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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인(人)

집 근처에 세워둔 차가 새벽 세 시에 끌려갔다. 행정이 아니라 사업일세, 구시렁거리며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저녁에 차 찾으러 가자니 심사가 꼬였다. 그 동네 사는 친구와 선배 커플의 집에 죽치고 앉아 인생이 우울하다며 심드렁한 이야기들을 늘어놓았더니, 이런저런 조언과 함께 “말 잘 듣는 애처럼 뭘 그리 연신 고개를 주억거리느냐”는 타박도 덤으로 날아왔다. 그래도 편안했다. 특별한 역할의 잣대에 나 자신을 밀어넣기 위하여 혹은 그런 것에 맞지 않는 어떤 결핍이나 잉여 때문에 속앓이하는 사회관계 대신, 시간의 흐름 속에서 나를 보아왔고 마음의 복잡한 지형까지 수용해주는 지인들의 품이었기 때문이다.

다음날에는 어떤 감독이 우리 동네로 놀러왔다. 시나리오를 보여주고 싶다는 것이 겉으로 말하는 이유였지만 누군가와 마음을 나누고 싶어하는 심경이 역력했다. 창작자로서, 가장으로서, 사회인으로서 뼈저린 회의를 곱씹으며 긴 나날 동안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젊은 영화감독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기란 불가능한 일이지만, 제작 현장에서 일한 경험과 내 자신이 겪어온 생의 갈등을 동원하여 정성껏 대화를 나눴다. 그는 “지금 주고받은 말을 스캐닝하듯이 그대로 담아갈래요”라며 조금은 온기가 도는 얼굴로 자리를 떴다.

내가 누군가에게 기대고 누군가가 내게 기대는 이틀간의 경험을 대조하면서 나는 사람 인(人)자를 떠올렸다. 길고 짧은 막대기가 서로 기대고 있는 모양.

<효자동 이발사>는 우리가 오랫동안 긴 막대기라고 믿고 살았던 철권 통치자 대신 그를 받치고 있던 작은 막대기의 키 높이에 카메라를 맞춘 영화다. 그것은 또한 작은 막대기에 기대며 살았던 더 작은 아들의 따뜻한 눈높이이기도 하다. 덕분에 작아보였던 아버지는 스크린을 가득 채우며 둥실 떠오르고, 거대했던 권력자는 바로 그 거대함 때문에 어처구니없는 배경으로 물러난다. 이 틈새에서 동화적인 환상으로 소묘된 전기 고문 장면은 역대 어떤 영상물의 고문장면보다 가슴 아리다.

연속적으로 이어진 사람 인(人)자의 관계를 상상하다보니 예전에 서태지씨가 입었던, 시옷자 무늬가 연달아 새겨진 티셔츠가 떠오른다. 이건 또 고암 이응노 화백의 <군상>과도 비슷하지 않은가. 고암은 한번의 붓놀림으로 만들어내는 사람의 모양을 수백 수천개씩 이어그린 그림들을, 광주학살과 민주화 항쟁의 시대인 80년대에 줄기차게 그렸다. 최근 북한의 기차역 참사를 연민하는 도움의 손길이 남한 사람들 사이에 별다른 트집없이 퍼져나가고, 이웃돕기식 지원이 아니라 아예 북한의 공장이 돌아가게 만들자는 캠페인이 시작되는 것을 보자니 고암의 군상이 한반도를 덮으며 확대되는 느낌이 든다.

부처님 법문 중에, 인드라의 그물은 천공에 널리 펼쳐져 있어 어느 한쪽을 건드려도 그 즉시 온 우주에 두루 퍼지게 된다는 말씀이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