 이끈 변화를 묵묵하면서도 냉정하지 않은 시선으로 관찰하는 감독 특유의 감성을 보여준다. 프로젝트 이름과 같은 박경희 감독의 <이공>은 이제 막 시작할 것 같은 남녀의 만남을 심심한 듯하면서도 재치있게 담아내고 있다. 여기서는 ‘막중한’ 조연으로 출연한 임순례 감독의 얼굴도 볼 수 있다. 감독의 ‘막중한’ 조연이라면 민규동 감독의 <비밀과 거짓말>도 빼놓을 수 없다. 이 단편에 출연한 <품행제로>의 조근식 감독은 무려 1인3역을 감당해 아카데미 13기 출신으로서 <이공> 프로젝트의 배우 크레딧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민규동 감독과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를 공동 연출한 김태용 감독의 <이 공을 받아줘>는 CG까지 동원된 경우다. 민규동 감독이 “단편인데 그렇게 블록버스터로 찍으면 안 되지”라고 농담을 던지기도 했던 이 단편을 민규동 감독의 것과 함께 접수하면 두 사람이 전혀 다른 감성의 소유자임을 금세 알 수 있을 것이다. 봉준호 감독의 <Sink and Rise>는 원신, 원컷으로 촬영된 단편. 단박에 흘러가는 상황 끝에 귀여운 유머와 반전이 숨어 있다. 이 단편에는 유영식 감독의 <스무켤레>와 함께 디지털카메라 대신 스테디캠을 사용하는 ‘반칙’을 저질렀다는 사정도 있다. 이외에도 다양한 소재와 형식의 단편을 모은 프로젝트 <이공>은 10편씩 묶여 상영될 예정이다.

<성인식>은 크게 네개의 섹션으로 나뉜다. 올해 졸업작품들을 모은 ‘영 앤 이노센트’ 섹션을 비롯, 이른바 아카데미의 명단편들인 김의석 감독의 <창수의 취업시대>나 변혁·이재용 감독의 <호모 비디오쿠스> 등을 모은 ‘올드보이’ 섹션, 장현수 감독의 <위안>, 이정향 감독의 <내 이름은 상우> 등 잘 알려지지는 않았어도 ‘올드보이’에 뒤지지 않는 단편들을 자신있게 모은 ‘와일드 카드’ 섹션, 그리고 애니메이션 작품들만 모은 ‘애니씽 스페셜’ 섹션이 준비돼 있다. 그 밖에 아카데미 20년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한국영화아카데미의 신비>가 상영되며 “한국영화아카데미 잘하고 있는가”라는 주제의 포럼도 열릴 예정이다. 스무살, 이전엔 없던 자유가 주어지고 그만큼의 책임도 지워진다는 점에서 사람에게는 더없이 아름다운 나이를 맞이한 한국영화아카데미가 지금까지 지켜온 자리 위에 뿌듯한 축제 문을 열었다(영화제 홈페이지 www.kafain.com, 영화제 사무국 02-2121-4685∼6,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