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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 그림

영화가 어째서 신기한 물건인고 하면, 2차원의 평면 위에 3차원인 척하는 이미지가 움직이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가능해진 것은 카메라니 영사기니 하는 특정한 기계 장치가 발명된 덕분이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움직이는 이미지를 붙잡아서 놀아보려는 인간의 유희적 소망에서 비롯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18세기에서 19세기에 걸쳐 살았던 조선의 화가들은 그림 안에 움직임을 표현하는 데 적극적이었다. 긍재 김득신은 마루에서 담배를 태우던 남자가 말썽꾸러기 고양이를 뒤쫓느라 탕건이 벗겨지는 줄도 모르고 맨발로 우당탕탕 마루를 내려서는 순간을 포착했다. 단원 김홍도는 음률에 맞추어 춤추는 무동의 옷자락 속에, 혹은 기와를 얹느라 하늘로 던져올린 물체의 하강 속에 순간성을 기록했다. 혜원 신윤복의 경우 유곽 앞에서 힘자랑하는 왈패들의 싸움 뒤끝이나, 밤길에 남몰래 만난 연인들의 밀회장면, 악공의 연주에 맞추어 칼춤 추는 무희 등 육체의 움직임과 감정의 한순간을 특히 많이 그렸다.

같은 시기의 다산 정약용은 국화꽃을 촛불에 비춰보는 놀이를 즐겼다. 촛불에 비친 국화 그림자가 방 안 벽에 만들어내는 신기한 이미지들을 친구들에게 보여주고는 놀라워하는 반응에 으쓱하는 기분을 글로 남겼다. 그는 또 칠실관화설에 관심이 컸다. 옻칠을 한 커다란 검은 상자에 렌즈를 끼워놓고 들여다보며 사물과 산천의 이미지가 상하좌우로 뒤집힌 모양을 감상했으니, 서양말로 카메라 옵스큐라를 가지고 놀았던 것이다. 이 땅에 활동사진이 전래되자마자 빠르게 확산되어 20여년 만에 나운규와 같은 걸출한 작가를 배출하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한 시대의 감수성이 이와 같이 움직이고 있는 와중이었으니까.

그 시대의 사람들이 3차원의 움직임을 2차원에 붙잡아두는 재미에 빠졌다면, 오늘날의 우리는 반대로 스크린에 붙잡힌 이미지로부터 현실의 움직임과 감정을 되살리는 재미로 산다. 되살려낸 느낌이 생생할 때 ‘영화 참 잘 봤다’고 말하는 것일 터이다. 여기에 한술 더 떠서 영화의 감동을 만들어낸 어떤 원천을 현실에서 직접 만나기라도 하는 날이면 그야말로 ‘짱’이다. 영화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을 보고 나서 그 나이든 쿠바 뮤지션들의 내한 공연장에 갔을 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사람들과 함께 춤을 추었고, 영화 <그녀에게>와 피나 바우쉬의 무대 공연을 연달아 만난 뒤에는 한동안 붕붕 떠다녔다.

이번주에 개봉하는 영화 <바람의 전설>에는 이런 유의 설렘이 살짝 깃들어 있다. 섹시 댄스를 최고의 재주로 치는 요즘과 달리, 몸의 욕망과 아름다움을 천시하고 억압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던 한 시절(혹은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현재)을 사는 춤꾼 이야기인데, 영화의 리듬이 조금만 더 쾌적했더라면 극장에서 스텝 밟을 뻔했다.

이번주부터 새로 연재되는 ‘영화와 미술’ 코너는 미술이 영화와 만나는 접점들을 중심으로 영화사를 색다르게 조명한다. 2차원의 정지된 이미지가 역시 2차원의 평면 안에서 3차원의 환영(幻影)으로 변형되는 마술과 같은 순간들을 자유롭게 횡단하면서 물끄러미 응시하고 사색하다 다시 느릿한 걸음을 옮기는 필자 한창호 선생의 행보에 동참하는 기쁨이 크다.

김소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