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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일

바흐의 커피 칸타타- 오늘 라디오에서 바흐의 <커피 칸타타> 중 <커피는 왜 이다지도 맛있을까>와 <고집 센 딸자식>을 들었다. 가사는 알아들을 수 없지만 소프라노의 목소리가 간드러지게 넘어가는 대목에서, 커피잔을 돌려 향을 맡은 뒤 한 모금 들이키며 ‘히야~’ 하고 감탄하는 300년 전 음악가의 느낌이 전해진다. 동글동글 사람 좋게 생긴 바흐가 커피를 앞에 두고 말 안 듣는 딸내미를 탄식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웃음이 나왔다.

신윤동욱의 너스레- 이번주 ‘TV를 보다’ 칼럼은 민주노동당이 정치적으로 의미있는 약진을 이루라는 응원가다. 그런데, 내가 알기로, 남부럽잖게 생각 많고 점잖은 신윤동욱 <한겨레> 기자가 노회찬 ‘빠돌이’를 자처하며 꺅꺅거리고 정준하식 개그까지 구사하는 폼새가 여간 재밌는 게 아니다. 정치의 진보를 욕망과 쾌락의 지점에 놓고 선동하는 노련함을 보이는 것이다. 젊은이의 눈에는 불꽃이 있고 노인의 눈에는 빛이 있다고 했다. 스스로를 꽃은 떨어졌으나 열매는 아직 나타나지 않은 시무룩한 나이라고 종종 생각하는 나는, 이 ‘빠돌이’의 난만한 불꽃이 마냥 부럽고 사랑스럽다.

<범죄의 재구성>과 프리뷰- 깔끔한 데뷔작 <범죄의 재구성>에 대해서 남동철 기자는 “갱스터영화가 도시의 불안을 먹고 자란 장르라면 사기극은 자본주의의 허영심이 키운 장르”라는 말로 이 영화의 위치를 지정한 뒤, 깡패나 조폭을 내세운 범죄영화로 한몫 단단히 보았던 충무로에서 사기꾼 영화라는 새로운 이야기의 샘이 제대로 파였다는 환영의 말로 글을 닫았다. 할리우드 장르영화를 지혜롭게 활용한 통쾌한 사기극이지만 두 번째 주인공인 김 선생(백윤식)의 영화로 본다면 ‘비극’이라는 해석도 곁들인다. 좋은 영화의 등장과, 그것을 적절한 자리에 위치지우는 순간적인 감식안을 동시에 보니 기분 좋았다.

영화 비평계의 새로운 힘- 영화평론가 정승훈씨가 최근 <씨네21>을 무대로 펼쳐진 의미있는 비평적 시도들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키워드로 엮어 자신의 견해를 구성한 글을 보내주었다. 나는 오이디푸스 이론을 처음 접했을 때, 엄마랑 성교하고 싶어서 아빠를 죽이려 하는 남자아이의 소망이라니 웬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일까, 뜨악했다. 요새는 점차로 개인과 텍스트, 사회를 조형하는 무의식의 역동을 해명하는 참 훌륭한 상징체계로구나, 생각한다. 지난해 <씨네21> 평론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정승훈씨의 이번 글은 부분적인 모호함에도 불구하고 젊은 평론가가 생산한 드문 역작으로, 정신분석학이라는 화려한 비평 도구가 한국 대중영화와 본격적으로 결합할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생각된다.

한국 종교인의 지성- 종교신학자인 김진 박사는, 영화도 다른 예술매체와 마찬가지로 그 영화가 만들어진 ‘삶의 자리’가 있어서 시대정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며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비롯해 예수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종교영화들이 대부분 신앙과 사회의 보수주의를 독려하고 응집하는 기능을 해왔다고 비판하는 글을 보내왔다. 한국 기독교는 이런 지성의 덕분으로 우리의 신뢰를 그나마 유지하고 있을 것이다.

생텍쥐페리의 비행기 잔해- 프랑스 마르세유 근해에서 생텍쥐페리가 몰던 항공기 잔해를 발견했다고 한다. 2차대전 중이던 1944년에 자신이 몰던 비행기와 함께 실종된 생텍쥐페리의 이야기는 그가 지은 <어린 왕자>와 겹쳐지면서 내게 ‘어딘가 저 너머’를 상상하도록 만들어주곤 했다. 60년 만에 출몰한 잔해가 기억 속에 가라앉아 있던 내 어린 날들도 불러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