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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쌉싸름한 꿈의 시학, 자크 드미 특별전

독창적 프랑스 감독 자크 드미 특별전, 5월11일부터 서울아트시네마에서

프랑스 누벨바그엔 혁신적인 기운이 있었다. 1960년대 초반 고다르를 비롯한 영화감독들은 영화에 관한 글을 썼고, 윗세대 영화인들에 대해 단절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거리로 카메라를 지니고 뛰쳐나간 몇몇 영화인들의 작품은 결국 창조적인 영화운동이 되기에 이르렀고, 당시 젊은 영화인들은 열광했다. 이 누벨바그의 흐름에 이어, 독창적인 영화세계를 구축한 영화감독으로 꼽을 수 있는 인물이 자크 드미다. 자크 드미의 이름을 우리가 쉽게 기억할 수 있다면, 그것은 <쉘부르의 우산>(1964)이라는 영화 탓이다. 전쟁으로 헤어짐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연인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쉘부르의 우산>은, 앳된 카트린 드뇌브의 모습과 함께 오랫동안 기억되는 영화가 될 것이다.

운명에 이끌리는 여주인공 그린 데뷔작 <롤라>

1931년생인 자크 드미는 원래 단편영화 작업 등을 거친 뒤 <롤라>라는 영화로 본격적인 영화인생을 시작했다. 드미의 첫 장편영화 <롤라>는 막스 오퓔스 감독의 후기 걸작 <롤라 몽테>에 바치는 헌사와도 같은 영화이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인 ‘롤라’라는 이름은 의미심장하다. 오퓔스 영화의 주인공 이름을 빌려온 것이자 조셉 폰 스턴버그의 <푸른 천사>(1930)에서 마를렌 디트리히가 연기한 캐릭터의 이름과도 겹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롤라>는 영화사적 걸작들에 대한 존경의 언급 같은 작품이자 비슷한 시기 프랑스에서 움트기 시작했던 누벨바그의 기운에 자크 드미 감독이 영향을 받았음을 암시하는 작품인 것이다. <롤라>를 통해 자크 드미 감독은 자신의 몇 가지 성향을 드러냈는데 그중 하나가 여성의 삶을 강조하는 주제의식, 그리고 인생의 낙관과 비관이 교차함을 바라보는 감독의 독특한 시선일 것이다. 막스 오퓔스 감독이 그랬듯 자크 드미 역시 운명적 힘에 의해 어딘가 이끌려가는 여성 주인공의 이야기를 즐겨 다루게 되는 것이다.

예컨대 오퓔스 감독의 <롤라 몽테>의 여주인공은 “나에게 삶은 하나의 움직임이다”라는 이야기를 하곤 했다. 드미 감독의 <롤라>에서도 여주인공은 만남과 헤어짐, 사랑과 이별의 순간을 마치 자연의 흐름처럼 받아들이고 있다. 어느 비평가는 남성들에 둘러싸여 있지만 궁극적 사랑을 찾는 ‘롤라’라는 여성에 대해 단순하게 하나의 캐릭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크 드미 감독의 거대한 ‘주제’에 가깝다고 지적한 바 있다. 다시 말해서 그의 영화 <천사들의 해안>이나 <로슈포르의 숙녀들> <쉘부르의 우산> 등의 영화에서 발견할 수 있는, 방황하는 듯 무엇인가를 애타게 찾는 여성의 운명이라는 주제가 이 캐릭터에 잘 스며들어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드미의 동반자, 아녜스 바르다, 미셸 르그랑, 라울 쿠타르

자크 드미 감독

드미 감독에게 중요한, 그의 영화에서 잊을수 없는 세 사람이 있다. 첫 번째는 아녜스 바르다. 흔히 누벨바그의 대모로 일컬어지는 바르다 감독은 다큐멘터리와 극영화 등을 꾸준히 만들어온 프랑스 여성감독이다. 그녀는 자신이 암에 걸렸을지 모른다는 공포에 시달리는 어느 여성의 일상을 보여주는 <5시에서 7시까지의 클레오>가 대표작이며 혹자는 이 영화가 남편인 드미가 만들었던 <쉘부르의 우산>과 정확히 ‘상반되는’, 거울의 양면 같은 특징을 지닌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일상과 판타지의 양면 말이다. 아녜스 바르다는 남편인 자크 드미의 삶을 몇편의 다큐멘터리로 만들기도 했다. 이 밖에도 바르다 감독은 영화 <롤라>에서 여주인공이 부르는 노래 작업에 참여하기도 했으며 드미 감독의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하기도 하면서 그의 영화에 대해 무한한 애정을 과시했다. 바르다 감독은 드미 감독 영화의 조언자이면서 그의 영화를 가장 정확하게 이해하는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

