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 Up 1990년,
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출연 모흐센 마흐말바프
<EBS> 6월30일(토)
밤 10시
이젠 미지의 감독과는 거리가 멀어졌지만 한때는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도 무명감독이었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1987)로 해외평단의
관심을 끌던 당시 그는 이란 출신의 아마추어 감독이었을 따름이다. <클로즈업>은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에게 중요한 작품이었다.
이후 감독작인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와 <올리브 나무 사이로>(1994)의 모태가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영화만들기 과정을 적극적으로 노출하면서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는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특징이 온전하게 녹아 있다. 극히 사적인
체험을 소재로 하면서 영화 속 인물의 ‘관계성’을 중시하는 연출방식도 이 영화에서 비롯되었다. “겸손한 영화감독과 예술가는 무릇 대중과 어울릴
줄 알아야 한다”는 <클로즈업>의 대사는 마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고백처럼 들린다. 최근 키아로스타미 감독은 다소 매너리즘에
빠진 경향도 보이고 있지만 <클로즈업>이 이란영화의 독자적인 화법을 확립하면서 이란 출신 감독들에게 이상적인 ‘모범’이 되었던 작품임엔
이견의 여지가 없을 것 같다.
<클로즈업>은 영화찍는 과정에 관한 영화다. 그런데 좀 특이하다. 어느 영화감독을 사칭한 남자가 겪는 이야기를 카메라에 담고 있는데
문제의 영화감독이 직접 출연하기도 한다. 사브지안은 버스에서 만난 아한카 부인에게 영화감독 마흐말바프를 사칭한다. 한번 말을 뱉으니 점차 거짓말을
되풀이한다. 아한카는 그를 초대하고, 집까지 찾아온 영화감독을 극진히 대접한다. 사브지안은 계속 감독인 척하면서 아한카의 집에서 영화를 찍겠다는
이야기까지 한다. 하지만 사기임이 들통나고, 아한카는 사브지안을 고발한다. 사건에 관심을 가진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이 심문과정을 그대로
영화로 만들게 된다. <클로즈업>은 영화와 관련된 인물들 관계를 흥미롭게 탐색해 들어간다. 사브지안은 자신이 마흐말바프 감독이라고
행세하고 다닌 탓에 법정에 서게 된다. 왜 특정한 감독 행세를 하고 다녔느냐, 는 질문에 그는 “내가 보기에 감독의 영화엔 고통이 담겨 있었다”고
답한다. 예술을 사랑하고 감독의 영화세계를 좋아하기 때문이라는 거다. 재미있는 점은 이 과정을 키아로스타미가 영화로 찍으면서, 단순히 관객일
뿐이던 사브지안이 영화 <클로즈업>에서 주연배우가 된 것. 이렇듯 영화만들기 과정 자체를 극적 장치로 활용하면서 키아로스타미 감독은
영화의 환상성을 끊임없이 교란한다. 특히 관객, 배우, 감독을 기계적으로 구분하지 않고 하나의 상호보완적인 관계로 이해하면서 한편으로 연출자의
자기반영성을 드러내는 것은 이란의 후배 감독들과 서구 평단을 매혹시킨 키아로스타미의 미학적 원천이기도 하다
.
<클로즈업>에서 감독은 이후 즐겨 사용하게 된 ‘꽃의 결말’을 선보인다. 등장인물들은 화해를 하고 악수를 나눈 뒤 꽃을 든 채 희희낙락한다.
모든 갈등은 눈녹듯 사라지고 평온한 결말이 찾아오는 것이다. 영화를 통해 개인적 체험을 보편화하고, 현실의 뒤얽힌 갈등을 무리없이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 바로 여기에 키아로스타미 영화의 비밀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사브지안은 영화 매체에 대한 애정을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소년의
마음”에 비유하고 있다. <클로즈업>은 1990년대 키아로스타미 감독작 중에서 가장 의미있는 위치를 점하는 작품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김의찬/ 영화평론가 sozinho@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