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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적이며 절대적인 백과사전, <극장전>의 김상경 & 엄지원

마포구 공덕동의 한 빌딩 꼭대기층에 자리한 9046호 방에 먼저 도착한 것은 김상경이었다. 단정한 머리가 인상적인 그는 꿈결같았지만 이제 허망하게 스쳐간 사랑의 그림자를 되새기는 듯 보였다. 그리고 얼마간 초조해 보이기도 했다. 이윽고, 몸매가 드러나는 꽃무늬 드레스를 입은 엄지원이 약간은 도도하고 약간은 무심한 표정으로 들어왔다. “그동안….” 김상경이 말을 꺼낸다. “잘 지냈는지?” 엄지원은 속눈썹이 두드러져 보이게 눈을 내리깐 채 답했다. “… 네.” 약간의 침묵이 흐른 뒤 엄지원이 몸을 확 돌리며 말을 뱉는다. “아니… 그럼… 이만….” 바로 그 순간 김상경의 손이 엄지원의 몸을 꽉 부여안는다. “우리, 잠시, 이러고 있으면 안 될까?”

<화양연화>의 한 장면을 꼭 빼닮은 표지 사진 안에는 이런 사연이 담겨 있을 법하다. 하지만 사정은 영판 달랐다. 김상경은 포마드가 진득한 양조위의 헤어스타일을 만드느라 힘들었다며, “꼴이 이게 뭐냐”며 혼자 웃었고, 엄지원은 장만옥의 표정을 연기하려니 “너무 느끼하다”고 자꾸만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에도 배우는 배우인 법. 정작 촬영에 들어가자 두 사람은 비애를 간직한 남녀처럼 애절한 순간을 창조해냈다.

김상경과 엄지원은 나란히 출연한 홍상수 감독의 신작 <극장전>에 관한 이야기를 사려가며 들려줬다. 아직 누구에게도 공개되지 않았으며, 홍 감독 스스로가 영화 공개 전 미리 알려지길 원치 않는 대목이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종합해본 <극장전>의 이야기는 묘하다. 엄지원이 맡은 영실은 영화 속 영화의 여주인공이다. 영화 속에서 영실은 동갑내기 재수생 상원과 사랑에 빠진다. 김상경은 이 영화를 본 영화감독 지망생 동수 역할을 맡는다. 그는 영화 속 이야기가 자신의 경험과 비슷하다는 것을 느끼고, 극장 앞에서 배우 영실을 만난다. 결국, <극장전>은 영화와 현실이 만나는 어느 순간에 관한 이야기이며, 영화와 또 다른 영화가 교차하는 어떤 지점에 대한 고찰일 것이다. 이 <극장전> 안에서 엄지원은 영화 속 영실과 영화 밖 영실이라는, 사실상 1인2역을 하느라, 김상경은 “난생처음 접하는 이상한 캐릭터”를 연기하느라 진땀을 빼야 했다.

홍상수라는 우주를 구성하는 행성이 되기에 충분하도록 엉뚱하고, 유쾌하며, 무엇보다 배우이기에 앞서 보통 사람 냄새가 나는 김상경과 엄지원이라는 두 존재를, 그야말로 사전적으로 해석해본다. 이름하여 ‘<극장전>을 보기 전 당신이 꼭 알아야 할 김상경, 엄지원의 백과사전’.

자유롭거나 털털하거나_김상경 백과사전

김상경

배우. 드라마 속에서 왕자님으로 등장하다 홍상수 감독의 <생활의 발견>에서 바람둥이 배우 경수 역할로 영화에 데뷔했고, 이어진 <살인의 추억> 속 서태윤 형사, <내 남자의 로맨스> 속 김소훈으로 등장하며 한국 영화계의 주요 재원으로 자리잡았다.

김상경하다

1. 그냥 배우로 살아가다. “내게 어떤 수식어를 붙이는 건 싫어요. 그냥 배우스럽다가 좋아요. 그런 걸 보면 거짓말로 포장하는 느낌이 들거든요.” 2. 드라마와 영화를 구분하지 않다. “우리나라 영화인구가 너무 제한돼 있고, 아줌마, 할머니들에게 드라마는 인생의 낙이잖아요. 그런 의미를 갖는 건데 어떻게 드라마가 영화보다 못하다고 말할 수 있겠어요. 올 여름쯤에 드라마에 출연할 계획이에요.”

