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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사람들의 삶과 연애, <브리짓 존스의 일기: 열정과 애정>

브리짓 존스의 두 번째 연애담, 또 한번 무뚝뚝한 행동파 지성인과 야들야들한 바람둥이 사이를 오가다.

그녀는 여전하다. 보드카를 병째 입에 물고 <올 바이 마이셀프>를 온몸으로 불러젖히며 세계 만방에 자기를 알리고 한살 더 먹었지만 33살의 싱글족이란 신분은 그대로다. 알코올과 담배? 물론 이 정다운 친구들과 절연하지 못했다. 몸무게? 행복해져서일까, 통통하던 몸매는 좀 퉁퉁해졌다. 그 무엇보다 변함없는 건 브리짓 존스를 매력적이게 만들었던 그녀만의 행동거지다. 좀더 좋은 것과 좀더 나쁜 것을 직관적으로 받아들이고, 망설임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행동하는, 그러나 이따금 엉뚱한 방향으로 사태를 도약시키는 재주.

그 남자들도 여전하다. 마크 다시는 냉정해보일 만큼 말끔한 표정의 기품있는 인권변호사다. 무뚝뚝한 낯빛에 그 속내가 자주 묻혀버리기는 하지만 사랑의 열정을 은근히 감춰두었다. 그래서 더 완벽한 상대가 된다. 다니엘 클리버는 섹스 클리닉을 받고 있다고 ‘신분 위장’을 해야 할 정도로 끊임없이 여자를 바꿔치기해가며 누군가를 침대로 끌어들이고 있다. 브리짓을 향한 유혹의 손길이 뻔뻔스러운 것도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르네 젤위거의 브리짓, 콜린 퍼스의 마크, 휴 그랜트의 다니엘이 주먹과 키스 사이로 조우하게 되는 것도 전과 다름이 없다. 샤론 맥과이어에서 비번 키드론으로 감독이 바뀌기는 했으나 워킹 타이틀의 시나리오 제조기 리처드 커티스를 필두로 원작자 헬렌 필딩과 <오만과 편견>의 TV시리즈 작가 앤드루 데이비스가 이번에도 공동작업을 벌였다. 모두 아는 사실이지만 결정적으로 달라진 건 브리짓과 마크 다시가 서로의 진가를 알아챘다는 거다. 그들이 서로의 가슴에 오르가슴을 채워넣기 시작한 지 4주하고도 5일째다. 2편은 여기서부터 시작되니 덤벙 스타일과 쿨가이가 100분이 넘는 러닝타임을 밀고 당길 새로운 갈등이 필요하다. 브리짓에게 위태로운 자각을 시시때때로 주입하던 싱글의 초조함은 사라졌다. 그 자리를 꿰어찬 건 질투와 열등감이다. 마크 옆을 그림자처럼 붙어다니는 인턴 레베카가 우아한 미소와 교양있는 매너로 브리짓의 애교를 위협한다. 브리짓이 더 위기를 느끼는 건 레베카가 모델 같은 외모를 지녔다는 점이다. 이제 브리짓 존스의 일기장은 애인 사수를 위한 좌충우돌기로 뒤범벅된다. 세상에서 가장 가깝게 살을 맞대던 사이가 순식간에 가장 먼 사이가 되고 마는 연애의 곡절(혹은 후일담)을 맛볼 준비가 끝났다.

오래되고 거대한 건물은 침묵하고 있어도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가스통 르루가 파리 오페라극장을 둘러보고 1911년에 펴낸 소설 <오페라의 유령>은 빙산처럼 보이는 부분보다 보이지 않는 부분이 더 매혹적인 건축물 지하로부터 음산하고 낭만적인 스토리를 캐낸 수작이었다. 화려한 무대에서 먼지 쌓인 통로로 빠져나와,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면, 오르간과 밀랍인형이 웅크린 동굴에까지 이르는, 또 하나의 세계가 있는 것이다. 뮤지컬의 도입부를 좀더 대규모로 재현한 <오페라의 유령> 첫 부분은 오페라 극장을 뒤덮은 회색 세월의 흔적을 순식간에 걷어내면서 고속철도와 같은 속도로 샹들리에 불빛이 빛나는 전성기를 돌이킨다. 그 순간이 마법과도 같은 것은, 1년 넘게 공들인 컴퓨터그래픽의 힘이라기보다, 건축물 자체에 밴 향수 때문일 것이다. 증오로 살아남았고 사랑으로 파멸한 한 남자의 드라마가 그곳에 잠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관객은 눈앞에서 좋았던 시절로 돌아가고 있는 오페라극장을 보면서, 그리고 힘있고 비극적인 음악을 들으면서, 기꺼이 고풍스러운 러브스토리에 공감할 준비를 하게 된다.

