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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특집] 2004년의 얼굴 - 백윤식

“멋있게 늙어가는 숀 코너리, 자극이 돼요”

백윤식이 말하는 2004년의 백윤식

● 2004년 활동 명암

의미는 매년 다 있지. 내가 올해에 연기를 새로 시작한 게 아니니까. 스텝 바이 스텝, 밟아 올라온 것뿐인데, 그렇게 축적된 것이 올해 포괄적 인증을 받은 거죠. 올해는 날 ‘재료’로 사용해줄 수 있는 여건이 영화나 TV쪽에 많이 형성된 것 같아요. 내가 달라진 건 없지만, 외부적인 변화는 많았죠. <9시 뉴스>에서 날 소재로 다루고, 인터넷 검색순위 1위가 되고, 그런 일들은 생각도 못했고, 지나서야 알았어요. 오너 아니면 퇴역 장성이 돼 있을 나이이고, 조용한 데서 좋은 공기 마시면서 쉬고 있을 나이에, (웃음) 이렇게 활약할 수 있었다는 게 기쁘고 고맙죠. 안타까운 일이라면, 날 필요로 하는 분들을 다 만족시켜 드리지 못했다는 건데, 떡이라고 다 먹을 수는 없는 거니까. 내 생각해서 제안해준 분들과 일일이 같은 배를 못 타서, 그게 안타깝고 미안하죠.

● 나이, 지금보다 많거나 적거나

나이는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물론 아쉬움은 있죠. 인생이 유한한 거니까. 그런데 사람 인생에 기회는 몇번씩 있는 모양이더라고. 다만 그걸 혼자 맞느냐, 쌍방이 같이 맞느냐의 차이, 안타냐, 홈런이냐의 차이 같은 건데… 내 경우엔 지금 그게 잘 맞아떨어진 거죠. (웃음) 내가 숀 코너리를 좋아해요. 젊었을 때는 깊이가 없었는데, 나이 든 지금 모습이 매력있더라고. 건강미 있게, 멋있게 늙어가는 모습이 보기 좋고, 자극이 돼요. 연기가 시한부 직업이라는 인식 때문에 안타까웠는데, 지금은 힘이 생겼어요.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스스로 개척자라는 소명의식도 갖게 됐어요. 큰 욕심은 없어요. 최선을 다해서 후배와 동료들 위해 입지를 다져놓고 싶다는 거지. 어깨가 무겁지만, 자긍심이 있어요.

● 이미지, 실제와의 간극

이미지라는 게 작위적으로 만들려고 해서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고, 그러려고 노력한 적도 없어요. 시청자와 관객이 나라는 인물의 ‘재료성’을 보고 만들어주는 거니까. 영화나 시트콤, 광고에서 보여준 모습들이 아주 근거가 없지는 않아요. 나의 기본적 요소, 잠재적 능력에서 파생돼 나온 것일 테니까. 나이먹어서 그렇지, 젊은 애들하고 얘기가 잘 통하는 편이에요. 권위다 뭐다 별로 내세우지를 않으니까. 아들들이나 후배들 앞에서도 그래요. 인생을 앞서 살았고 경험이 많아서 해줄 수 있는 얘긴 자신있게 하되, 나를 많이 열어두는 편이에요. 난 내가 현대인이라고 생각해요. 시류에 맞게 사는 사람. 그러니까 부합도 되고 하는 거겠지.

● 인기, 그 원인을 가늠한다면

변신한다, 망가진다고들 하는데, 나는 뭐가 됐든 ‘난센스’로 보이지 않게, 정공법으로 접근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영화와 방송쪽에 있는 젊고 우수한 인력들이 ‘나’라는 ‘재료’를 갖고 맛난 요리를 만들어준 거죠. 시류가 그랬다고 해야 할까. 이전에도 장르가 많긴 했지만, 한정된 건 사실이었는데, 그게 점점 넓어지면서, 내가 기여할 여지가 많이 생겼던 것 같아요. 재미난 것이 영화와 시트콤과 광고 사이에, 핑퐁을 하듯 서로 치고받는 과정에서, 점점 뭐가 더 붙어서 넘어오더라고. (웃음)

● 영화, 몸 풀기, 맛 들이기

앞으로도 영화에 힘을 줄 생각이긴 하지만, 매체에 구애받지 않고, 좋은 작품이 있으면 잘 선택해서 풀어나가 볼 생각이에요. 겪어보니 영화라는 게 열심히 한다고 다 되는 게 아니라, 관객에게 내놓는 과정에서 ‘시류’에 부합하지 않으면, ‘명품’이 안 되더라고요. 나는 지금도 <지구를 지켜라!>가 그렇게 아까울 수 없어요. 그게 시각을 달리한 인류 창조 얘기거든. 철학도 있고, 메시지도 있고, 기술력도 좋아요. 청소년들 이상 실현을 돕고, 자긍심도 줄 수 있는 영환데, 그걸 왜 못 보게 하냐고. 왜 그렇게 금지하는 게 많은지, 직접 부딪치게 해야 자정능력이나 판단능력이 갖춰지지. 이런 세계화 시대에 그런 영화를 청소년들에게 안 보여주는 건 국가적 손해라고요. 난 그렇게 생각해요.

● 역할에 뛰어드는 방법

나는 독해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요. 책(시나리오)을 받으면, 늘 머리맡에, 베개 옆에 둬요. 안 봐도 그냥 둔다고. 전체적으로도 읽고, 역할 중심으로도 읽고, 그러다 생각나는 거 있으면 메모도 하고. 그렇게 준비하고 나서, 액팅 들어가기 전에 백윤식만이 낼 수 있는 그 맛을, 영양주사 맞듯 쭈욱 놓는 거지.

● 현장에서 나는

일 자체가 좋아요. 모여서 작업하는 걸 좋아하니까, 현장 나가는 게 기분 좋죠. 시간도 늘 지켜요. 언젠가 어떤 스탭이 그 얘길 하던데, 그게 나한테는 당연한 일이거든. 내가 좀 썰렁하게 웃긴가봐. 백 꼰대 오는 날 언젠가, 은근히 기다리는 눈치들이에요. 술자리도 안 빠져요. 동틀 때까지 앉아 있으니까. 어제도… 이 촬영 아니었으면, 아마 아침까지 마셨을 거야. (웃음)

● 2005년, 그리고 먼 미래의 청사진

더 정진해야죠. 지금 책 여러 권 받아놨고, 곧 출연 결정을 내릴 거예요. 수십년 경력이 쌓이다보니까, 안 한 역할이 거의 없을 정도로 다양하게 했더라고. 사극, 군사물, 문예물… 특히 예술가, 지식인 역할이 내 18번이었지. 그런 특집극, 문예물의 다양한 경험들이 영화 작업에 많은 도움이 돼요. 젊은 감독들이 날 보면 뭐가 자꾸 떠오르는지, 이것도 해보라, 저것도 해보라, 제안하는데, 이 나이에 할 수 있는 처절한 사랑 이야기, 그런 멜로를 하고 싶은 생각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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