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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성의 영화들

근년의 한국영화를 이리저리 가로질러보면 몇 가지 흥미로운 경향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중의 하나가 지역성(locality)을 적극적으로 사유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사투리에 부여된 전형화된 이미지를 끌어다쓰는 예는 오래전부터 있어왔지만, 최근에는 특정 언어와 인물의 기질적인 특성을 단단히 결합시킴으로써 문화의 지역성 자체를 영화의 핵심으로 끌어올리는 방식이 두드러진다. 지역성이 곧 캐릭터인 셈이다.

영화 <친구>가 잭팟을 터뜨리는 데에 한몫 단단히 했던 지역성은 <똥개> <황산벌>에서도 자의식적으로 추구되었다. 이만큼 선명하진 않을지라도 홍상수 감독의 영화와 인사동 문화, 과 강남 아파트촌의 관계가 내게는 매우 의미있는 코드로 다가온다.

우연하게도 서울의 남북을 각각 내세운 영화가 연달아 개봉한다. <말죽거리 잔혹사>가 강남 영화라면 <안녕! 유에프오>는 강북 영화라고 부를 만하다. 전자는 대한민국 수도서울 하고도 노른자위인 강남의 아이들 이야기지만 양재동의 옛 이름인 말죽거리를 굳이 들춰낸 데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우리가 조금 더 촌스럽고 단순하던 시절로 되돌아갔다. 후자의 경우 강북의 전통적인 귀족 지역이나 상업, 문화 중심지 대신 어디로 보나 메트로폴리스의 면모와는 거리가 있는 은평구 구파발 지역을 선택했다.

두 영화는 서울에 내재해 있는 순박한 시공간을 애써 찾아나섰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지만 걷는 길이나 도달한 지점은 확연히 다르다. <말죽거리 잔혹사>는 군대와 교육이 아무런 여과장치 없이 뒤섞이고 난폭한 가부장질서와 국가주의 이데올로기가 서로 간통하는 방식, 그것이 소년들의 몸과 마음에 폭력적으로 아로새겨지는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그러면서도 꽃미남의 육체적 매력, 즉 현대 강남의 섹슈얼리티를 마음껏 활용하는 영악함을 잊지 않는다.

<안녕! 유에프오>는 환상에 기초한 꿈을 꾼다. UFO라는 게 분명 존재하지만 만나게 될 가능성은 매우 낮은 실체라고 한다면, 이 영화에 나오는 구파발 역시 UFO만큼이나 현실적이면서도 비현실적이다. 넉넉잖은 살림살이에 다소 거칠거나 어수룩하지만 속내가 선량한 사람들만이 한결같이 살고 있는 단일한 주변부로 설정되었기 때문이다. 관객은 구파발이라는 주변부와 대립되는 단일한 중심부를 상상하게 되니, 영화는 본의 아니게 중심-주변 이분법을 활성화시킨다. 애초의 선한 의도와 달리 대상을 소외시키는 것이다.

이런 선택은 <안녕! 유에프오> 자체에도 역기능을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빛의 화가는 어둠을 뛰어나게 그리는 화가에 다름 아니다. 타자를 내면에 품고 있지 않은 지역성이 감동을 주기란 눈먼 이가 UFO를 보는 것만큼이나 이루기 힘든 꿈이다. 영악한 강남이 어수룩한 강북에 판정승을 거두는 모양새는 부동산 가격 하나로 끝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