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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을 속인 사기꾼들의 이야기, <범죄의 재구성>

한국은행을 속인 5인조 사기단, 그러나 진짜 고수는 따로 있다

갱스터영화가 도시의 불안을 먹고 자란 장르라면 사기극은 자본주의의 허영심이 키운 장르일 것이다. 돈은 모든 사기극의 원점이요 귀결이며 인간은 화폐의 잔인함과 우스꽝스러움을 연기할 뿐이다. 적어도 이 영화 <범죄의 재구성>에선 그렇다. 김 선생(백윤식)이 어느 기업 연수원에서 이라크 화폐에 대해 일장연설을 할 때 그 말엔 정말 큰 사기는 범죄가 아니라는 주장이 들어 있다. 그러므로 큰 건이 있다면 패를 놓을 수가 없다. 그런 욕망이 아니라면 이 세계는 돌아가지 않는다.

<범죄의 재구성>은 간단히 말하면 한국은행을 속인 사기꾼들의 이야기다. 일군의 전문가 집단이 의기투합해 불가능해 보이는 목표를 달성한다. 짐작하겠지만 여기까지는 <오션스 일레븐>과 크게 다르지 않다. 11명이 필요했던 <오션스 일레븐>과 달리 <범죄의 재구성>은 5명으로 팀을 구성한다는 게 가장 큰 차이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정리하는 건 이 영화가 파놓은 함정에 빠지는 길이다. 왜냐하면 <범죄의 재구성>은 첫 장면부터 사기극의 실패를 암시하기 때문이다. 주인공 창혁(박신양)이 죽는 장면에서 시작한 이상 여기엔 다른 이야기가 필요하다. 창혁이 죽고 한달 뒤 창혁의 형 창호가 경찰서를 찾으면서 사건은 본격적인 재구성에 들어간다. 형이 창혁의 보험금 5억원의 수혜자임이 드러나고 김 선생과 동거하던 여인 인경(염정아)은 그 돈을 노리고 창호에게 접근한다. 결국 영화는 두 가지 서로 다른 호기심으로 관객의 관심을 붙잡아둔다. 하나가 한국은행 사기 사건은 어떻게 이뤄졌는가, 라면 다른 하나는 박신양은 어째서 1인2역을 하고 있는가, 이다. 영화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궁금증의 실마리를 하나씩 던져놓는다.

이런 영화에서 플롯이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하다. 사기꾼을 다룬 영화가 관객이 속아넘어갈 만한 사기를 보여주지 못한다면 그것처럼 맥빠지는 일도 없다. <범죄의 재구성>은 꽤 근사하다. 최동훈 감독이 치밀하게 취재해서 쓴 이야기 구조와 솜씨 좋은 편집은 사건이 흘러가는 시간을 즐길 수 있게 만든다. <오션스 일레븐>처럼 화려한 장면은 없지만 진짜 사기꾼들 틈에 들어갔다 나온 느낌이 들 정도로 생생한 대사도 인상적이다. “청진기 대보니까 진단 딱 나온다. 시추에이션 괜찮아”, “형님, 제가요. 카프카를 좀 아는데요. 부조리! 예? 부조리! 저 제비랑 친해요. 근데 집을 몰라요” 같은 사기꾼의 속성을 드러내는 대사가 <친구>의 부산 사투리가 그랬듯 효과적으로 극에 몰입하게 만든다.

