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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타게 <2046>을 기다리며 - 왕가위에게 보내는 정성일의 연서(+English)

나는 올해 5월 깐느에 가지 못했다. 그건 하나도 슬프지 않다. 솔직히 올해 경쟁부문에 초대받은 영화(들)의 명단은 미안하지만 그저 그랬다. 하지만 나보다 먼저 다른 사람들이 왕가위의 여덟 번째 영화 을 보았다는 사실은 나를 몸서리치게 질투에 떨게 만들었다. 진짜다! 나는 그 영화를 5년이나 기다렸다.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렇게 사무치게 기다렸더니 난데없이 <화양연화>를 먼저 보여주었다. 왕가위의 말에 의하면 “원래는 그저 단순하게 시작했는데, 갑자기 이 영화가 그렇게 간단하게 끝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른 다음이었다”라고 고백했다. 내가 알고 있는 바로는 정확하게 28개월을 여기에 매달렸다. 그는 고치고 또 고쳤다. 별별 소문이 들렸다. 잠시 다른 영화의 현장에서 만난 양조위에게 물어보자 “나도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다. 무언가 계속 찍고 있는데, 솔직하게 마지막 편집이 끝나기 전에는 내가 무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아마 그건 왕가위도 마차가지일 것이”라고 대답했다.

왕가위는 온전히 자기의 힘으로 이 지옥같은 과정의 연애담을 통과했다. 물론 이 영화는 걸작이다. 국수 통을 들고 골목을 흔들흔들 걸어가는 수리첸의 발걸음에 맞추어 심금을 울리는 저 선율은 거의 보는 이의 영혼을 홀릴 지경이었다. 혹은 앙코르와트에 사연을 담아두고 걸어나오는 장면은 말 그대로 숭고했다. 왕가위에게서 감정은 형상을 드러내고, 감각은 그 자체로 세상의 리듬이 되었다. 아니, 차라리 리듬으로서의 형상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는 이미지가 어떻게 세상과 공명하는 줄 아는 사람이다. 그 이미지의 박자들, 사운드트랙의 대화, 그 속에서 흘러가는 시간의 도주선들, 그 안에서 붙들린 세상의 인상들, 넘쳐나는 보이스 오프의 목소리들, 그 목소리에 의해 끌려들어온 기억의 기호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말하는 대신 보여준다는 사실이다. 정직하게 말하면 나는 이 사람이 존경스럽다기보다는 무섭다.

끝이라고 시작한 곳에서 새로운 길을 낸 사람

왕가위는 매번 볼 때마다 정말 끝까지 왔다는 느낌을 준다. 그리고 이제 이 영화적 스타일로서 할 수 있는 한계는 여기까지라는 생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보는 사람을 넉 다운시킨다. 그러나 그는 매번 한계라고 생각한 그 계단에서 번번이 한 걸음 더 올라갔다. 나는 <중경삼림>과 <타락천사>를 보면서 왕가위가 할 수 있는 일은 여기까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내 착각이었다. 그 다음에 만든 <해피 투게더>는 그것을 훨씬 뛰어넘고 있었다. 그 영화의 첫 대사, “보영은 돌아와서 말할 것이다. “우리 다시 시작하자” 이 대사가 왕가위 그 자신에게 한 말처럼 들릴 정도였다. 피아졸라의 슬프디 슬픈 탱고 선율에 맞추어 허름한 카페를 무대로 춤을 추면서, 혹은 홍콩의 반대편에서 다시 이쪽을 바라보면서, 카메라가 뒤집혀서 홍콩의 거리를 느리게 움직이면서, 그렇게 지구의 끝에 이르는 여행 끝에 다시 타이페이에 돌아와서 전철에 몸을 싣고 달려가는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 들리는 “해피 투게더”의 합창은 1997년 홍콩에 어울리는 작별인사였다. 이건 그의 최고의 영화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중국 반환’ 이전의 홍콩영화의 마지막 걸작인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나는 <화양연화>를 보면서 거의 넋을 잃었다. 저 나른한 1960년대의 홍콩 뒷골목에서, 아무리 작은 소곤거림도 들릴 만큼 비좁은 문과 문 사이에서, 부딪칠 듯 몇 번이고 스쳐 지나가는 다른 사람의 아내와 다른 사람의 남편 사이의 불장난 속의 진심은 쓰디쓰면서도 더 없이 달콤하다. 역사는 추억이 되고, 시간 속에 사라져간 향수의 기억은 앙코르와트 속에 영원히 봉인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호화찬란했던 홍콩의 시간은 거기 영원히 남는다. 그는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부여한 한계를 뛰어넘었다. 나는 많은 감독들과의 인터뷰와 그들의 필모그래피를 통해서 이것이 얼마나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과정인 지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그것을 그는 다시 한번 넘어왔다.

