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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에 대한 진부하지만 절실한 물음, <메트레스 연인>
오정연 2004-06-08

진부한 동문서답. 그러나 나름대로 절실한 물음

“널 사랑해. 내 곁에 있어줘.” “나의 일을 포기할 순 없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단 얘기야?” 세상에서 가장 답답한 동문서답처럼 보이지만, 일본에서도 이 대화는 남의 일이 아닌 모양이다. 더이상 잃을 것이 없는 중년 남녀의 절대적인 사랑을 그렸던 <실락원>의 작가 와타나베 준이치. 그의 또 다른 소설을 영화화한 <메트레스 연인>은 결혼 적령기를 넘긴 한 여성의 혼란스러운 자아찾기라는, 진부하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

고급 프랑스 레스토랑의 소몰리에(와인 전문가)인 미혼 여성 카타기리 슈코(가와시마 나오미)와 결혼 생활에 대한 회의로 가득한 유부남 토노 슈헤이(미타무라 구니히코)는 달콤한 한때를 즐기는 연인 사이. 여자는 결혼의 정의를 “서로가 정착할 수 있는 곳의 발견”이라고 믿고 싶어하지만, 남자는 이에 대해 “결혼은 서로 나아가길 포기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라고 대꾸한다. 그러나 남편의 외도를 눈치챈 부인에게 토노가 버림받은 이후, 둘의 관계는 급격하게 변하기 시작한다. 자칫 메트리스(mattress)로 오인되기 쉬운 기묘한 단어, ‘메트레스’(Maitresse)는 여주인, 여교사라는 어원에서 파생되어, ‘정부’(情婦)를 뜻하게 된 프랑스어 단어다. 그러나 메트레스는 어둡고 부정적인 불륜 관계에 빠진 여성이 아닌, ‘유부남과 연인 관계에 있지만, 결혼에 구애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생활하는 여성’이라는 적극적인 의미로 쓰인다고 한다. 우연히 알게 된 메트레스라는 단어의 의미를 곱씹는 슈코. ‘여자를 귀찮게 하는 남자들’을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게 된 그는, 결혼에 대한 막연한 고민을 그만두고 일과 사랑 모두를 주도하기 시작한다.

100분짜리 베스트 극장과도 같은 영화의 내용과 만듦새는 물론 뻔하다. 초반부에 묘사되는 둘의 관계는 다분히 ‘올드’한 느낌을 지울 수 없고, 지극히 현실적이지만 적나라하게 보여지는 남자들의 퇴행은 너무나 반복적이다. 그러나 영화가 그토록 집중하는 주제가 한국 여성들의 경우에도, 막상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없는 민감한 문제임은 분명하다.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결혼은 미친 짓이다>의 연희가 두 남자의 경제력을 저울질하면서 막연히 결혼 제도에 대한 회의를 품는 것처럼 보이는 것에 반해, <메트레스 연인>의 슈코는 유치하나마 일과 사랑이라는, 가장 명확한 두 가지 사이에서 고민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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