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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모른다>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2]
박은영 2005-04-04

오감으로 환기하는 리얼리티, 일상과 자연

<디스턴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사소한 일상이나 자연 풍광을 유난히 물끄러미, 뜬금없다고 느껴질 만큼 자주 응시하곤 한다. 영화를 보는 것이 시각과 청각에 제한된 경험이긴 하지만,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후각과 촉각과 미각을 환기하는 일도 잦다. 그는 그렇게 관객의 오감을 자극하려고 든다. <아무도 모른다>에서 아이들이 집나간 엄마를 추억하는 순간은 방바닥에 들러붙은 빨간 매니큐어 흔적을 손으로 더듬거나 벽장 가득 채워진 엄마 옷의 냄새를 맡을 때다. 이들은 아마도 아폴로 초콜릿을 먹거나, 모노레일의 덜컹거리는 소음을 들을 때마다 막내를 떠올릴 것이다.

<원더풀 라이프>에서 사자들이 고르는 생전의 행복한 기억들도, 거창한 사건사고가 아니라 감각과 관련된 소소한 추억들이다. 무릎에 누이고 귀를 파주던 엄마의 살냄새, 더운 여름날 전차 속으로 불어들어오던 시원한 바람, 첫 비행에서 창 밖으로 보이던 솜털구름, 대나무 숲에서 먹던 주먹밥의 맛 같은 것들. <디스턴스>에서 떠나간 가족에 대한 기억도 그런 식으로 불쑥불쑥 떠오른다. 진한 백합 향기로 누이를 추억하고, 아이스크림을 먹고 나눈 끈적한 악수의 촉감으로 죽은 형을 기억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한 인터뷰에서 이런 감각에 대한 표현을 “삶의 리얼리티를 느낄 수 있는 육체적인 기억”이라고 설명한 적이 있다. 이는 머리와 입이 전하는 기억처럼, 희망이나 후회를 반영하며 왜곡되거나 변질될 염려가 없는, 진솔하고 명쾌한 기억이다.

자연은 때로 예기치 않은 깨달음을 주거나 그런 순간을 형상화하기도 한다. <원더풀 라이프>에서 내리는 눈을 맞으며, 연정을 품었던 선배를 떠나보내기로 하는 림보의 신참이나 <디스턴스>에서 호수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품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다섯 젊은이들처럼. <환상의 빛>에서 온 가족이 마루에 앉아 수박을 먹는 장면이나 오즈의 영화에서처럼 “날씨가 참 좋다”는 말을 주고받는 장면은, 늙은 현자나 건넬 수 있을 법한 인생 이야기다. 이처럼 그는 일상과 자연의 이미지로, 삶의 환희와 상실을, 기억과 상처를 일깨운다.

동시대성을 놓치지 않는 영화감독의 책임감

<아무도 모른다>

<환상의 빛>은 자꾸 어딘가를 가겠다고 고집 부리는 할머니를 손녀가 말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할머니는 돌아오지 않았고, 손녀는 그 새벽을 되돌리려는 듯 계속해서 같은 꿈을 꾼다. “왜 끝까지 잡지 못했을까.” 할머니가 사라진 그 길, 그 빛 속으로 남편이 걸어들어간 뒤로, 그는 같은 생각에 사로잡혀 산다.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 혼자 살아남았다는 채무감. 일본 전후 세대를 지배하는 이런 어둡고 무거운 정서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자유롭지 못했다. 1990년대 중·후반, 고베 대지진과 옴진리교 사건이 터지면서 그의 ‘동시대성’에 대한 고민은 더 깊어졌다. 그보다 조금 앞서 주목받았던 이와이 순지와 쓰카모토 신야가 이미지와 속도의 유희에 몰두하면서, 현실에서 멀어져간 것과 상반되는 선택이었다.

스스로를 “학생운동에 실패한 윗세대를 혐오하면서 비정치적으로 살아온 세대”라고 소개하지만, 그는 사회에 대한 관심을 늦추는 법이 없었다. ‘사회파 다큐멘터리 감독’의 이력과 습성은 쉽게 떨쳐낼 수가 없는 것이다. 그가 영화로 삼은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실제 사건에서 영감을 얻었거나, 설정을 따왔거나, 그 여파를 따라잡고 있다. 옴진리교 사건을 소재로 한 <디스턴스>처럼 16년 전의 네 남매 방치 사건을 영화화한 <아무도 모른다>도 단절과 소외라는 현대인의 질병, 그 환부를 들춰 보인다. 타인에게 무심하고 냉담해지는 오늘의 우리. “돈이 없어서 당장 찍지 못했지만, 내 안에서 이 기획이 더욱 성숙될 수 있었고, 가족 방치의 문제도 오늘날 더욱 심각한 사회 이슈가 되어, 오히려 잘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영화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는 믿지 않지만, 현실을 외면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는 일장기와 기미가요가 법제화되고, 자위대가 파병되는 일에 우려를 비친 적이 있다. “이러다 세상이 잘못 되면 내 영화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는 것이다. 죽음을 통해 거꾸로 삶의 의미와 생의 감각을 일깨우는 작업을 해온 그는, 거창한 대의명분과 목표에 미혹돼 삶에 대한 탐색과 질문을 그칠 때 세상이 위험해진다고 생각한다. 그런 현실감각, 주제와 감정을 강요하지 않는 겸손한 태도, 몇 시간 오락거리로 소구될 영화는 만들지 않겠다는 소신은, 고레에다 히로카즈에게 사려 깊은 감독이라는 믿음을 실어주었다.

