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스페셜 > 스페셜1
영화 포스터를 만드는 사람들 [1] - 꽃피는 봄이 오면
사진 이혜정이영진 2005-03-22

이미지로 통하게 하라!

“잠깐 밥먹고 올 테니까 그동안 끝내라고.” 감독을 비롯한 스탭들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포스터 촬영을 해야 했다는 한 사진작가의 회고는 까마득한 옛일이 아니다. 원치 않는 도둑촬영의 결과가 좋을 리 없다. 그때마다 뒷일은 언제나 포스터 디자이너들의 몫으로 남았다. 그랬으니 보수 적고 일 많은 영화쪽 일은 디자인 업계에서 기피하는 분야였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버틴 이들이 있었고, 이들 덕에 지난 3, 4년 동안 영화 포스터 디자인은 “몰라보게 바뀌었네”라는 말을 충무로 안팎에서 들을 수 있었다. 여기 소개하는 이들은 지난 혹한기를 날밤 새워가며 버텨낸 주인공들이다. 이미지의 감흥을 말로 풀어내기 저어하는 이들을 붙잡고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작업에 대해 물었다.

키포인트라면 파격도 서슴없다

“시나리오를 주면 항상 맘에 드는 표지를 만들어줬다. 매번 가져오는 시나리오 표지의 색감이나 글자 크기, 그리고 형태가 시나리오를 제대로 소화했다는 인상을 갖게 만들었다. <파이란>부터 <가족>까지 계속 같이해온 또 하나의 이유는 마케팅팀과의 커뮤니케이션이 다른 팀에 비해서 원활하다는 점이다. 게다가 함께 나눈 아이디어를 세련되고, 고급스럽게 포장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튜브픽쳐스 황우현 대표)

히스토리

시작은 파격이었다. “노 개런티도 좋다.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해달라”고 해서 작업한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2000). 포스터를 본 제작진은 무엇보다 ‘가독성이 떨어지는’ 로고를 문제삼았다. 나무젓가락을 부러뜨려 직접 손으로 제목을 흘려 썼는데 냉담한 반응뿐이었다. 김혜진 실장은 그때 “너 미쳤구나”라는 말까지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새로운 것을 원하는 관객의 촉수가 꽃봄을 구했다. 독특한 캘리그라프 사용은 화제가 됐고 이후 유행으로 번져 지금까지도 대세로 자리잡고 있을 정도다. <죽거나…>가 꽃봄의 존재를 알렸다면, 이듬해인 2001년 <집으로…>와 <나쁜 남자> 포스터는 “1년에 맡는 영화만 15편 이상이 되는” 메이저팀으로 올라서는데 발판이 됐다. “할머니가 아련한 그리움의 대상”이라는 영화의 컨셉에서 착안해서 옛날 교과서 형식으로 치장한 <집으로…>의 런칭포스터는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데 성공했고, “훔쳐보기라는 영화의 섹슈얼한 시선을 더욱 자극하기 위해 여성의 뒷모습만을 노출했다”는 <나쁜 남자> 본 포스터는 역발상으로 접근해 대어를 낚은 경우였다.

스타일

“우린 임팩트(impact)를 가장 중시한다.” 꽃봄의 노선은 간명하다. 거리의 부유하는 시선들을 잡아끌어야 한다는 포스터의 임무에 충실하자는 것이다. 차별화된 포스터를 만들어내기 위해 꽃봄은 전해 받은 아이디어를 실행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지나치게 직접적이다”, “한눈에 의미가 들어오지 않는다” 등 상반된 의견이 나왔고, 결국 채택되지 않았지만, 세 인물이 각자 다른 이유로 한쪽 눈을 찡긋거리고 있는 <가족>의 포스터 B컷은 “상처입은 아버지의 눈으로 세상을 보자”는 꽃봄의 영화 해석을 충실히 담고 있다. 곧 개봉을 앞둔 <주먹이 운다> 포스터의 경우 최민식 vs 류승범의 대결구도를 극도로 부각시킨 사례. “인물을 트리밍할 때 지나치게 클로즈업한다”는 업계의 비난이 있을지라도, 그것이 키포인트라면 주저하지 않고 밀어붙인다.

“감정에 충실한” 강영호, “테크닉에 능한” 이전호, “배우를 돋보이게 만드는” 권영호 등 다양한 장점의 포토그래퍼들과 작업해온 것도 꽃봄의 노하우. 김혜진 실장은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건 조화”라고 말한다. “비주얼, 로고, 카피가 서로 붙지 않으면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지난한 과정이 될 수밖에 없다. “<잔다르크> 포스터를 보면 밀라 요보비치의 뒷모습만 나오잖아요. 배우나 포토에 기대지 않고 가는 자신감이 좋더라고요. 우리 현실상 무리죠. 실크스크린으로 포스터를 만들어보고 싶은데 멀티플렉스 형광판을 고려하면 객기고. 가로 형태의 포스터를 만들어보고 싶거나 로고타입만으로 가득한 포스터를 만들어보고 싶은 꿈도 지금으로선 불가능하죠.” 현재 꽃봄이 박차를 가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태풍태양>. “지금까지 맡은 영화 중 가장 어렵다”며 “정재은 감독에게 조언이라도 구해야겠다”고 엄살을 마지막으로 내놓는다.

언포게터블

<박하사탕> <시월애>를 하면서 헤맬 만큼 헤매는 동안 <죽거나…>를 만났다. 류승완 감독 너무 안됐다, 도와줘야지, 착한 마음으로 덤벼든 영화인데 춤추는 액션이라는 컨셉 아래 시도한 캘리그래피를 보고 다들 경악했다. 류승완 감독까지도. 노동강도에 비해 벌이는 시원찮지만 꽃봄이 이후에도 영화를 놓지 않게끔 해준 작품이라 남다르다. <하류인생>을 맡게 됐을때 굉장히 기뻤다. 언젠가 임권택 감독님 영화를 해보고 싶었으니까. 그런데 우리가 처음 낸 안을 별로 좋아하지 않더라. 조승우가 젊기도 했고, 우리쪽에선 젊은 관객도 끌어올 수 있도록 세련된 포스터를 만들려고 했는데 결국 그렇게 못했다. 어르신들께서 그렇게 보이길 원하지 않으셨다. 임 감독님 영화 같지 않다면서. <장군의 아들> 분위기를 염두에 두고 계셨던 듯하다.

대표작

2005년 <주먹이 운다> <태풍태양> <광식이 동생 광태> <엄마 얼굴 예쁘네요> 2004년 <내사랑 싸가지> <사마리아> <하류인생> <> 2003년 <오! 해피데이>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 <아카시아> <여섯개의 시선> 2002년 <나쁜 남자> <집으로…> <생활의 발견> <죽어도 좋아> <몽정기> 2001년 <눈물> <수취인불명> <파이란> 2000년 <박하사탕>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시월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