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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이제 죽었어요, 아주 즐거워요”
2001-07-11

스탭25시/ 부천영화제 초청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가 열리는 복사골문화센터에는 올해 널찍한 카페가 문을 열었다. 영화제 기간 VIP 게스트라운지로 쓰일 곳. 이제 얼마 뒤면 국내외 여러 감독, 배우, 배급업자들이 모여들 그곳에, 그들을 9일간의 축제로 불러모은 사람들이 한데 모였다. 부천영화제 초청팀장인 오가원씨, 팀원 남숙희, 정수진, 엄경희씨. 한층 위 영화제 사무국에서 일하는 이들은 사실 한자리에 모였다는 말이 적합하지 않을 만큼 매일매일을 문화센터 안에 마련된 기숙사에서 숙식을 함께하며 일하는 사이다. “믿기지 않아요. 벌써 다음주 목요일이면 개막이라니.” 오가원 팀장이 믿기지 못해하는 영화제 개막은 앞으로 8일이나 남았지만, 5월부터 준비해온 초청업무를 마무리하기에 숨가쁜 시간이기도 하다. “우린 이제 죽었어요”, 영화제가 시작하면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 되게 바쁜 날들이 될 거라며 걱정하는 눈치는 잠깐, “영화제 스탭은 아주 즐거운 일이에요”라는 이들은 영화제를 진정으로 즐기는 젊은 시네필들이었다.

이들이 부천으로 모여든 데에는 저마다 다른 ‘사연’들이 있었다. 오가원 팀장은 다큐멘터리 구성작가 출신. 대중적인 것에 관심이 많아 서양화를 전공하던 학교 때부터 팝 아트를 좋아했던 그녀는 TV로 진출, KBS <일요스페셜> <세계는 지금> 등 교양프로 작가로 일하다가, 시청률 압박이 없고 좀더 자유로운 영화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그녀의 꿈은 영화프로듀서. 영화판권을 다루는 회사인 알토미디어에서 일하다 관두고 쉴 무렵, 친하게 지내던 송유진 프로그래머가 그녀를 부천으로 ‘초청’했다. 그런가하면 ‘섭외의 여왕’ 남숙희씨는 ‘영화제판’ 토박이인 셈. 문화학교 서울 연구팀에 소속되어 있는 그녀는 인디포럼, 퀴어영화제, 십만원비디오영화제 등에서 꾸준히 일해왔고, 부천은 1회부터 계속 프레스 아니면 게스트로 방문했다. 한국영화 걸작회고전의 게스트섭외를 맡았는데 <김약국의 딸들>의 배우 김동원씨, 유현목 감독 등 모시기 어려운 게스트들을 잘도 섭외해 ‘섭외의 여왕’으로 불린다고. 팀에서 가장 어린 정수진씨는 대학 시절부터 방학마다 친구들과 단편영화를 만들어온 독립단편영화계의 ‘실력파 조감독’이다. 올 이스트만 단편영화제작지원 당선작인 이지행의 <봄산에>가 그녀가 조감독으로 참여하는 다음 작품이다. 오가원씨와 친분이 있는 관계로 ‘캐스팅’됐다. 남숙희씨가 초청팀의 대외업무에 능숙하다면, 정수진씨와 엄경희씨는 내적으로 오가원 팀장의 손발이 되어주고 있다. 자원봉사자 모집원서를 냈다가 ‘엑셀을 잘해’ 전격적으로 스탭이 된 엄경희씨는 수많은 우편물을 발송해야 하는 초청팀에서 꼭 필요한 일인 엑셀업무의 전문가다. “영화 일을 하고 싶어 회사를 관뒀는데 하는 일은 똑같아요”라는 말에, “어디든지 하는 일은 다 같다. 콘텐츠가 다를 뿐”이라고 팀장이 다독이는 말을 건넨다.

출품작의 감독과 출연배우를 섭외, 초청하고, ‘범영화인’들에게 ID카드를 발급해서 보내는 일, 개폐막식 초청장을 보내는 일, 해외 게스트들이 머물 숙소부터 자동차 렌트까지 해당업체를 선정하는 일. 수행통역자를 비롯한 영화제 스탭과 자원봉사자를 면접으로 뽑는 일. 영화제의 초청팀이 하는 일은 한마디로 “관객을 제외한 다른 모든 사람들에 관한 갖가지 일”이다. 영화제가 얼마나 많은 영화인들이 운집하는 곳인지 아는 이라면, 이들의 일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을 게다. “대부분 일들이 짧은 시간 안에 폭발적으로 이루어져요.” 바쁘고 정리가 잘되지 않는 영화제 업무 특성상, 팀간에 마찰이 있을 수도 있지만 올해는 팀간에 서로 팬클럽이 생길 정도로 사이가 좋은 게 또 하나의 복이라고. 영화제가 시작하면 정말 거대한 ‘폭발’이 이들의 전화로, 발품으로 찾아들 테지만, 이들은 오히려 그 폭발을 기대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영어는 다 잘하시겠어요”하자 “음, 한국 게스트 담당은 한국어를 잘하죠”라는 대화를 끝으로, 이들과의 만남을 접었다.

글 최수임 기자 sooeem@hani.co.kr

사진 이혜정 기자 hyeju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