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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밖엔 난 몰라, <남극일기>의 송강호
사진 정진환문석 2005-05-12

사진 속의 이 남자, 무척 푸근해 보이는. 모르시는 분이 없을 겝니다. 혹시나 싶어서 그의 주요사항을 읊어봅니다. 이름 송강호. 한국의 대표배우. 서민 또는 소시민 캐릭터의 달인. 개런티를 가장 많이 받는 배우 중 하나. <씨네21> 충무로 파워50에서 배우로는 5년 연속 1위. 그리고 또…. 하여간 이 배우를 쨍쨍한 늦봄에 선유도 공원에서 만났습니다.

대충 감 잡으셨겠지만, 이 양반이 출연한 새 영화가 곧 극장에 내걸립니다. 제목은 <남극일기>랍니다. 남극 대륙엔 도달불능점이란 곳이 있답니다. 전문용어로 ‘상대적 접근 불가능 남극점’이라 불리는 여기는 남극 해변에서 상대적으로 가장 내륙에 위치한 지점이라네요. <남극일기>는 그곳을 정복하려는 탐험대원 6명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래요. 여기서 송강호는 탐험대의 대장 최도형 역할을 맡았습니다. 여기서 잠깐. 송강호가 나오니까 코믹한 영화 아니겠어, 라고 지레 짐작하시는 분들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정반대입니다. 도달불능점을 향해 가는 탐험대 앞에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현상이 일어나고 대원들끼리의 갈등도 불거지고 한다는, 인간의 헛된 욕망과 어리석음을 보여주는 다소 어두운 얘기라네요. 여기서 송강호는 대원들의 희생을 무릅쓰고서라도 도달불능점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독불장군으로 등장한다니, 낄낄, 시시덕거리는 건 진작 포기해야겠습니다.

그러고보니 이 배우가 심각한 표정으로 등장했던 영화가 가물가물합니다. 유괴됐다 죽은 딸아이의 원수를 갚는 중소기업 사장 역으로 나왔던 <복수는 나의 것> 이후론 처음인 셈인데요. 아닌 게 아니라 스스로도 우려를 했다는군요. “처음에는 부담도 되고 어떻게 비칠까 걱정도 되고 그랬는데, 기술시사를 보고 나니까, 내가 봐서는 그렇게까지 걱정을 끼칠 만큼은, 우헤헤헤, 아니더라고요.”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배경이 줄곧 남극인 탓에 전체 촬영기간 9개월 중 2개월은 뉴질랜드의 설산에서 진행됐대요. 그런데 촬영과정을 듣고나니 꼭 부러워할 것만도 아닙디다. 그를 비롯한 스탭과 배우들은 매일 새벽 4∼5시에 기상해서 밥 먹고 차로 1시간30분 동안 촬영장으로 이동해서 해가 지는 5시 반까지 꼬박 촬영을 했답니다. “그런데다가 기후가 갑자기 바뀌어요. 남극에서 분다는 블리자드 있죠. 폭설하고 폭풍. 그게 불었다가는 또 한치 앞이 안 보이게 새하얀 안개가 끼는 화이트아웃이 됐다가, 그러니까 일정을 맞추기가 힘들어요. 게다가 뉴질랜드 스탭들은 공무원들처럼 시간 딱딱 재가며 일을 하니 모두 고생했어요. 결국 다들 외롭고 힘들어했다고.”

으흠, 그렇군요. 예? 이런 악조건보다 더 힘든 게 있었다고요? “연기요, 연기. 이 영화는 연기자가 기댈 데가 없어요. 여러 인물이 나와 다양한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도 아니고 여러 상황이 있는 것도 아니니. 하얀 눈밭하고 달랑 여섯명의 배우뿐인데 그 큰 스크린을 어떻게 메우겠냐고. 결국 연기의 밀도밖에 없어요. 대사 하나도 긴장감 없이 한 게 없고, 프레임 하나도 그냥 방치한 게 없어요. 그러니깐 관객 눈을 피할 수 없는 2시간짜리 진한 연극무대 같더라고.” 그래도 어디서도 맛볼 수 없었던 색다른 경험이었다니 다행입니다. 그런 성취의 뿌듯함도 시나리오를 받은 지 2년6개월 동안 고민한 덕분이었을 거고, 크랭크인 전에 3박4일 동안 합숙하면서 배우끼리 대사 리딩만 했던 것도 큰 도움이 됐겠죠.

