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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망증이 즐거워

설문의 계절이다. 올해에도 어김없이 어떤 영화를 좋게 보았으며 훌륭한 영화인들은 누구냐고 묻는 질문지들이 날아왔다. 다른 것은 어물쩍 넘겼는데 <씨네21>의 이영진 기자에게는 꾀를 피워도 통하질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숙제를 했다.

스물여덟명이 참여한 설문 결과는, 공통적으로 언급되는 작품들의 윤곽이 비교적 뚜렷한 가운데 개인의 취향을 반영하는 몇몇 상이한 응답들이 덧붙여져 있다. 특히 개성적인 목록과 선정자를 연결시켜 상상해보는 일이 내게는 흥미로웠는데, 소리없는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는 듯했다.

그런데, 아뿔싸! 숙제를 하는 동안 내가 원천적으로 빠뜨린 영화의 목록들이 발견되었다. 다시 적어보니 리스트는 금세 죽 늘어났다. 이리저리 분류를 해봐도 작업은 여전히 매끄럽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망각도 일종의 선택이라고 생각하며 ‘나만의 베스트 5’ 선정을 종료하기로 했다.

건망증 덕분에 조금은 간단하게 마쳤지만, 한해 동안 이루어진 영화적 성과를 단칼에 평가하는 일이란 애초에 무리가 있다. 누구나 아는 대로, 이런 일은 진심의 전부라기보다는 일종의 쇼맨십을 포함한다.

다만 이 와중에 올해 한국 영화계의 중요한 특징 한 가지가 드러난다. 상업영화와 예술영화의 경계영역이 전례없이 두터워졌다는 점이다. 1∼2년 전만 해도 상당수의 영화인들은 한국영화가 일부 장르 중심의 흥행작과 훌륭하지만 관객의 외면을 받는 예술영화로 양분되는 사태가 올지 모른다며 흥행을 주도하는 영화들을 염려했다.

그러나 올해의 한국영화는 도리어 반대의 추세를 보여준다. 기자와 평론가들이 뽑은 ‘훌륭한’ 영화 가운데 상당수가 다수 관객의 지지를 받은 ‘상업적인’ 영화이기 때문이다. 좋은 대중영화가 양산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번주 씨네필 섹션에 소개되는 프랑스 영화인 장 앙리 로제는 이런 대중영화를 ‘톨레랑스’ 영역이라고 칭했다. 상업영화와 작가영화 사이의 방패막이 돼 작가영화를 보호해준다는 뜻이다.

‘한국영화는 어떠신가’를 살핀 2003년 송년기획에서 ‘안녕하시다’라고 답하게 되어 무척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