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News & Report > Report > 영화제
모던하고 정치적인 시네아스트, ‘타비아니 형제 특별전’ [2]
홍성남(평론가) 2004-09-09

<불타는 남자> Un uomo da bruciare/ A Man for Burning l 1962년 l 흑백 l 92분

첫 번째 장편영화를 만들 생각을 가졌을 때에 타비아니 형제의 머리 속에 떠오른 것은 현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자전적인 영화였다. 그러나 살바토레 카르네발레라는 실존 인물에 대해 알게 되고는 자전적인 영화를 만들 위험으로부터 벗어났다고 한다. 영화는 살바토레라는 정치적 행동주의자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쳐낸다. 2년 만에 고향인 시실리에 돌아온 그는 고향의 사람들이 마피아의 착취 아래 있는 것을 알고는 그들을 독려한다. <불타는 남자>는 정치적 에너지로 충만한 인물에 대한 위인전적인 접근을 시도할 수도 있는 영화였으나 타비아니 형제는 이 주인공을 스스로를 메시아라고 착각할 정도로 교만하기도 하고 권력에의 의지를 가졌기도 한 복잡한 인물로 형상화함으로써 그런 위험을 슬기롭게 비껴갔다. 리얼리즘의 방식을 차용하면서 연극적인 방식도 버리지 않은 채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타비아니 형제의 이후 영화들을 예기한다는 점에서 흥미롭게 볼 수 있는 영화다.

<알롱상팡> Allonsanfan l 1974년 l 컬러 l 115분

마르첼로 마스트로이안니가 연기하는 주인공 풀비오는 귀족 출신으로 정치적 투쟁에 몸을 담은 급진주의자이다. 투쟁의 과정 가운데 그는 혁명에 대한 열정을 상실하게 되고 힘겨운 투쟁에 지치고 만다. 그는 가족과 함께 평범한 삶을 회복하려 하지만 동료들은 그를 다시 자신들에게 끌어들이려 한다. 유토피아를 향한 희망의 좌절을 다루는 <알롱상팡>은 형식적, 주제적 영감의 원천으로서 멜로드라마의 양식을 활용한다. 그래서 화려한 컬러 l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 춤과 환상적인 이미지들이 정치적 비관주의의 내용과 역설적인 대위법을 이루게 된다. 영화의 제목인 <알롱상팡>은 프랑스 국가 <라 마르세예즈>의 첫 가사인 “Allons enfants”을 이탈리아어식으로 잘못 발음한 것이다.

<파드레 파드로네> Padre Padrone l 1977년 l 113분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과 국제비평가상을 수상한 <파드레 파드로네>는 가장 잘 알려진 타비아니 형제의 영화이다. 이탈리아의 언어학자 가비노 레다의 자서전을 영화화했다. 이탈리아 남부의 황량한 섬 사르디니아. 여섯살의 가비노는 갑자기 교실에 나타난 아버지에게 끌려나와 그때부터 양치기가 된다. 아무도 없는 고립된 산속에서 양치기 가비노는 10년이 넘도록 아버지의 무자비한 폭력에 시달리며 친구는 물론 언어와도 절연된 채 살아간다. 문맹이었던 그는 군대에서 친구의 도움으로 글을 배우고 삶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된다. <파드레 파드로네>는 무지막지하게 폭력을 행사하는 아버지에 대한 아들의 투쟁을 다룬다. ‘아버지 주인’을 의미하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것은 곧 억압적인 질서 속에서 군림하는 야만적인 주인과 그에게 복종해야만 하는 노예 사이의 변증법과 혁명에 대한 잔혹 우화이기도 하다. 한편으로 영화는 인간을 풍부하게 만드는 도구로서, 문화적인 요소로서, 그리고 해방의 도구로서 커뮤니케이션을 주제로 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형식적인 측면에서 볼 때, <파드레 파드로네>는 내적 의식을 표현하는 사운드의 활용으로 특히 유명한 영화다.

<초원> Il Prato/The Meadow l 1979년 l 115분

타비아니 형제가 그들의 대표작 <파드레 파드로네>에 이어 만든 영화로 사랑의 삼각관계를 시적인 터치로 그려낸다. 도시에 살고 있는 젊은 변호사 조반니는 집안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토스카나의 산 지미냐노로 오게 된다. 여기서 그는 에우제니아라는 아름다운 여성과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그녀는 오랜 연인인 엔초의 곁을 떠나려 하지 않는다. 다분히 타비아니적인 주제인 사람들과 그들이 발을 딛고 선 땅과의 관계를 다루고 있는 영화인 만큼 <초원>은 영화의 공간이 주요한 캐릭터 자체가 되는 영화라고 말할 수 있다. 여기에서 산 지미냐노는 믿지 못할 이방인들과 고독의 이야기들을 품고 있는 공간이고 초원은 고통이 자라나는 곳이다. 타비아니 형제 자신들의 이야기를 빌리면, <초원>은 절망적인 영화이다. “왜냐하면 삶은 절망적일 필요가 없음에도 절망적이기 때문이다.”