죽음과 기억의 시대를 마친 그 뒤는

“난 아직 젊은데 죽음과 기억의 작가로 규정하는 건 말도 안 된다”며 거부감을 드러냈던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본인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도 그 주제의 장력에 이끌려왔고, 동시대 사회와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러던 그도 <아무도 모른다>를 내놓은 뒤, “이런 유의 영화로는 더 나은 작품을 만들 수 없을 것 같다”며, 일단 ‘죽음과 기억’의 시대에 확실한 마침표를 찍은 것처럼 보인다. 타임머신을 타고 완벽한 인공의 세계로 뛰어들며, 그는 이제 막 두 번째 챕터로 접어들고 있다. 완벽한 인공의 세계에서 그는 또 어떻게 삶의 리얼리티를 이야기하려는지, 벌써부터 궁금증이 인다.

비포 앤드 애프터 - 데뷔 전에 만든 다큐멘터리, 그리고 차기작

다큐 스타일에서 완벽한 허구의 세계로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필모그래피는 이리저리 엉켜 있다. 다큐 작업을 하다가, 극영화의 소재와 방법론을 착안한 사례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가장 가까이 있는 <아무도 모른다>의 경우 어린 아마추어 배우들에게서 감동적인 연기를 이끌어낸 비결은 그가 최초로 만든 다큐멘터리 <송아지의 교훈>(1991)으로 거슬러가야 한다. 송아지를 키우는 초등학생들의 이야기인 이 작품을 통해 그는 아이들에게 시간을 들여 신뢰를 구축하는 방법을 터득했다고 알려준다.

앞서 언급했듯 첫 영화 <환상의 빛>은 자신의 다큐멘터리에서 조금 더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경우다. 환경청 고위 관리의 자살을 다룬 <하지만…>(1991)은 그가 죽음과 상실의 테마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계기. 고레에다 감독은 그가 미나마타병 환자들과 환경청의 갈등에 희생됐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남편을 잃은 상실감을 안고도,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아내의 모습에서 감동을 받았다. 그렇게 무려 2년간 취재한 아내의 이야기를 토대로 논픽션 한권을 저술했고, 극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욕망을 느꼈다. <원더풀 라이프>는 조금 더 복합적이다. 의학 사고로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린 남자에 대한 다큐멘터리 <기억 없이>(1997)와 죽음을 앞둔 에이즈 환자가 그 생애 가장 행복한 추억을 카메라에 저장하는 에피소드를 담은 <그 없는 8월>(1994)이 복합적인 힌트가 되었다. 또 하나, 여행 정보 프로그램을 맡았던 시절, 격무에 시달려 비몽사몽하는 가운데, 편집실에 쌓인 테이프를 보고, 저것이 지나온 내 삶의 기록이라면, 하고 생각했던 것도, <원더풀 라이프>의 한 에피소드로 끼어들었다.

다큐 스타일, 자연주의, 동시대 이야기로 특징지워지는 전작들과 다른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그의 열망도 현실이 되었다. “완벽한 허구의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 이제까지 자연주의 기법으로 리얼리티를 보여주었지만, 완벽한 허구를 통해서도 리얼리티를 보여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지금이 아니면 영영 만들지 못할 영화라며, 그가 서둘러 진행하고 있는 작품은 <꽃보다 조금 더>라는 제목의 시대극이다. “첫 영화는 어쩔 수 없이 오즈를 의식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됐지만, 점점 나만의 것을 만들어보고자 자연스러운 리얼리즘에 치중한 작업을 하다가 오즈 감독의 형식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 좀더 인공적인 영화를 만들어, 오즈가 갖고 있는 부자연스러운 형식과 다시 한번 재회하려 한다.” 제작 규모도 커져서, 쇼치쿠 스튜디오에서 만들어낼 참이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마초적이지 않고 유혈낭자하지 않은 나카지마 사다오(<서두의 춤> <다케다신겐>) 스타일의 영화”가 될 거라고 밝힌 바 있다. 복수를 테마로 하고 있지만, 이야기의 초점은 ‘복수는, 살상은 어렵다’는 결론을 향해 있다.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길을 떠나지만, 살상이 내키지 않아 몸을 사리는 나약한 청년의 이야기라고 한다. 무진장 터프한 무사들 천지이던 시대극에 ‘약한 남자’를 등장시킨다니, 어쩐지 그다운 발상이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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