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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칼럼] 서러워라, 나이든다는 것은
이종도 2005-02-18

마흔도 안 됐는데 벌써 반백이다. 두살 위인 연극연출가에게 형이라고 부르며 친한 척을 하려고 했더니 불편해하는 기색이다. 머리가 허옇게 센 동생을 둔다는 것도 곤혹스런 일일 것이다. 누우면 슬픔처럼 출렁이는 뱃살, 거울 앞에 서면 폭설을 맞은 듯한 머리칼. 뿐이랴, 한때 곧고 강직했으며 오만하게 머리를 들고 다녔으나 지금은 어깨를 웅크리고 한없이 작아진 그 친구까지(그 친구 참 겸손하다). 일찍이 우디 앨런이 25년 전 <애니홀>에서 고백한 대로, 맛도 없는데다가 양도 적은 식당에서 밥을 먹는 기분이다. 나이를 먹으면 현명해지기라도 해야 하는데 좋은 게 하나도 없다.

동거하는 세대주는 맑시스트다(<브로드웨이를 쏴라>의 대사를 떠올려보시라). 횟수가 늘어나면 행복의 질도 커진다는 그의 기대를 마냥 무시할 수는 없어 이틀을 연속 무리했더니 진이 다 빠졌다. 양이 질을 결정한다는 양질전화는 내가 보건대 진리가 아니다. 용불용설도 시대착오적이다. 축 처진 채로 일어났더니 녹용 갖다주랴 보약을 끓어주랴는 말 대신 프랑스 사람들은 일주일에 서너번이 기본인데 생색내지 말라는 핀잔이 돌아온다. 주섬주섬 운동복을 꺼내 집을 나섰다.

러닝머신 위에 서면 아래층 수영장이 유리창으로 훤히 보인다. 수영 연습을 시작하기 전 서른 안팎의 여인들이 힘차게 물장구를 친다. 물 위에서의 폭죽놀이랄까, 물보라가 장관이다. 저 약동하는 생의 분출을 보며 내내 쩔쩔맸다. 몇분 러닝머신 위에 있다가 내려와 샤워를 하러 갔다. 마침 수영 클래스 교대를 마치고 들어온 수영 코치 둘이 냉큼 내가 찜했던 샤워기 앞에 섰다. 거기 두 군데만 샤워 물줄기가 세다. 나는 구석으로 가서 물을 틀었다. 누구 오줌발처럼 드문드문, 성기고 허약하게 나오는 물줄기를 맞으면서 힐끗 저쪽을 바라봤다. 쭉 빠진 뱃살, 힘찬 젊음의 상징(그 친구들 참 힘차다), 검은 머리칼…. 사실 하나도 안 부럽다. 다만 저 눈부신 물장구 부대가 저들에게만 관심을 쏟으리라는 생각이 나를 슬프게 하였다. 설마 내 인생 이대로 끝나려나. 시렁 위에 올려놓았던 비누곽이 떨어졌다. 쑥색의 탈모방지 비누 로고를 들킬까봐 날름 집어들었다. 두고봐라, 내 올 여름엔 너희들을 제압할 쫄티를 입고 나타날 것이다.

출근했다. 노트북을 켜고 괜히 자판을 두드리며 일하는 척을 하니까 벌써 피곤해진다. 회사의 장래를 생각하기 위해 후배 녀석을 앞장 세우고 담배를 한대 피우러 나갔다. 내가 요즘 너무 격무에 시달리는 것 같지 않니, 내 얼굴이 좀 까매졌지. 후배 녀석이 내 얼굴쪽으로 연기를 내뿜더니 한마디 한다. 선배 원래 시꺼멓잖아. 참, 요즘 애들 버릇없어. 앞으로 기사 늦게 넘기는 놈들, 지각하는 놈들 두고봐라. 더 큰 애정으로 앙갚음해줘야지. 근데, 보자. 내가 제일 늦게 회사에 나오는구나.

벌써 회의시간이다. 편집장이 어느 시트콤에서 편집장으로 나오는 분을 인터뷰하는 게 어떨까 물었다. 모두들 대답이 없다.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오른손을 살며시 들고 신선한 발상입니다, 했다. 쿡쿡 웃음이 앞뒤에서 삐죽 튀어나온다. 편집장 옆에 앉아 있던 동기가 두손을 이마께로 들어올려 상하로 흔들며 말했다. 딸랑딸랑. 꾸웅. 내 충정은 언제쯤이나 이해를 받을 수 있으려나. 그러나 선지자는 언제나 고향에서 외면받는 법 아니던가. 그 순간 딸랑딸랑, 종소리가 뇌리 속에서 맑게 울려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