상경맞다

형용사. 1. 위계질서와 집단논리를 체질적으로 거부하다. “배우가 됐건 제작자가 됐건 집단행동 같은 것을 잘 안 해요. 아마도 대한민국에서 연예인들과 제일 안 친한 배우가 나일걸요. 내가 믿는 것은 인간이 가장 강할 때는 혼자 있을 때라는 거예요.” 2. 주류와 비주류 사이에서 모호하게 살아가다. “남들은 뭐랄지 몰라도 나는 중도를 간다고 생각해요. 내가 이렇게 쓱 보면 주류 같은데 또 어떻게 보면 비주류 같은 그런 존재 아니에요. 홍상수 감독님 영화에도 두번이나 나오는데 드라마도 하고 그런다는 거죠.”

김상경과 홍상수처럼

1. 서로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가 원하는 것을 아는 관계를 지칭. “홍 감독님과 나 사이는 <슬램덩크>의 농구부 감독님과 강백호의 관계 같아요. <생활의 발견> 하기 전에 2∼3일마다 만나서 술먹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해서 그런지 이번에는 잘 이해되고 알아차리겠더라고요. 물론 <생활의 발견> 끝나고 나서도 홍 감독님이 간간이 전화를 하셔서 ‘우리 술먹을까?’, ‘날씨가 너무 좋은데 강릉이나 갈까?’라고 제안하셨고 그때마다 항상 함께했으니까요.” 2. 허물없이 막 대하는 사이를 가리킴. “이상한 게 홍 감독님에게는 처음부터 막 대했어요. <생활의 발견> 대본 보면서 ‘이거 왜 그래요? 왜 나한테 이런 이상한 것 시켜요?’ 막 이랬으니까. 이번에도 내가 ‘이거 이런 거야?’ 그러면 ‘어, 그런 것 같아. 한번 해보자’ 하세요. 그래서 내가 연기를 하면 ‘아이, 그게 뭐야’ 이러신다고요. 그럼 나는 ‘아니, 자기가 그렇게 하라고 해놓고서…’라고 대하죠. 아무래도 서로 잘 맞았으니까 그렇게 대할 수 있었겠죠.” 3. 페르소나 관계 “그런 말을 많이들 하는데, 서로가 서로에게 원하는 것을 가장 잘 표현한다는 생각이 들긴 해요. 그래도 아마 이번 영화의 동수는 홍 감독님의 페르소나가 가장 덜 드러나는 영화가 아닐까 싶은데.”

김상경 동수를 연기하다.

아주 힘들지만 만족할 만한 일에 도전하다. “<극장전>의 동수는 한마디로 설명이 안 되는 캐릭터예요. 영화를 보고 나와서 여배우 영실(엄지원)을 만나고 동창을 만나고 다시 선배를 만나고 하는 인물인데, 정말 이상한 놈이죠. 무슨 정신병자도 아니고 장애인도 아닌 일반적인 사람인데 ‘야시꾸리한’ 면을 갖춘 캐릭터예요. 정말 영화 안 보면 무슨 말인지 모를 텐데…. 그래서 연기할 때도 힘들었어요. 촬영 끝내고 나면 머리가 쪼개질 듯 아팠어요. 평소에 한번도 그런 적 없었는데 이번에는 두통약을 달고 살았다니까. 흰머리도 두배나 늘어서 염색을 했어요. 왜 그런고 했더니 동수란 인물과 나는 사고하는 틀이 완전히 다른 것 같아. 아무튼 기술시사를 봤는데 스스로도 만족했어요. 스크린 안에 내가 완전히 모르는 내가 있더란 거죠.”

김상경 영화 고르듯 하다

아주 천천히 무언가를 선택하다. “<살인의 추억> 이후 한동안 시나리오도 마음에 안 들고, 내 시간도 갖고 싶기도 해서 쉬었어요. 그때는 내가 꼭 지금 아무거나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거고. 근데 지금은 좀 바뀌었어요. 이젠 좀 자주 작품을 하려고요. 이러다가 10년에 한편 찍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젠 70~80% 마음에 들면 할 생각이죠.”

김상경 엄지원 좋아하듯

별 근거없이 누군가를 마음에 들어하다. “이전까지 엄지원씨 나온 걸 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홍 감독님이 어떠냐고 묻기에 ‘아 왠지 좋을 것 같다’고 했어요. 막상 만나보니까 더 괜찮더라고요. 같이 연기해보니까 호흡도 잘 맞았어요. 쟤 연기하네, 쟤 여배우네, 하면 참 재미없는데 전혀 그런 맛 없이 영실에 탁 붙더라고요.”

사랑스럽거나 영민하거나_엄지원 백과사전

엄지원

영화배우. <똥개>에서 순진하면서도 당돌한 다방 레지로, <주홍글씨>에서 비밀을 간직한 첼리스트로 점점 상승하더니 마침내 <극장전>에서 영화배우 영실과 10대 소녀의 1인2역을 맡아 주연으로 등장한 유망주.

