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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어두운 슈퍼히어로 복수극, <퍼니셔>
김도훈 2004-09-07

마블 코믹스 사상 가장 어두운 ‘슈퍼히어로 복수극’의 두 번째 영화화. ‘슈퍼히어로’와 ‘인간’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

여기 좀 기이한 마블 코믹스 출신의 슈퍼히어로가 있다. 기껏해야 FBI 훈련으로 다져진 근육과 퇴직금을 쏟아부어 장만한 것에 틀림없는 총기들 정도가 유일한 그의 ‘히어로 아이템’이랄까. 전신착용의 섹시 커스튬과 초인간적 능력도 지니지 못한 퍼니셔가 동종업계 경쟁자들(스파이더 맨, 엑스맨, 슈퍼맨 등) 못지않은 인기를 북미지역에서 누려온 것은 바로 그 슈퍼히어로답지 않은 ‘인간적’인 매력 때문이었을 테다.

퍼니셔라는 슈퍼히어로의 탄생비화는 가히 코믹스판 <복수는 나의 것>이라 할 만하다. FBI 요원 ‘프랭크 캐슬’(톰 제인)은 총기밀매조직 소탕작전 중에 사악한 거부 하워드 세인트(존 트래볼타)의 아들을 죽게 만들고, 분노한 하워드 세인트의 손에 프랭크의 가족은 처참하게 몰살당한다. 그리고 프랭크는 복수에 불타는 퍼니셔(응징자)로 거듭난다. <배트맨>에서도 그러했듯이 ‘복수’란 원래 평범한 남자가 슈퍼히어로로 거듭나는 오랜 마블 코믹스의 법칙 중 하나였다.

그러나 퍼니셔의 복수는 일반적인 법칙을 넘어선다. 퍼니셔는 하워드 세인트의 아내와 게이인 그의 심복이 불륜을 저지르는 것처럼 이간질해 하워드가 직접 둘을 살해하게 만드는데, 어떤 슈퍼히어로가 이런 쩨쩨하고 잔인한 방식으로 복수극을 감행하던가. ‘악당’들에게 일말의 동정심마저 가지게 될 정도다(여기에는 존 트래볼타의 실감나는 연기도 한몫을 한다). <퍼니셔>는 이같은 복수의 ‘매운’탕 속에다 흥미로운 양념을 치기도 한다. 특히 미모의 웨이터, 뚱뚱한 이탈리안 요리사, 피어싱 중독의 게임광으로 구성된 퍼니셔의 이웃사촌들이 알코올 중독자 슈퍼히어로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은 묘하게 감동적이기도 하다. ‘루저’(Looser)들의 대안가족을 제시하는 순간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퍼니셔>는 ‘R등급의 복수극’과 ‘슈퍼히어로물’의 간극에서 끊임없이 갈팡질팡한다. 심각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다가도 어느 순간 세련된 유머를 구사해보겠다고 과잉된 노력을 하기 때문이다. 상이하고 흥미로운 요소들이 충돌한다고 그게 언제나 색다른 매력을 발산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좀 일찍 알아차렸어야 했다. 총에 맞아도 항상 원상복귀되는 해골 문양의 ‘퍼니셔 티셔츠’를 입힌 차에 ‘초인적인 슈퍼히어로’로 멀끔하게 재각색하거나, 돌프 룬드그렌 주연의 90년작 <퍼니셔>처럼 ‘10대 소년용 액션영화’의 정서를 밀어붙이는 것이 애당초 올곧은 선택이었을 테다. <퍼니셔>는 흥미로운 구석들이 있긴 하지만 ‘지나칠 정도로 심각한 남자’가 작정하고 웃겨보겠다고 던지는 농담처럼, 마음껏 반응해주기 꽤나 곤란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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