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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라는 집요한 질문으로 만든 서스펜스, <퍼펙트 블루>

‘내가 누구인가?’라는 집요한 질문으로 만든 서스펜스. 이른바 히치콕풍(風) 재패니메이션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만큼 근원적이고 (그렇기 때문에) 진부한 것은 없다. 그러나 매스미디어를 매개로 팬과 스타 사이에 발생하는 교감은 사실 동의(이성)나 공감(감성)에 속한 것이기보다는 차라리 동일시에 해당하기 때문에 그 질문의 무게는 (물론) 다를 것이다. 스타나 아이돌이 화려한 ‘타자’라는 사실은 한 개인에게 동일시라는 방식으로 폭사되는 시대의 집단적 무의식 때문이다. <퍼펙트 블루>가 그 화려한 ‘타자’에게 ‘나는 누구일까?’라는 질문을 시작하는 것도 물론 그런 맥락에서다.

절정의 인기를 누리고는 있지만 내리막길만 남아 있는 일본의 소녀 아이돌 그룹 ‘참’의 리더격인 미마. 롱런을 위해 에이전시로부터 배우로의 전업을 권유받고 그룹을 탈퇴한다. 광적인 팬의 위협도 위협이지만 핑크빛 공주 의상을 입는 자신에 익숙했던 그녀에겐 갑자기 강간신을 찍는 성인 연기자로서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이 더 힘겨운 일. 시골에서 올라온 자연인으로서의 그녀가 진짜 그녀일까? 아니면 아이돌 스타로서의 그녀가 진짜 그녀일까? 혹은 누드사진을 찍는 그녀가 진짜일까?

애니메이션이면서도 카메라의 시점 숏을 엄정하게 지켜내는 영화는 급기야 그녀보다 그녀를 더 잘 아는 그녀와 똑같이 생긴 또 다른 ‘미마’가 출현하고 블로그에 그녀의 사생활을 본 듯이 소개하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보여주며 ‘나는 누구일까?’라는 동일한 질문에 난이도를 높여간다. 드라마에서 이중인격자를 연기하는 그녀가 진짜인지 바깥에서 실제로 살인을 저지르고 다니는 또 다른 미마가 진짜인지 그녀 스스로도 구별해낼 수가 없다.

1997년 부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소개되어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퍼펙트 블루>가 묻는 자기정체성은 <매트릭스>의 홍역을 앓고 난 2004년에는 다소 진부한 모티브인지 모른다. 추리극 차원에서 보자면 반전도 충분히 예상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7년의 세월이 <퍼펙트 블루>가 97년에 가할 수 있었던 충격파에서 약간의 체감 효용을 일으켰을지 모르나 미마가 아예 자신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해가는 후반부의 아찔한 광경, 강박적으로 반복되는 존재론적 질문, 그리고 그 질문을 배신하는 화면이 이끄는 서스펜스를 절대 가볍게 볼 수 없을 것이다. 진부하게만 보였던 ‘나는 누구일까’라는 질문이 극중극, 카메라 속 카메라라는 방식으로 집요하게 비월해가다가 마침내는 화면 앞 관객에게까지 둔격을 가해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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