두 번째는 미셸 르그랑. 재즈와 프랑스 대중음악, 그리고 남미음악의 색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준 미셸 르그랑의 음악은 자크 드미 감독의 영화에서 중요한 요소가 아닐 수 없다. <롤라>에서부터 시작한 드미 감독과 미셸 르그랑의 공동작업은 <쉘부르의 우산> 외에도 <로슈포르의 숙녀들> 등으로 이어진 바 있다. 특히 <쉘부르의 우산>은 등장인물의 대사가 모두 노래로 처리되어 있어 다른 뮤지컬영화들과 확연히 구분되기도 한다. 이 영화는 그래서 ‘필름 오페라’라는 수식어를 달기도 했다. 프랑스 뮤지컬이라는 장르를 언급할 때 자크 드미의 이름을 빠뜨릴 수 없는 것처럼, 미셸 르그랑의 음악이 없는 그의 영화를 상상하기란 어렵다.

세 번째는 라울 쿠타르. 고다르의 <네멋대로 해라>의 촬영감독이기도 했다. 그는 사진기자에서 출발해 다큐멘터리 미학을 영화 영역까지 확대한 촬영감독으로 평가된다. 고다르 영화뿐 아니라 <피아니스트를 쏴라>와 <쥘과 짐> 등의 누벨바그 걸작은 모두 그가 촬영한 것. 라울 쿠타르는 드미 감독의 <롤라>를 촬영했다. 공간감을 활용하고 있는 <롤라>의 촬영은 감각적이면서 또한 누벨바그의 현장감을 중시하는 영화 노선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빛의 장난스런 움직임을 포착하는, 매혹적 장면이 연이어 이어지는 이 영화를 언급하지 않고서 자크 드미의 영화를 설명하기란 불가능하다.

프랑스 전통 희극의 계승

<달 착륙보다 훨씬 중요한 사건>이나 <추억의 마르세이유> 등 비교적 후기에 발표된 그의 영화들은 동화적이거나 장식적 색채가 짙어졌다. 코미디의 감각은 확장되었으며 춤과 노래를 향한 그의 찬미는 계속 이어졌다. 드미 감독의 영화를 설명하는 좀더 적극적 태도는, 그의 영화를 프랑스의 전통 희극을 계승하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이 된다. <사랑과 우연의 희롱>이라는 작품 등을 발표한 18세기 프랑스 소설가 겸 극작가 마리보, 즉 여성의 심리에 관한 미묘하고 섬세한 분석을 특징으로 하는 그의 희극 전통을 잇고 있음을 일컫는다. 비평가 로빈 우드는 “개인을 강조하면서 이렇듯 모두 다른 개인들의 세계가 서로 호환될 수 없음, 그 우스꽝스런 아이러니를 드러내는 것이 드미 영화의 특징”이라며 지적하기도 했다.

어쩌면, 자크 드미의 영화들은 ‘씁쓸함’이라는 감각을 무기로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영화 <쉘부르의 우산> 연인들은 절절한 사랑에 빠져 있었지만 세월이 흐르고 서로 다른 사람과 가정을 꾸린 뒤, 우연하게 재회한다. 그리고 씁쓸하게 돌아선다. 보는 이를 안타깝게 만들면서 또한 공감할 수밖에 없도록 하는 것, 현실을 빼닮은 멜로드라마적 결말인 것은 아닐지. 자크 드미의 영화는 ‘꿈의 시학’이라는 수식어를 달곤 했지만 그의 영화들은 늘 달콤하지는 않다. 삶의 순간들이 그렇듯.