<로렌조의 밤> La Notte di San Lorenzo/Night of the Shooting Stars l 1981년 l 컬러 l 105분

보는 시각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적지 않은 평자들부터 타비아니 형제의 창조적인 절정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는 영화가 <로렌조의 밤>이다. 타비아니 형제가 1954년에 만든 다큐멘터리 <산 미니아토 l 1944년 7월>을 장편 극영화로 개작한 이 영화는 이들이 전쟁 동안 실제로 겪었던 끔찍한 경험을 토대로 만들어진 것이다. 전쟁이 사람들에게 미친 끔찍한 영향에 대한 이야기가 네오 리얼리즘 영화들에서처럼 그 즉시에 스크린 위에 옮겨진 것이 아니라 타비아니 형제의 머리 속에 오래 자리잡고 있다가 뒤에 영화화되었다는 점에서, 이것은 “몇 차례고 반추한 추억 속의 <무방비 도시>”라고 불리기도 한다. 1944년 당시 여섯살이었던 한 소녀의 눈을 주요한 렌즈 삼아 이탈리아인들끼리, 그것도 서로 이름을 알고 있는 이들끼리 죽고 죽여야만 했던 아픈, 그래서 애써 눌러왔던 기억이 서정성과 현실의 비극성이 혼합된 상태로 불려져 온다. 이 영화를 높이 평가한 이들 가운데에는 일본의 영화감독 오시마 나기사도 있었는데, 그는 여기서 보여준 타비아니 형제의 능력을 제대로 포착해낸다. 이 영화는 “그들의 원칙이란 ‘현실의 신봉’임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들은 비록 픽션에 거의 항복하지 않으면서도, 판타지와 시정(詩情)을 유지하는 어려운 과제를 수행해낸다.”

<굿모닝 바빌론> Good Morning, Babilonia/Good Morning Babylon l 1987년 l 컬러 l 114분

타비아니 형제가 처음으로 만든 영어영화인 <굿모닝 바빌론>은 일자리를 찾으러 미국 땅을 밟은 두 이탈리아인 형제의 이야기를 그린다. 석공일을 했었던 이들은 D. W. 그리피스가 만드는 영화 <인톨러런스>의 바빌론 시퀀스에서 세트를 만드는 일에 참여하게 된다. 이쯤만 이야기해도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다시피, <굿모닝 바빌론>은 미국 영화사의 거목인 그리피스에게 경의를 표하는 영화이면서 무엇보다도 대중을 위한 것인 영화 자체에 대해 여유있으면서 서정적으로 성찰하는 영화이다. 여기서 특히 재미있는 것은 타비아니 형제가 두개의 문화, 즉 14세기의 토스카나의 문명과 20세기의 문명을 비교하면서 영화는 셀룰로이드 위에 지어진 현대의 성당이며 영화를 만드는 이들은 성당을 건설하던 장인/예술가의 후예라고 보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의 땅 토스카나를 사랑한 이들답게 영화 속에 나오는 세기 초의 할리우드는 토스카나에서 새로 지어진 것이다.

<피오릴레> Fiorile l 1993년 l 컬러 l 118분

이상하고 비극적인 일련의 사건들의 대상이 되었기에 사람들로부터 ‘저주받은 사람들’이란 의미로 ‘말레데티’라 불리는 가족이 있다. 그러나 그 가족의 본래 성은 ‘축복받은 사람들’이란 의미를 가진 베네데티였다. 어떻게 이 가족의 운명이 이렇게 바뀌었는가를 알아보기 위해 영화는 나폴레옹의 군대가 토스카나로 진군해오던 때로 거슬러간다. 그 완성도에 있어서 들쭉날쭉한 네개의 에피소드를 연결하면서 영화는 200년의 긴 시간을 항해하는 방대한 파노라마를 구축한다. 그리고는 권력과 돈의 관계라는 오래된 주제에 이르게 된다. 과거를 만회한다는 것이 타비아니 형제의 영화를 이루는 중요 요소들 가운데 하나라면 <피오릴레>는 바로 그 요소를 잘 드러내주는 영화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너의 웃음> Tu ridi/You're Laughing l 1998년 l 컬러 l 99분

<너의 웃음>은 1984년작인 <카오스>에 이어 타비아니 형제가 다시 한번 루이지 피란델로의 영화화를 시도한 영화라 그런 만남만으로도 흥미를 끌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영화는 두개의 에피소드를 엮어놓은 구성을 취하고 있는데, 그 첫 번째 에피소드인 <펠리체>는 잠이 들면 웃음을 흘리는 동명의 주인공에 대한 이야기를 가볍고 간명한 톤으로 들려준다. <두개의 유괴>란 제목을 단 두 번째 에피소드는 현재의 시실리에서 마피아가 어린 소년을 유괴한 사건과 그로부터 100년 전에 일어난 유사한 사건을 병행시킨다. 어떤 이들에게 <너의 웃음>은 부조리한 웃음을 ‘강요’해 거의 분통을 터뜨리게 만드는 영화로 다가올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타비아니 형제는 소크라테스를 인용해 피란델로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웃음의 본질이라는 것, 즉 웃음과 슬픔은 한 가지라고 하는 점을 보여주려 노력한다.

홍성남/ 영화평론가 gnosis88@yahoo.com

▶ 모던하고 정치적인 시네아스트, ‘타비아니 형제 특별전’ [1]

▶ 모던하고 정치적인 시네아스트, ‘타비아니 형제 특별전’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