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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챙이

사무실에서 들리는 휴대전화 벨소리 가운데 요즘 새롭게 등장한 것이 <올챙이 송>이다. 누군가의 전화기가 울리면, 개울가에 올챙이 한 마리 꼬물꼬물 헤엄치다 다리가 쏘옥 나온다는 이 동요를 율동까지 떠올리며 흥얼거리는 후유증을 잠시 겪는다.

이번주 특집기사는 지난 시절 한국 영화계의 풍경을 재현한다. 성실하고 유머러스한 이영진 기자가 지금은 청년 개구리처럼 팔딱팔딱 뛰고 있는 한국 영화계의 꼬물꼬물 헤엄치던 시절을 재구성했다(물론 한국 영화사에 생물학적인 진화론의 관점을 적용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이 기사의 배경이 되는 1970년대보다 앞선 1950~60년대는 뛰어난 작가와 작품들을 배출한 한국 영화사의 황금기였다). 19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는 정치적인 이유로 기가 죽은 안일한 대중영화들이 하릴없이 쏟아져 나온 시기로 알려져 있다. 또한 극장주나 지방 배급업자가 제작비를 좌우하고 배우들이 연간 수십편의 영화에 출연하는 시스템은 영화의 형식과 내용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음에 틀림없다. 어찌보면 이들 주류영화로부터 당대 대중이 집단적으로 상상하는 자기 이미지를 구성해내는 일은 훨씬 간단하게 이루어질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을 오늘날 대폭발하고 있는 한국영화 속 대중의 이미지와 비교한다면 매우 흥미로운 연구가 될 것 같다.

<씨네21> 독자면에 2주 연속 영화평론가 정성일 선생이 등장하고 있다. 지난주에는 영화를 보고 나오는 선생을 뒤따라가서 찍은 사진이 포토 블로그에 실렸고, 이번주에는 "당신의 추억을 나눠달라"고 말하는 20대 독자의 글이 토크백에 등장한다. 나는 여기서 좋은 아버지를 흠모하면서 부정하고 싶어하는 사랑스런 올챙이떼를 연상했다.

무엇보다 주목하는 것은 이 두 세대 사이에 흐르는 심리적 긴장이다. 한국 시네필 문화의 한 정점이라고 할 정성일 선생은 "새롭게 도착한" 젊은 관객에게 애정과 격려를 공공연히 보내왔고 젊은 관객 또한 그를 향해 흠모와 신뢰를 표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서로에게 낯설어하면서 상처받을까 저어하고 거리두기 하는 모습도 관찰되는 것 같다. 이 긴장은 개인적인 것인 동시에 세대적인 것이고 <씨네21>을 구성하는 원리이기도 하다. <씨네21>의 성공 동력은 이 양자 사이의 긴장이 서로를 배척하지 않고 겨루며 공존해온 데 있다고 믿는다.

다시 <올챙이 송>을 흥얼거리며, 조만간 앞다리가 쏘옥 뒷다리가 쏘옥 나오게 될 올챙이떼의 힘찬 헤엄질을 상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