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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수선> 배창호 감독 인터뷰
2001-06-22

“신나게, 대형 벽화를 그리고 싶다”

기분이 무척 좋아 보인다.

좋지 않을 이유가 없다. 배우 스탭들이랑 호흡도 잘 맞고, 필요한 만큼 지원도 잘되고. 찍힌 것도 만족스럽다.

왜 하필 지금 <흑수선>인가.

준비하던 시나리오 중에서 가장 강하고 흡인력 있는 작품이 <흑수선>이었다. 한국전은 우리의 상처인 동시에 기막힌 영화소재다. 너무

무겁지 않도록 정치적으로 깊이 있는 터치보다는 미스터리 스릴러라는 장르적 운반수단을 이용해 영상미에 힘쓸 생각이다. 오래 전부터 형사영화가

가장 재밌는 장르라고 생각했지만 멋있게 표현하기에는 우리 기술력이 충분한 뒷받침을 못할 것 같아 미뤄왔는데 이제 할 수 있겠구나,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방대한 이야기인데 어떻게 보여줄 참인가.

냉혹하고 집요한 젊은 형사가 연쇄살인사건을 추적하면서 그것이 거제포로수용소와 빨치산을 둘러싼 역사적인 음모와 비리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미스터리도 있고, 액션도 있지만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희생되는 연인의 슬픈 사랑이 핵심이다. 시각적인 강렬함과 신선함을 보여주면서,

하고 싶은 얘기를 깊이있게 펼쳐낼 것이다. 전쟁을 배경으로 한 영화들에서 예를 들자면 <풀 메탈 자켓>과 <디어 헌터>의

중간쯤, 너무 극사실적이지도 너무 가상적이지도 않은 중간 볼륨을 찾아 묘사하려 한다.

근래의 작업들에 비해 제작 규모가 무척 커졌다.

1억짜리 영화 찍을 때나 지금이나 스탭들이 현장에서 먹고 생활하는 모습은 거의 같다. 크게 달라진 점이라면 탑차, 분장차, 발전차, 소방차,

살수차 등 동원되는 장비들과 그 물량이 ‘소할리우드’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발전했다는 것이다. 그만큼 감독이 구사할 수 있는 어휘가 풍부해진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영화를 못 찍는다면 연출력이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본격 액션 연출은 처음일 텐데 어려움은 없는지.

액션 연출은 오히려 덜 힘들다. 외형적인 요소니까. 정두홍 무술감독이 연기에 대해 많이 알고 있어 아이디어도 많이 내고 잘 도와준다. 어려움이

있다면 대하드라마적인 요소가 강한 영화라, 종합문제를 풀고 있는 듯한 심정이랄까. 플롯이 복잡하고 인물도 많은데다 개성이 강해, 서로 톤이

튀지 않게 드라마를 잘 압축하고 풀어가는 것이 관건일 것 같다.

캐스팅은 만족스럽나.

그렇다. 비전향 장기수로 나오는 안성기씨는 20대부터 70대까지를 연기한다. 50년의 세월을 아우를 수 있는 연기자, 심리적인 세심한 연기와

강한 연기에 능한 연기자는 그뿐이라고 생각했다. 안성기씨는 무채색에 가깝다. 색깔 입히기 좋은 배우다. 이미연씨와는 아직 많이 안 찍었고,

이정재에게는 무표정 무대사로 쿨하게 가자고 했다. 배우들에게 느껴서 연기하라고 한다. 조율은 내게 맡기라고. 감독은 그러라고 있는 거니까.

정태원 사장과 강우석 감독이 제작 파트너다. 함께 작업하는 게 어떤가.

내가 자존심이 세고 끈기는 없는 편이어서 정사장이 투자나 캐스팅문제에 대신 힘썼다. 오래 전부터 나랑 영화 한번 하고 싶다고 했었고, 절친한

영화 동지인 강우석 감독도 내 프로젝트라는 데 관심과 믿음을 보여줬다. 같이 그랬다. 재미있고 신나고 손님 많이 드는 영화 한번 찍어보자고.

다들 전폭적으로 밀어준다.

가장 힘들 것 같은 신, 우려도 되고 기대도 되는 촬영이 있다면.

뭐니뭐니해도 라스트다. 범인과 오 형사가 대치하는 장면을 서울역 돔 옥상에서 아주 파워풀하게 찍을 예정이다. 저격수들도 배치하고. 서울역도

<언터처블> 같은 그랜드 스테이션의 느낌이 난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보는 서울역 풍경과 다른 장중함과 멋스러움을 보여줄 것이다.

저예산으로 열악하게 작업한 근래의 작품들에서 보인 열정과 자존심은 여전한 건가.

나는 하고 싶은 영화의 종류가 워낙 많고, 때마다 하고 싶은 영화에 도전한 것이다. 80년대에는 한국의 스필버그라 불렸지만 ‘아트’를 해보고

싶어 <황진이> 같은 영화를 찍었다. 스타 시스템에 지쳐 저예산으로 자화상도 그려보고 시골풍경화도 그려봤다. 이제 대형 벽화를 그리고

싶다. 신나게. 그러고 싶고 그럴 필요를 느낀다. 다시 대중에게 돌아와 자리 잡으려는 포석이라고 할까. 이제 관객으로부터 힘을 받고 또 비축하고

싶다.

▶ <흑수선>

거제도 촬영현장 공개

▶ <흑수선>

배창호 감독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