자크 드미 특별전 일시: 2005년 5월 11일(수) - 5월 19일(목) 주최: 시네마테크 문화학교 서울, (사)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후원: 영화진흥위원회, 주한프랑스대사관 입장료: 6천원 문의: 서울아트시네마 02-741-9782, 745-3316, www.cinematheque.seoul.kr ☞ 상영일정표 보러가기

<작품소개>

롤라 어느 항구, 카바레 댄서인 롤라는 7년 전에 떠난 연인 미셸을 기다리며 아들을 키우고 있다. 그녀는 어린 시절 친구 롤랑, 미국인 해병 프랭키의 구애를 받지만 미셸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으로 그들을 거부한다. <롤라>는 1960년대 프랑스영화에서 가장 로맨틱한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사랑을 찾는 인물들의 모습을 아름답게 그려낸 자크 드미의 장편 데뷔작이다. 라울 쿠타르의 탁월한 촬영, 경쾌한 미셸 르그랑의 음악이 인상적이다. 배우 아누크 에메는 영화를 찍은 뒤 “자크 드미는 내가 처음으로 작업했던 거장 중 한 사람”이라고 논했다. <롤라>는 그녀 연기 인생에서 대표작 중 하나다.

천사들의 해안 폴린 카엘이 “마술적 작품”이라 명명했던 영화. 자크 드미는 장 비고, 장 콕도 등의 감독에게서 적지 않은 영감을 끌어오기도 했다. <천사들의 해안>에서는 시정 가득한 장면들을 선보이고 있는데 이는 장 비고의 영향을 감지하게 한다. 은행 직원인 장은 니스의 카지노에서 도박광 자키를 만나게 된다. 전 재산을 잃을 위기에 처한 자키에게 장은 뜻밖의 행운을 가져다주고, 이때부터 두 사람의 동반관계가 시작된다. 해변을 배경으로 애정의 유희를 펼치는 것이다. 영화에서 니스의 골목들을 근사하게 담아낸 화면은 장 비고의 다큐멘터리 <니스에 대하여>를 떠올리게 한다.

쉘부르의 우산 1964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자크 드미 감독의 명실상부한 대표작이다. 쉘부르 우산가게의 딸 쥬느비에브는 이웃의 자동차 정비공 기이와 사랑하는 사이이지만, 어머니는 둘의 결혼을 반대한다. 그러던 중 기이가 알제리 전쟁에 징집되어 떠나고, 뒤늦게 임신 사실을 알게 된 쥬느비에브는 기다림의 나날을 보내게 된다. 사랑의 슬픔과 고통에 관한 고전 뮤지컬. 영화의 대사 전체가 노래로 처리되어 있는 영화로, 미셸 르그랑이 작곡한 음악이 인기를 끌었다. 기차역에서 두 주인공이 헤어지는 장면, 마지막 엔딩에서 재회하는 장면 등은 이후 적지 않은 멜로드라마에 인용되기도 했다.

로슈포르의 숙녀들 카트린 드뇌브, 자크 드미, 미셸 르그랑 콤비가 다시 모인 뮤지컬영화. 1996년 복원판에서는 아녜스 바르다가 영화를 손보기도 했다. 로슈포르의 쌍둥이 자매 델핀과 솔랑쥬는 무용과 피아노를 가르치며 언젠가 다른 곳에서 멋진 사랑을 하게 되리라 꿈꾸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미국인 작곡가 앤디가 친구 시몽을 찾아 로슈포르에 온다. 이들 사이에서 뭔가 사건이 벌어진다. 카트린 드뇌브와 프랑수아즈 도를레악이 영화 속 자매로 출연하고 있다. 거리에서 펼쳐지는 춤과 노래의 향연은 자크 드미가 프랑스에서 독특한 장르영화를 추구했음을 증명하고 있다. 원색의 의상 역시 영화 볼거리.

당나귀 공주 이색적인 동화적 작품. 샤를 페로의 원작을 각색한 것이다. 먼 옛날 어느 왕국, 상냥하고 예쁜 왕비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자 국왕은 아내와 닮은 공주와 결혼하려 한다. 아버지와의 결혼을 피하기 위해 온갖 요구들을 하던 공주는 당나귀 가죽을 뒤집어쓰고 궁에서 도망친다. 영화의 환상적 분위기는 기시감을 느끼게 하는데 장 콕토 감독의 <미녀와 야수> 등을 연상케 한다. 초현실적 분위기로 가득 찬 <당나귀 공주>에선 장 마레가 국왕으로 열연하기도 했다. 화려한 의상과 세트가 인상적이다. 자크 드미의 판타지적 성향을 남김없이 보여주는 실험작이라 할 만하다.

