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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끓는 무엇

요즘 부쩍 눈에 띄게 늘어난 <씨네21>의 업무 중의 하나는 중국이나 일본에서 찾아오는 출판계 인사를 만나는 일이다. 그들의 용무는 대부분 같다. 자국에서 인기있는 한류 스타의 사진과 기사를 제공해줄 수 있겠냐는 것이다.

오늘 방문한 일본 손님들은 한국에서도 아직 개봉하지 않은 <태극기 휘날리며>의 장동건씨를 취재하러 왔다며, 일부 스타들의 경우 표지에 이름만 나와도 책이 팔리는 형편이라고 전했다. 개봉예정인 영화 목록에는 아직 우리 극장에 걸려 있는 작품도 눈에 띄었다. 이들은 방문 목적을 잊은 채 <오아시스>의 첫 장면에서 설경구씨가 두부를 먹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느냐, 한국에서 나오는 영화는 무조건 사려고 하는 일본 영화계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한국 문화를 제대로 반영하는 자막 번역을 해야 할 텐데 걱정이라는 등의 질문과 탄식을 쏟아놓았다. 영화가 국경을 넘을 때는 차이와 오인이 발생하는 법이니 일본 관객의 자유로운 이해에 맡겨두면 되지 않겠냐고 답변하는 나를 보면서, 서구의 저명한 영화인들이 우리에게 늘 과시했던 품위있는 관용이란 바로 이런 여유에 기초한 것이었나보다, 생각했다.

국제교류 관계에 있어서 우리가 이방인으로부터 이처럼 호기심과 겸손한 열망으로 가득 찬 질문을 받는 분야가 또 있을까 궁금하다. 수양산 그늘이 강동 80리라더니, 현장 영화인들 덕분에 누리는 호사가 크다.

갑자기 옛 생각이 났다. <씨네21>을 창간하던 1995년에는 영화 주간지라는 게 없었다. 이걸 만든다고 하니 한겨레신문사 안에서도 난리가 났다. 당시에 몇몇 선배들이 한국 영화산업과 젊은 대중의 동향이 심상치 않다고, 새로운 모험이 의미있을 거라고, 사표를 가슴에 품고 다니며 집요하게 설득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그뒤로 9년이 지난 지금, 영화를 둘러싸고 혹은 영화 안에서 무언가가 다시 한번 들끓는다. 이번에는 글로벌한 무엇이다. 이번주 <씨네21>에는 동구권의 석학 슬라보예 지젝의 에세이를 싣는다. 지젝은 정신분석학과 영화이론을 결합시켜, SF나 호러영화 속에 출현하는 외계의 사물 혹은 공포의 근원이 우리 내면의 한 부분임을 설득하면서 페미니즘 이론의 확장까지 제안한다. <버라이어티>의 평론가 데릭 엘리는 한국 영화인들이 서구 영화제와의 관계에서 흔히 저지르는 오판들을 안타까워하며 조언하는 글을 기고했다. 또 ‘아시아 네트워크가 뜬다’는 특집기사를 통해 아시아를 무대로 벌어지는 한국 영화산업의 지형도를 탐색했던 이성욱 기자는 지금 그 후속 기획을 위해 홍콩에 가 있다. 홍콩을 통해 중국을 엿보고 있다는 그의 목소리는 약간 흥분한 것처럼 들린다. <씨네21> 안에 형성되기 시작하는 글로벌 네트워크는 한국 영화산업의 역동성과 밀접한 상관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