그런 다음 왕가위는 에 매달렸다. 처음에 알려진 것은 세 개의 오페라에서 빌려온 제목을 단 세 개의 에피소드에 관한 영화였다. (그리고 그 에피소드 중의 하나는 당신도 잘 알고 있다시피 갑자기 발전해서 <화양연화>가 되었다. 그건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를테면 <타락천사>는 원래 <중경삼림>의 일부였다) 하지만 그는 그 아이디어를 곧 버린 것 같다. 이 영화에 출연한다고 알려진 배우들도 점점 늘어갔다. 장쯔이와 공리는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던 명단이다.

또 다시 수많은 소문이 들렸다. 크리스토퍼 도일은 그 사이에 두 편의 <쓰리>에 참여했으며(진가신의 <고잉 홈>과 프루트 챈의 <만두>), 필립 노이스의 <토끼 울타리>와 <조용한 미국인>, 존 파브르의 <메이드>, 장예모의 <영웅>, 펜 엑 라타나루앙의 <우주에서의 마지막 삶>, 장위엔의 <녹차>를 찍었다. 양조위는 <무간도> 삼부작 중에서 두 편의 주연을 했으며, 장만옥은 홍콩과 프랑스를 오가면서 영화에 출연했다. 기무라 다쿠야가 한없이 미뤄지는 스케줄로 뒤죽박죽이 된 현장에서 빠지기로 했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그래도 매년 깐느에 가면 2002년부터 내년에는 이 온다는 소문이 일종의 괴담(!)처럼 반복되었다. 그리고 아아, 마침내 완성되었다!

나는 행복하게 기다린다, 개막식의 밤을

나를 기쁘게 한 사실. 올해 부산 영화제 개막식에 온 은 깐느 버전을 다시 편집하고 일부 장면을 더한 버전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깐느 버전은 미완성이었다는 뜻이다. (아이, 좋아라!) 물론 이것은 새로운 사건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미 4년 전에 깐느에서 <화양연화>도 ‘워크 프린트’ 상태로 상영되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그의 영화는 언제나 미완성이었다. <아비정전>은 영원히 그 절반의 이야기를 남겨둔 ‘전편’이 되었다. 양조위가 짐을 싸는 그 이상한 마지막 장면. (왕가위는 이 마지막 장면을 다시 편집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했다) 수많은 우여곡절을 낳은 <동사서독>은 그 자체로 여러 개의 수수께끼를 하나로 만든 플래시백 영화이다. 나는 이 영화가 하나의 영화가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일종의 불가사의라고 생각한다. <중경삼림>과 <타락천사>는 서로가 서로에 대한 절반의 이야기이다. <해피 투게더>에는 ‘사라진’ 관숙의와 장진의 절반의 이야기가 못내 궁금하다. 왕가위는 그것만으로도 한 편의 영화를 만들 수 있다고 농담처럼 말했다. 이를테면 메이킹 필름인 <부에노스아이레스 제로 디그리>에서 ‘영화에서는 사용되지 않았지만 이미 편집까지 끝낸 장면들에서’ 보여준 저 황홀한 장면들. <화양연화>에서 그의 아내와 그녀의 남편의 ‘사라진’ 불륜은 (찍혀졌지만 ‘여전히’ 편집본에서) 빠진 상태로 남겨져있다.

