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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의 여성해방 그린 수작, <루시아>

EBS 3월19일(토) 밤 11시45분

<저개발의 기억>이 쿠바영화의 하나의 경향을 대표하는 수작이라면, <루시아> 역시 비슷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는 쿠바에서, 다시 말해서 쿠바 역사에서 여성들이 어떠한 위치를 차지했는지 보여주는 것에 집중한다. <루시아>는 언뜻 하나의 영화처럼 보이면서 또한 그렇지 않다. 한 영화에 세 가지 에피소드가 등장하고 있는데 각각의 에피소드에서 주인공의 이름은 모두 ‘루시아’다. 이들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되짚어가는 과정은 쿠바 여성들의 고단한 삶의 궤적을 돌이켜보는 작업에 다름 아닐 것이다.

스페인 식민지 시대를 배경으로 한 1부에서 여인 루시아는, 스페인군의 앞잡이와 사랑에 빠졌다가 동생이 죽게 되자 그 앞잡이를 찔러죽인다. 2부는 1930년대 독재시대에 담배공장에서 일하는 루시아가 혁명가 알도와의 사랑을 회상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녀의 시위활동과 알도와의 행복한 한때, 알도를 죽게 한 폭력적인 정치상황 등이 차례로 카메라에 포착된다. 마지막 이야기의 루시아는 혁명 뒤 농촌의 노동자로 등장한다. 남편의 질투심 때문에 아무 일도 못하던 루시아는 혁명군한테 글을 배운 뒤 남편에게 떠난다는 편지를 쓴다. 그러나 곧 돌아와 앞으로 남편을 사랑할 것이라고 말한다.

줄거리에서 언뜻 짐작할 수 있듯 <루시아>는 1895년, 1930년대 그리고 1960년대라는, 세 시대를 살아가는 루시아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들은 귀족과 공장 노동자, 그리고 농부 등 각기 다른 상황에 처해 있다. 흥미로운 것은 에피소드가 전개되는 방식에 따라 영화 스타일이나 양식이 변화를 보인다는 것이다. 특정한 에피소드에서 영화는 실험영화에 버금갈 정도의 대담성을 노출하기도 하며 시적 정서가 담겨 있는 대목도 있어 다양하기 이를 데 없다. 멜로드라마와 코미디, 그리고 지독한 비관주의와 낙관주의 사이를 교차하면서 <루시아>는 쿠바 역사와 보이지 않는 폭력에 희생된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영화 속 에피소드에서 한 여성이 글로 남기듯 “난 당신 노예가 아니에요”라는 것이 하나의 메시지처럼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움베르토 솔라스 감독은 이탈리아에서 영화를 공부했으며 단편 <마누엘라>에서 쿠바 여성들의 삶에 대해 관심을 표한 적 있다. 이어 만든 <루시아>는 여러 해외영화제에서 상을 받으면서 그에게 국제적 명성을 안겨주었다. 이후 그는 1980년대로 접어들면서 <세실리아> 등을 만들면서 여전히 왕성한 창작활동을 벌였다. 혁명과 여성, 그리고 역사라는 거대한 주제를 풀어내고 있는 <루시아>는, 1960년대 쿠바영화의 창조성이 1920년대 러시아영화에 견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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