1인2역의 박신양을 비롯해 주조연이 고루 조화를 이루는 이 영화에서 특히 돋보이는 배우는 백윤식이다. 사기꾼들 사이에서 대가로 인정받는 김 선생은 영화에 대한 또 다른 독법을 가능케 하는 인물이다. <범죄의 재구성>은 박신양이 맡은 창혁의 영화로 본다면 통쾌한 사기극이 되겠지만 김 선생의 영화로 본다면 비극이다. <히트>의 로버트 드 니로를 연상시키는 김 선생은 누구보다 사기꾼들의 질서에 정통한 인물이다. 어떤 위기에도 침착하며 절대 폭력을 휘두르지 않는 투철한 직업윤리를 가진 이 인물은 조용히 말년을 보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범죄의 세계는 한번 발을 디딘 자를 그냥 내보내지 않는다. 결국 김 선생은 자존심에 상처를 입고 망가진다. “오해? 풀고, 상처? 치료하고, 감정은 씻으면 돼. 근데 돈이란 건 안 그렇더라구.” 그렇게 말하며 김 선생은 자신이 속한 세상의 비정함에 배신당한다. 어떤 면에선 김 선생의 캐릭터가 매력적이라는 점 때문에 영화에 대한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실제 영화는 김 선생의 비극보다 창혁의 복수극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신인감독의 데뷔작으로 합격점을 받을 만한 이 영화는 미국에서 강도영화라고 이름 붙인 장르가 한국에 어떻게 수입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주로 젊은 감독들의 영화적 재능을 선보인 이 장르는 국내에선 깡패영화의 진화과정과 묘하게 엇갈린다. <범죄의 재구성>은 <피도 눈물도 없이>와 더불어 할리우드 장르영화에 매혹된 세대가 내놓은 흥미로운 생존전략이다. 비록 범죄소설이 잘 팔리지 않는 열악한 환경이지만 범죄영화라면 충무로도 꽤 뿌리 깊은 곳이 아닌가. <범죄의 재구성>은 마르지 않는 이야기의 샘 하나는 제대로 파놓았다.

:: 강도영화

피도 눈물도 없이 털어라

범죄영화의 한 줄기로 ‘강도영화’(Heist Movies)라는 소장르가 있다. 영화평론가 로저 에버트는 현대적 강도영화가 1954년 파리에서 발명됐다고 말한다. 줄스 다신의 <리피피>와 장 피에르 멜빌의 <도박사 밥>이 그해 만들어졌다. <리피피>는 주인공 토니가 세명의 전문가를 규합해 보석상을 터는 이야기로, 대사나 음악없이 30여분에 걸쳐 이루지는 절도장면이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영화. 프랑수아 트뤼포가 “자신이 본 최고의 필름누아르”라고 말했던 작품이다. 반면 멜빌의 <도박사 밥>은 궁지에 몰린 도박사 밥이 도빌의 카지노를 터는 이야기로, <카이에 뒤 시네마>의 평론가 출신 감독들이 등장하기 전에 프랑스 뉴웨이브의 시작을 알린 영화다. <오션스 일레븐>이나 폴 토머스 앤더슨의 <리노의 도박사> 등은 <도박사 밥>의 영향을 받은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덧붙이자면 존 휴스턴의 1950년작 <아스팔트 정글>은 <리피피>와 <도박사 밥> 이전에 강도영화의 기초를 다진 영화라고 할 수 있다. 1950년대 이후 강도영화는 꾸준히 제작됐지만 주류 장르로 부상할 만큼 많은 작품이 나온 적은 별로 없다.

<범죄의 재구성>에 상당한 영향을 준 조이 로이 힐의 <스팅> 같은 경우는 강도영화로 구분되기 애매한 점이 있다. <스팅> 역시 완전범죄를 만들어내지만 강도가 아니라 사기와 도박이 중심에 놓인 영화였다. 1990년대 쿠엔틴 타란티노나 가이 리치 같은 감독이 나오면서 강도영화는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저수지의 개들>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 같은 영화는 유행을 불러일으킬 만한 에너지가 있었다. 최근엔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이 <오션스 일레븐> <식스티 세컨즈> <스코어> <이탈리안 잡> 등을 제작, 강도영화를 주류 장르의 품에 안착시키기도 했다. 국내에선 류승완 감독의 <피도 눈물도 없이>가 본격적인 강도영화로 손꼽힐 만하다. <피도 눈물도 없이>는 <범죄의 재구성>과 더불어 미국산 장르영화의 한국적 변형을 보여주는 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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