달 착륙보다 훨씬 중요한 사건 코믹하면서 긴 영화제목으로 잘 알려진 작품. 카트린 드뇌브, 마르첼로 마스트로이안니가 출연해 익살맞은 코미디 연기를 보여준다. 특히 마르첼로 마스트로이안니의 경우, 다른 작품에서 찾기 힘들 만큼 유쾌한 코미디 연기를 과시한다. 파리의 자동차교습소에서 일하는 마르코는 어느 날 현기증을 느끼고 의사를 찾아간다. 의사는 정밀검사 뒤 그가 임신 4개월이라는 진단을 내린다. 의사들과 언론은 이 사건이 인류에 달 착륙보다 중요한 진보를 가져올 것이라 흥분하지만 마르코와 그의 연인 이렌느는 혼란스럽기만 하다. 남자의 임신, 이를 둘러싼 소동극을 통해 현대 문명을 풍자하고 있다.

추억의 마르세이유 가수 겸 배우인 이브 몽탕이 출연해 춤과 노래를 선사한다. 그가 실명으로 출연하는 점도 이채롭다. 마르세유에서 젊은 시절을 보낸 이브 몽탕은 자신의 지난날을 그린 뮤지컬 공연을 위해 마르세유를 방문한다. 공연 연습 도중 그는 아리따운 가수지망생 마리온의 방문을 받게 된다. 자크 드미의 유작으로, 자크 드미가 할리우드 뮤지컬영화들에 바치는 일종의 헌사와도 같은 작품이다. 배우들이 탭댄스를 추며 <사랑은 비를 타고> <뜨거운 것이 좋아> 등의 주제가를 부르는 장면은 놓쳐서는 안 되는 명장면이다. 자크 드미 연출작 중에서 시각적 묘미가 가장 뛰어난 작품 중 하나다.

낭트의 자코 <낭트의 자코>는 1990년 세상을 떠난 남편 자크 드미의 유년 시절에 관한 영화로, 아녜스 바르다 감독작이다. 낭트의 어린 소년 자코는 정비소를 운영하는 아버지와 미용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세상은 전쟁으로 어수선하지만, 자코에게는 여전히 인형극과 영화를 보는 것이 큰 행복이다. <낭트의 자코>는 자크 드미가 어린 시절에 겪었던 일과 그가 나중에 만든 영화장면을 번갈아 보여준다. 유년 시절 감독의 경험을 이후 그가 만들어낸 작품과 연결하는 실험은 아녜스 바르다 이외의 감독이라면 연출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노년의 자크 드미의 모습도 볼 수 있다.

로슈포르, 25년 후 흥행적으로 크게 성공한 <쉘부르의 우산>과 함께 자크 드미에게 세계적 명성을 안겨준 뮤지컬영화가 <로슈포르의 숙녀들>이다. 이 작품의 개봉 25년을 기념하여 제작한 다큐멘터리. 당시 영화의 배우들과 스탭들이 인터뷰에 응했다. 흥미로운 것은 당시 영화에 엑스트라로 참여했던 로슈포르 주민들이 등장하여 경험을 말해준다는 것이다. 출연자들은 영화의 제작과정에 얽힌 여러 이야기들과 이 영화가 자신들의 삶과 로슈포르라는 작은 마을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들려준다. 이제는 프랑스 여배우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카트린 드뇌브 등의 출연자들이 세월을 뛰어넘어 출연하고 있다.

자크 드미의 세계 스스로 영화감독이기도 한 아녜스 바르다가 남편 자크 드미에 대한 애정을 담아 만든 다큐멘터리. 자크 드미의 영화에서 발췌한 장면들과 함께 배우와 스탭, 가족들이 들려주는 영화를 둘러싼 뒷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다. 자크 드미가 영향을 받았던 영화감독에 관한 에피소드 역시 담겨 있다. 자크 드미의 영화세계가 자신들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고백하는 관객의 이야기 또한 감동적이다. 아누크 에메를 비롯해 자크 드미 영화에서 주연을 맡았던 대부분의 여배우들이 인터뷰에 기꺼이 응했다. 자크 드미의 영화에 출연할 뻔했던 해리슨 포드의 인터뷰도 포함되어 있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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