그런데 워킹 타이틀이란 브랜드에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우리의 엄연한 현실을 속사포 같은 유머와 재치로 낚아내 동질감을 느끼게 하고는 승복할 수밖에 없는 멋진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하던 솜씨 말이다. 1편의 무기이자 감동이었던 브리짓의 진담이 상투어로 도배돼버렸으니. 브리짓과 마크가 아직 결과를 가리키지 않는 임신진단 시약을 앞에 놓고 계급적 갈등을 드러낼 때까지만 해도 워킹 타이틀의 전통은 지속되는 듯했다. 마크가 태어날 징조도 보이지 않는 아이를 놓고 5대째 집안 동문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이튼 스쿨 운운하며 명문가 자제다운 교육관을 드러내자 브리짓은 이튼을 파시스트 학교로 치부해버린다. 놀랍게도 마크가 처음으로 ‘본색’을 보인다. “그렇다고 내 아이가 비틀스나 들으며 프리섹스를 하게 놔둘 수는 없어!” 충돌은 여기서 뚝 멈춘다. 브리짓다운 전투는 끝내 본론에 들어가지 않는다. 브리짓이 마크의 초청으로 변호사협회의 만찬에 참석해 “상류층 극우 대머리들”이라고 주최쪽을 내놓고 헐뜯는 것도, 부모가 벌이는 뷔페 파티에 모인 이들을 “영국 최고 변태들”이라고 쏘아대는 힐난도 뜬금없는 ‘한방’일 뿐이다. 야욕이 분명치 않은 레베카를 상대로 나 홀로 불안초조해하더니 멀고 먼 타이에서 다니엘 클리버와 금욕적인 곡절을 겪은 뒤에 터무니없는 누명을 뒤집어쓰고 꾀죄죄한 이국의 여죄수 감방에 갇히고 만다. 브리짓이 감방의 사설 교사가 되어 마돈나의 춤과 노래를 가르치고 있으면 인권변호사가 인맥을 동원해 사태를 수습하면 된다. 레베카의 정체가 반전 구실을 하나 그것이 결혼을 향한 브리짓의 맥없는 투항에 힘을 실어주지 않는다. 싱글족의 공감가는 연대에 한몫했던 브리짓의 게이 친구나 동성 친구는 멍청한 카메오 수준이고, 주책스러운 연애주의자였던 브리짓의 엄마는 남편과 또 한번 결혼하겠다며 자기 노선을 스스로 위반한다.

따지고보면 필부들의 삶과 연애라는 게 사소함의 위기이고, 그다지 대단하지 않은 갈등으로 파국으로 치닫곤 한다. 그러니 보통 사람의 눈높이에 맞춘 브리짓의 연애사를 요란하지 않게 꾸미는 게 오히려 용기있는 전략일 수 있다. 그렇지만 브리짓의 처절한 기개, 당당한 자아까지 희석시켰으니 남은 건 익숙한 로맨틱 개그다.

원작소설 <브리짓 존스의 애인>

브리짓과 친구들의 변함없는 수다 잔치

브리짓을 둘러싸고 살해위협 소동까지 벌어지지만, 영화의 뼈대가 된 헬렌 필딩의 원작소설 속편 자체가 대단한 사연을 펼치지는 않는다. 그러나 <브리짓 존스의 애인>이라는 이름으로 번역된 소설은 브리짓과 그의 친구들이 벌여온 수다스런 잔치에 좀더 일관성을 유지한다(싱글족을 ‘모범적으로’ 배신하는 건 브리짓이 아니라 친구 주드다). 브리짓의 엄마는 정력적으로 새로운 만남을 추구하고 브리짓의 아빠는 그만큼 절망에 빠져 알코올에 중독돼간다. 브리짓의 엉덩이를 음흉하게 주무르던 삼촌 제프리가 게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마크 역시 한때 남색가로 오해받기도 하지만 그는 브리짓의 친구 아닌 친구 레베카와 외도할 만큼 힘에 넘치는 이성애주의자다.

브리짓이 탐독하는 자기계발서는 종류만 바꿨을 뿐 여전히 그녀 주위를 맴돈다. <남자가 원하는 것> <부처가 데이트를 했다면> <예수가 아프로디테와 데이트를 했다면> <남자는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느끼는가> 등등(소설 끝무렵에 밝혀지지만 자기계발서를 혐오하던 마크도 예외는 아니었다. <사랑하는 여자를 되찾는 법> <사랑하고 상심해도 자신을 잃지 않는 법> 등). 그렇지만 브리짓은 열렬한 노동당주의자이자 페미니스트임을 줄곧 주창한다. “사상 처음으로 자발적으로 섹스할 만하다고 생각되는 총리” 토니 블레어가 선거에 이기기까지와 싱글족의 수호성인처럼 떠받들던 다이애나의 사망 사고가 그녀의 삶 깊숙이 파고든다(브리짓은 애인 마크가 보수당에 투표했던 ‘과거’를 알고 충격에 휩싸이기도 한다). 바람둥이 다니엘 클리버 때문에 방송 프로덕션으로 자리를 옮겨 약간 선정적이나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화두를 수집하고 다니는 건 여전하지만 일을 한 가지 더 늘렸다. <인디펜던트>의 유명인 인터뷰 기고자가 됐는데 재밌는 일화가 펼쳐진다. 그가 어렵게 처음 맡은 일은 TV시리즈 <오만과 편견>의 미스터 다시 역의 콜린 퍼스를 로마까지 쫓아가서 인터뷰하는 것이다. <인디펜던트>는 브리짓의 캐릭터를 여과없이 보여주는 인터뷰 일문일답을 그대로 싣는데, 터져나오는 웃음을 웬만해선 참기 어려운, 최대 승부처 중 하나다. 영화에서 가장 큰 고비를 만드는 타이 여행이나 그곳에서 기막힌 환각을 맛보게 해주는 매직 머시룸 오믈렛의 등장은 소설에서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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