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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덜군 투덜양] 마스터베이션은 남몰래 하시라, <더티 댄싱2>

투덜양, 노부부의 자아도취 홈비디오 <더티 댄싱2>에 괴로워하다

성차별, 인종차별, 외모차별 같은 세상의 편견에서 나는 자유로운가. 그렇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적어도 자유롭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는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생각을 고쳐먹기 위해 노력해도 잘 고쳐지지 않고, 솔직히 노력하고 싶은 마음도 잘 안 드는 게 있는데 바로 나이차별이다. 내가 동남아시아인으로 바뀔 가능성은 전혀 없고, 지금 이 상태에서 특별히 더 망가질 외모가 남아 있지도 않지만 늙어서 호호 할머니가 될 것은 자명한데도 나이듦에 대해서는 좀처럼 너그러워지지가 않는다. 그 예로 나는 <죽어도 좋아>를 영화적 완성도와는 무관하게 개인적으로 불편한 감정을 가지고 봤다. 60∼70대 노인이 되어도 이성의 눈길에 가슴속 봄바람이 일고, 성적 욕망이 꿈틀거린다는 게 징그럽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다. 그때쯤이면 진짜 불혹하며 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끝없는 긴장과 욕망의 연속이라니 인생이 더 지리멸렬하게까지 느껴지기까지 했다.

이랬던 나였으니 <더티 댄싱2>를 보면서 짜증이 해일처럼 밀려온 건 예정된 수순이었을 것이다. 고등학교 때 학교 앞 은하시네마(은하수분식집)에서 비디오를 보다가 먹던 밥숟가락을 떨어뜨릴 정도로 열광했던 영화가 바로 <더티 댄싱>이었으니 패트릭 스웨이지가 나온다는 것 말고는 <더티 댄싱>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이 영화를 보면서 분통이 터질 수밖에 없었던 배경도 더해진다. 과도하게 주름을 펴 눈이 거의 귀까지 찢어진 패트릭 스웨이지와 자글자글한 눈가의 주름이 결코 세월의 훈장이라고 느껴지지 않는 리사 나이미가 처음 등장했을 때 알아봐야 했다. 제작·각본·감독까지 짜고 친 두 사람이 부부 사이인 걸 알았더라면 아마 영화를 보러 가지 않았을 것이다. 이건 순전히 노부부의 여가활동인 영화 만들기의 발표회가 아닌가. 가정용 홈비디오 시사회라면 일가친척과 이웃사촌들이나 부를 것이지, 왜 지구 반대편의 나까지 <더티 댄싱2>라는 사탕발림성 제목으로 꼬시느냐는 말이다. 새끈한 꽃미남 꽃미녀들이 나와도 그렇게 허술한 이야기와 어설픈 연기로 두 시간을 때운다면 괴로울 판에 다 늙은 노인네들이 자신들만이 이해할 뻐꾸기를 날리며 금실을 자랑하다니 정말 너무하지 않았나.

특히 압권은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하는 자아도취 스타일의 춤장면들이다. 춤 아무리 잘 추는 전문 춤꾼이 나와도 영화에서 그렇게 많은 시간 ‘예술’하면 나처럼 수준 낮은 관객은 화난다. 하물며 사설 댄스학원 우등생 수준의 부부가 나와서 ‘우리 너무 멋있지 않아?’라고 몸으로 강변하는 걸 보는 건 고역이다. 이 모든 게 나이에 대한 편견 때문이다 탓해도 할 수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가짜 <더티 댄싱 2>는 너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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