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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씨네21>에 다시 돌아온 지 1년5개월, 이 자리를 맡은 지 만 1년 되었다. 보기에 따라서는 다소 이른 시점인데 떠나려는 이유를 나 자신도 정확히 설명하진 못한다. 설명이라는 게 각자의 경험 덩어리들과 관점을 엮어서 의미를 만들어내는 일이라면, 다른 이들이 대신해줄 설명들을 기다려보는 것도 흥미로울 듯하다.

그 대신 나는 며칠 동안 헤르메스를 생각했다. 제우스의 자식인 그는 날개 달린 모자를 쓰고 날개 달린 샌들을 신은 채 신의 전령사 노릇을 한다. 오며가며 여행객도 안내하고 레슬링하는 사람, 장사하는 사람, 심지어 황천길 가는 사람도 돌보아주었던 모양이다. 오지랖도 넓고 역동적인 젊은 신이다. 오늘날에는 사람들이 그를 무역의 신, 전령의 신이라고 간단히 줄여부르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헤르메스를 가장 의미심장하게 현대로 불러들인 이는 아마도 미셸 세르일 텐데, 그는 과학기술을 통한 생산을 상징하던 프로메테우스의 시대로부터 그 기술을 전하고 여러 분야를 가로지르며 소통시키는 헤르메스의 시대로 바뀌었다고 관찰한다. 하나의 격자 속에 들어앉아 그 공간이 부여하는 정체성을 홀랑 받아들이거나 전공별로 세분화된 학문 세계 속에서 벽을 치는 대신에, 경계를 가로지르고 흘러다니면서 고착화된 이름자리 즉 권력의 체계를 벗어나보라는 권유일 것이다.

그러나 내가 지금 매혹되어 있는 것은 그리스 신화 속의 오리지널 헤르메스이다. 머리 속이 간질거리며 샌들에 날개가 솟아오른다. 창공을 활공하는 금빛 상상, 이것이 영화에 덤벼들었던, 덤벼드는 사람들의 심장에 흐르는 헤르메스 혈액형의 피가 아닐까. 파병에 반대하는 영화인들의 목소리를 접할 때에도, 그 분노의 저편에 가슴 뛰는 아름다움을 향한 꿈이 있음을 본다.

나는 이 행복한 느낌으로 영화를 제작하는 대륙에 다시 착지할 것이며, 세상에 대해 갖고 있는 우정과 똑같은 크기의 우정을 <씨네21>의 독자님들과 씨네21주식회사 식구들과 나누려 한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