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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 메이드¨

요즘 영화계에서 제일 뜬 용어를 하나 꼽으라면 단연 ‘웰 메이드’일 것이다. 이를테면 <실미도>가 개봉영화 사상 최단기간에 관객 400만명을 돌파한 것은 웰 메이드 영화의 승리이며, 지난해 한국영화가 역사상 처음으로 국적별 관객동원 1위에 올라서면서 전체 영화산업이 흑자를 회복한 것 역시 <살인의 추억> <장화, 홍련>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황산벌> <올드보이> 같은 웰 메이드 영화에 대한 관객의 폭발적인 호응 때문이라는 등의 분석 기사가 많다.

이에 따라 웰 메이드는 2004년 한국영화의 주요 흐름을 예측하는 키워드로 부상했다. 몇년째 고만고만한 코미디물이 장악했던 한국영화의 방향 전체를 바꾼 웰 메이드 영화의 추세가 올해 어떻게 이어지느냐가 영화계의 가장 큰 관심사라는 소식에 이어 영화인들은 올해 라인업을 죽 훑어보며 자신있어 한다는 반응도 첨부되어 있다.

웰 메이드는 또한 블록버스터라는 문제적인 용어를 대체하고 있다. <태극기 휘날리며>를 마무리 중인 강제규 감독은 “나는 그냥 웰 메이드 전쟁영화를 한편 만들어보고 싶었다”고 말함으로써 이 대작영화가 블록버스터로 포장될 때의 부담을 슬쩍 비켜나간다. 심지어 <올드보이>의 박찬욱 감독은 <공동경비구역 JSA>로 한국영화의 웰 메이드 시대를 열었던 감독으로 재정의되기도 한다.

이런 용례들을 종합해보면 웰 메이드 영화란 장르의 관습, 스타 시스템 등을 활용하되 감독의 개성적인 스타일과 문제의식을 겸비함으로써 대중의 호응까지 얻어낸 잘 만들어진 상업영화라는 뜻 정도로 간추릴 수 있을 것 같다. ‘잘 만들어짐’이란 쾌적한 리듬감으로 바꿔 말해도 좋을 것이다.

반면 전통적으로 이 용어가 작가주의 지지자들에 의해 사용될 때는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를 지칭하는 듯한 뉘앙스를 띠었다. “환부를 들춰 보였던 마이클 무어의 다큐멘터리 <볼링 포 콜럼바인>에 비한다면 <런어웨이>의 교훈은 노골적인 데가 있다. 웰 메이드 상업영화지만 그 이상은 되지 못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는 표현이 그 예다.

하나의 개념이 용법의 분화를 일으키는 현상이 관찰되고 있는 셈이다. 웰 메이드 영화는 상업성, 즉 대규모 소통을 지향하기 때문에 미학이나 주제 면에서 급진적이지 않은, 타협의 지점이 있다. 나는 여기서 낡은 질서를 뒤집어엎은 프랑스혁명은 위대한 계몽사상보다는 대중 사이에 널리 팔리던 베스트셀러들로부터 이미 촉발되었다는 말을 상기한다. 길은 하나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