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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전부와도 맞먹을 첫사랑의 추억, <미안해>
김현정 2005-05-03

그녀를 위해서라면 어디든 달려갈 수 있는 열세살 소년 세이의 성장담.

오사카에 사는 초등학생 세이(히사노 마사히로)는 국어책을 읽다가 정액이 터지면서 성큼 사춘기에 접어들게 된다. 자기 멋대로 커지는 고추 때문에 속이 상하지만, 조금쯤 어른이 되어간다는 자부심도 주는, 첫 번째 유정. 몸이 자란 세이는 교토 할머니 댁에 갔다가 만난 중학교 2학년 소녀 나오코(사쿠라타니 유키카)에게 첫눈에 반하면서 마음도 함께 자라게 된다. 세이는 틈만 나면 기차를 타고 교토로 달려가서, 냉정하게 쏘아붙이다가도 추운 겨울날 핑크색 머플러를 둘러주는 나오코에게 구애를 한다.

2003년 전주영화제에서 상영돼 관객상을 수상한 <미안해>는 성장을 맞이한 소년의 혼란보다는 세상 전부와도 맞먹을 첫사랑의 추억에 마음을 기울이는 영화다. 20년이 지나서 첫사랑이 희미해진다면 세이는 무엇을 기억에 남겨둘까. 아마도 기찻길과 자전거가 아닐까 싶다. 덜컹거리는 기차 손잡이를 잡고 한 시간만 참으면 그녀를 만날 수 있다! 세상 다른 일을 근심하지 않아도 좋은 열세살 세이에겐 오직 그 시간만이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었을 것이다. 혹은 브레이크를 놓고 하얀 다리까지 질주했던 나오코의 자전거를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먹고사는 일에 무능한 아버지 때문에 일찍 성장해야 했던 나오코는 넘어지지 않고 다리에 도착하면 “오늘은 OK”라고 말한다. 세이는 바람을 맞아 눈부시게 보였던 첫사랑의 머리카락과 함께 오늘은 괜찮을 거야, 라고 말해야만 했던 그녀의 그늘을 기억해줄 것이다.

이 영화의 감독 도가시 신은 <미안해>처럼 중학교 2학년 소녀가 주인공인 <오프 밸런스>로 데뷔했고 얼마 전 <철인 28호>의 실사버전을 연출하기도 했다. 그는 1960년생이지만 아이들과 이야기하기 위해 허리를 굽히고 사는 듯하다. 아이들의 세계엔 사건이 적지만, 그 때문에 사건 하나하나가 더욱 묵직하다는 사실을, 도가시 신은 알고 있다. 세이는 사랑하게 된 소녀가 두살이나 많다는 사실을 알고 포기하려 하지만 이내 “나는 유정도 했어요!”라고 외치면서 자신이 어른이라고 주장한다. 부끄러움과 자부심이 겹치는 묘한 첫 경험, 열심히 사랑하려고만 하는 천진한 열정, 왜인지도 모르면서 주먹으로 가슴을 치는 사랑의 혼돈. 세이와 모든 소년의 성장은 되바라진 외피나 순수를 가장하는 위선없이 <미안해>의 카메라 앞을 통과해간다. 기억은 매우 불순한 것인데, 도가시 신은 남다른 정제과정을 거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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