엄지원하다

동사. 1. 영화에 전념하다. “제 꿈은 오래도록 배우로 살고 싶은 거죠.” 2. 입을 열 때마다 ‘제 개인적인 소견으로는’이라는 말로 시작하다. “제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김상경씨는 연기를 너무 잘하세요.” “제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배우가 감독을 움직일 수도 있다고 믿거든요.”

엄지원스럽다

형용사. 1. 평소 메모와 일기쓰기를 게을리하지 않다. “메모는 생활이 됐어요. 책에서 좋은 글귀 있으면 TV 옆면에 포스트잇으로 붙여요. 일기는 초등학교 때부터 계속 써요. 감정적으로 많이 움직이는 날 쓰죠. 일기장이 많이 쌓여서 나중에 어떻게 할까 고민이에요. 남들이 보면 안 되는 비밀스러운 보물이니까 은행 금고에 숨겨야 되나.”

2. 소쉬르의 언어이론으로 자신을 설명할 정도로 명민하다. “변혁 감독이 시나리오 작가에게 그러더래요. 엄지원 같은 캐릭터 만들어봐. 변혁 감독이 본 엄지원은 <주홍글씨>에서의 단면이겠죠. 여기 생수가 있고 초코우유가 있어요. 초코우유를 생수라고 부르고 생수를 초코우유라고 부를 수도 있는 거죠. 부르기 나름인 거죠. 그런다고 내용이 달라지지 않죠. 엄지원은 사람들이 부르는 이름일 뿐이지 엄지원스러운 건 제가 정의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3. 좋은 일을 하면서도 그 사실을 밝히는 걸 부끄러워하다. “영화 끝나고 중국 서쪽의 티벳, 몽골 접경의 우르무치에서 의료봉사를 했는데요. 늘 하고 싶었어요. 지금 시작하지 않고 미루면 늦을 것 같았어요. 배우가 아니라 엄지원이란 사람의 삶으로 해나갈 일이죠. 남을 돕는 게 아니라 나를 위한 일이기도 해요… 그런데 얘기해야 해요?”

홍상수 엄지원 바라보듯 하다

너무 사랑스러워 입을 헤벌쭉 벌리고 웃다 또는 바라보기만 해도 흐뭇해할 정도로 좋아하다. “크리스마스가 생일이었는데 감독님이 생일 메시지를 보냈어요. 이 세상에 정말 잘 왔다. 감정을 터칭하는 말이었어요. 이 말은 제가 친구들에게 그뒤로 잘 써먹고 있어요. 촬영(2004년 12월13일∼2005년 2월7일) 끝날 때까지 감독님과 좋았어요. 카리스마가 굉장히 있으시잖아요. 자신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마력이 있으신데 힘들 땐 서로 웃어넘기며 잘했어요. 힘든 일이 두번 있었는데… 항상 힘든 신 있잖아요, 감독님 영화에….”

엄지원 제 눈 자랑하듯

자신의 가장 자신있는 매력 포인트를 자랑하다. “감독님은 너는 눈 빼면 시체래요. 선글라스 끼고 있었더니. 눈이 나와야 돼, 눈 그러세요. 저도 눈이 좋아요. 감정 전달하는 가장 크고 감동적인 요소가 눈빛이죠.”

엄지원 둘째 발가락

밉지만 미워할 수 없는 것을 이르는 말. “두 번째 발가락이 되게 길어요. 거의 손 작은 사람 손가락 수준이에요. 샌들 신으면 노출이 되니까 여름엔 그래요.”

엄지원 가위 바위 보 하듯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술만 마시며 정을 쌓아가는 모양. “이기우(영화 전반부에서 극중 소녀 엄지원과 사귀는 충동적인 10대)씨랑 가위 바위 보 게임(지면 술을 먹는 게임)을 해서 술을 많이 마셨어요. 게임 이유를 아세요? 홍 감독님은 술마시는 건 좋은데 쓸데없는 이야기 많은 건 싫으시대요. 함께 할 수 있고 쓸데없는 말 안 나오고 분위기 다운 안 되고….”

김상경 엄지원 따라다니듯

영화 <극장전> 후반부에서 동수(김상경)가 무작정 우연히 만난 여배우 영실을 따라다니듯 남자가 여자에게 대담하게 작업 거는 것을 이름. “그런 일 있으면 피할 거 같아요. 무섭잖아요. 이상형이 나타난다면 그런 모험을 해볼 수는 있죠. 영실은 당당해요. 그녀는 그럴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라면 피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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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경 스타일리스트 신래영·헤어 메이크업 헤어위고·의상 타임옴므 휴고보스 폴로(랄프로렌)·악세사리 엘리니워치 엄지원 스타일리스트 박유라·헤어 메이크업 뮤제·의상 네이 까라떼레 블루종·악세사리 프시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