후 샤오시엔은 왕가위가 지구상에서 가장 오랫동안 한 편의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아마 그럴 것이다. 그는 영화를 만들면서 이야기를 만들고, 그에 따라 갑자기 방향을 바꾸어서 다른 세계를 만들다가, 이번에는 등장인물 자체가 사라지거나 혹은 새롭게 등장하고, 그 과정에서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실타래들이 또 다른 세계를 만들어낸다. 그는 꿈을 꾸듯이 영화를 창조해낸다. 그것은 어디서 끝날 지 알 수 없는 무아지경의 세계이다. 채워지고, 비워내는 그 한없는 반복. 왕가위는 그 비어있는 여백을 통해서 자신의 작품이 완전하게 이해되는 것에 대해서 완강하게 저항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안겨준다. 혹은 만들어졌지만 빈칸으로 남은 그 자리, 그러니까 이미 있었지만 비어있는 자리, 도서실 서가에 꽂혀있었으나 지금은 비어있는 그 자리, 그래서 채워 넣어야 할 그 자리의 세계에로 우리를 초대한다. 무수히 열려있는 세계들, 그럼으로써 수많은 가능성이 열려있는 그 나머지,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그의 영화 앞에서 상상하고 사유하도록 강요한다. 나는 그 즐거움을 어떤 일이 있어도 포기할 수 없다. 그러므로 나는 부산의 야외 상영장, 그 오 천명이 넘는 사람들 맨 앞자리에 앉아서 가장 큰 소리로 웃고, 가장 큰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면서, 왕가위가 만들어내는 또 하나의 가능세계의 리듬과 형상을 향하여 있는 힘을 다해 다이빙할 것이다. 그 시간을 향하여 우리 함께 카운트다운을 하자. 열, 아홉, 여덟, 일곱, 여섯, 다섯, 넷, 셋 둘, 하나.......

영화평론가 정성일

I was not sad when I could not go to the Cannes Film Festival in May this year. However, I was jealous enough and shuddered to think of the fact that others have seen Wong Kar-Wai's eighth film, , before than me. Honestly, I have waited and waited this film for five years. After a long wait, all of a sudden, he firstly showed the film <In the Mood for Love>(2000). I heard that he put exactly 28 months into the making of this film. When I asked Tony Leung about this film the other day, he told me that even though he was working in this film, he himself would have no idea about it until the last editing was over, and so did the director Wong Kar-Wai.

Of course, the film <In the Mood for Love>(2000) is a masterpiece. The melody that accompanies the scene of Su Li-Zhen's holding a bottle and walking down the street touches the soul. Moreover, the scene where Su Li-Zhen walks out of Angkor Wat after leaving his old memory behind was truly sublime. The emotion in Wong Kar Wai's perspective creates an actual shape, and the sense itself becomes a rhythm of the world. He actually tries to present the whole appearances of the film through rhythm.

After I saw his two films <ChungKing Express>(1994) and <Fallen Angels>(1995), I thought he had finally shown us all the best he could do. However, the film <Happy Together>(1997) was far better, and, moreover, I almost fainted after watching his later film <In the Mood for Love>. This time, he's coming out with a new movie, . I believe he put his all in this film, and the film starring Tony Leung, Gong Li, Faye Wong, Zhang Ziyi and Takuya Kimura was finally finished. Surprisingly, , in this Pusan Film Festival, is a new version, which means that the shown at the Cannes Film Festival was virtually unfinished.

Hou Hsiao-hsien, the director of the famous film <Flowers of Shanghai>(1998) has mentioned that Wong Kar Wai would take the longest time in the world to make a film. He was probably right. Wong creates stories while making his films. Suddenly changing around the whole direction of the film to create another realm, and switching around the characters, he continuously does not seem to give us any space to understand completely about his films. However, in the process of these endless repetitions to create new stories, he invites us to his open world to fill in the space of his film with our imagination.

영문번역=김미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