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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에서
2004-03-04

편집장

나는 영화를 통해 세상 보는 눈을 정해나가는 경우가 꽤 있다. 사형제도에 대한 견해도 그중 하나였는데 중학교 때 TV 주말의 명화를 본 날, 주인공이 살인을 저질렀는지의 여부와 상관없이 인간의 심판으로 다시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다는 것이 엄청나게 충격적인 일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어찌나 울었는지 뱃살이 아파서 숨을 못 쉴 지경이었다.

한참 세월이 지난 뒤 <데드 맨 워킹>이란 영화를 극장에서 보았다. 그 당시 내가 좋아하던 사람들이 감독과 주연을 한데다 주제가 살인제도에 관한 것이었으므로 표 끊고 들어갈 때의 기분은 약간 흥분상태였다. 드디어 저 파렴치한 살인범을 죽이느냐 마느냐, 드라마의 극적 긴장감이 핵심에 육박해가는 순간이 왔다. 아뿔싸, 삐리리∼ 울리는 휴대전화 소리! ‘저 전화기의 주인은 지금 얼마나 미안해할까’ 생각하는 순간, “여보세요”라니? 김이 팍 샜지만 숀 펜의 연기력은 다시 한번 나를 영화에 몰입하도록 도와주었다. 마침내 그가 사형집행 호출을 받고 전기의자에 앉는 대목에 이르렀다. 다시 한번 울리는 전화기와 계속 이어지는 통화음…. 극장 문을 나설 때 내 머리 속은 ‘왜 그 전화기 주인의 뒤통수를 한대 때려주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뿐이었다.

요즘은 시사회에서 영화를 보는 경우가 많다. 대개 기자나 영화계 인사들이 참석하는데 전화기가 울리고 통화를 하는 상황은 매번 어김없이 벌어진다. 대부분 지금 영화를 보고 있으니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고 한다. 신기한 대화 내용이다.

극장에서 통화하거나 공연장에서 마른기침 해대며 뽀시락거리는 데 민감해진 것은 그때 그 사람의 뒤통수에 대고 화풀이를 못했기 때문일까. 내게도 영화 보며 전화를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안 생기리란 보장은 없는데. 소음 없는 완벽한 상태를 원하는 것도 일종의 신경증 아닐까. 관객이 떼지어 떠들며 영화 보는 시대도 있었다는데 아름답지 않아? <하녀>를 상영할 때 고무신 신은 여성 관객들이 스크린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저년 죽여라”고 소리질렀다지. 별별 생각을 다해보지만, 그래도 싫은 건 싫은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