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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새로 시작하는 오래된 연인, <첫키스만 50번째>
박은영 2004-04-13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린 여자, 매일 같은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것이 가능할까

상대를 바꾸지 않고도, 오래된 연인 사이로도, 그 사랑이 매일 새로울 수 있을까. 매일 사랑에 빠지고, 매일 첫 키스를 나누는 기쁨에 취할 수 있을까. <첫키스만 50번째>의 연인들은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하루만 지나면 전날 기억을 까맣게 잊는 여자, 수많은 여성들과 하루 동안의 ‘시한부 로맨스’ 만들기에 열중하던 남자가 만나 눈이 맞아버린 것이다.

아내의 살인범에 대한 단서를 사진과 문신으로 기록하는 <메멘토>의 레너드, 동네 미아 찾기에 동참해 ‘내가 누구지?’를 연발하는 <니모를 찾아서>의 파란 물고기 도리처럼, 이 영화의 주인공 루시는 단기 기억상실증을 앓고 있다. 1년 전 교통사고로 머리를 다친 루시가 인지하는 시점은 사고 이전과 사고 당일에 머물러 있다. 이런 사정을 알지 못하는 헨리는 루시에게 접근하고 사랑을 예감하지만, 루시에겐 바로 전날 데이트한 헨리를, 다음날 소 닭 보듯 하는 망각의 일상이 반복된다. 헨리는 그런 루시에게 매일매일 그들의 사랑과 현실을 일깨워주기로 한다.

<첫키스만 50번째>는 설정만으로 보면, 같은 하루에 갇혀사는 남자가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사랑을 얻고 냉소를 걷어낸다는 이야기 <사랑의 블랙홀>을 닮아 있다. 하지만 그 ‘반복되는 하루’가 자신을 객관화하고 운명을 바꾸는 기회로 작용한 <사랑의 블랙홀>과 달리, 이 영화에선 두 남녀의 사랑에 방해물인 동시에 초강력 촉매제로 편리하게 연동된다. 천하의 바람둥이가 대답없는 메아리처럼 진척없는 사랑에 온몸을 던지는 개과천선의 과정은 별 설득력이 없어 ‘운명’ 또는 ‘업보’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영화는 ‘우리가 사랑에 빠지던 그 순간’에 영원히 갇혀, 사랑의 유통 기한 따위 잊고 싶다는 열망이 빚어낸 판타지다. 하와이의 노을과 야자수와 바다가 조성하는 로맨틱 무드처럼 달콤하고 비현실적인 판타지.

매일 새로 시작하는 오래된 연인에 어울리는 캐스팅이랄까. <웨딩 싱어>의 천진난만한 연인 애덤 샌들러와 드루 배리모어가 다시 만나 미소를 짓고 노래를 부를 때 그 모습이 데자뷰처럼 느껴지는 건 흠이라면 흠이다. 애덤 샌들러의 영화에는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짝 친구 롭 슈나이더의 화장실 유머, <반지의 제왕>에서 충복 샘으로 열연한 숀 오스틴의 충격적인(!) 변신은 주인공들의 순애보가 무거워질 만하면 수시로 치고 나오지만,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스럽게 만들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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