베테랑 탐험대원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2003년 겨울에 피닉스파크에서 가졌던 3박4일 훈련도 보람이 있었답니다. 보통 극점탐험대가 끌고 다니는 썰매가 100kg인데, 송강호도 실제로 100kg 넘는 썰매를 끌며 실감나는 자세를 배웠다네요. 아, 예, 104kg이던 임필성 감독을 짐칸에 태우고서 스키장 꼭대기까지 오르느라 고생 많으셨겠습니다. 그런데 이 배우, 그 혹독한 훈련을 받는 와중에도 잔머리를 굴렸다네요. “훈련 마지막 날 그 꼭대기에 텐트를 치고 자기로 돼 있었어요. 우리를 지도했던 박영석 대장, 이번에 북극점 밟으신, 그분이 여기서 하룻밤만 자보면 느낌이 올 거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바람이 장난 아닌 거야. 얼어죽겠더라고. 그래서 내가 에이, 박 대장님 뭐 그런 것을, 진지하게 얘기를 해주시면 될 것을… 따뜻한 방에서 소주 한잔 하면서…. 이러면서 가까스로 내려왔죠.”

그런데… 고생한 분 얼굴치곤 좀 부한… 것 같네요. 1월에 촬영을 마치고 아무 일도 안 하다보니 10kg이나 늘었답니다. 워낙 움직이기 싫어하는 걸로 유명하고 영화 외엔 별다른 취미도 없는 양반인지라. 정말 송강호의 머릿속에는 영화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의 외출이란 게 동네 뒷산에 오른 것 말곤 사흘에 한번꼴로 편집실에 들른 것뿐이라니 말입니다. 편집실에서 자신의 장면을 자르지 말아달라고 청탁을 하는 건 아니랍니다. “일단 내가 워낙 심심하거든요. 아하하. 영화가 궁금하기도 하고. 내 최선을 다한다는 의미도 있고. 그리고 100의 90은 내 장면을 자르자고 먼저 이야기하는 편이에요. 영화가 중요한 거죠.” 영화라는 일에 중독된 워크홀릭이라고밖에 달리 설명될 길이 없네요. 그런 점이 한 제작자로 하여금 “송강호는 출연만으로 작품까지 인정받게 하는 힘을 가진 배우”라고 말하게 했나 봅니다. 어쩌면 송강호야말로 남극대륙의 끝을 향해 무모한 걸음을 내디뎠던 <남극일기> 속 최도형처럼, 연기와 영화라는 대륙의 도달불능점을 향하는 탐험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송강호를 읽는 키워드 넷

도달불능점 누구에게나 도달불능점이란 게 있는 것 같아요. 그 어떤 사람이건 모든 걸 다 가질 순 없는 거고, 뭔가를 가지면 잃는 게 있거든요. 연기에서의 도달불능점? 지금은 판단을 못할 것 같아요. 많은 세월이 지나고 나서, 허허 내가 이렇게 부족한 점들이 많았구나, 이런 느낌이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하는 거죠.

무모한 도전 도달불능점을 향해 가는 최도형을 이해는 하죠. 하지만 자연인 송강호로선 감당 못할 정도로 강인한 사람이자, 또 나약한 사람이 아닌가, 생각해요. 그에 비하면 저는 되게 현실주의자죠. 배우 송강호는 비슷한 점이 있겠죠. 후반작업에 늘 같이 하고 싶은 것은 완성본이 나오기까지 최선을 다하려고 애쓰는 차원이에요. 1초라도 좋아질 수 있고 보충할 수 있다면 끝까지 가보려는 거죠.

육체성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이번 영화에서 몸으로 막 부딪치는 건 없어요. <반칙왕>이라면 몰라도. <남극일기>는 액션의 현란함이 아니라 오히려 심리적인 데 초점을 맞추는 영화죠. 만약 이게 <빙우>처럼 빙벽 타고 그런 거라면 아예 난 안 했지. 우헤헤헤. 아, 이거는 딱 보니까 그냥 걸어가기만 하면 되는구나 싶어서. 으하하하. 난 되도록이면 몸을 안 움직이려는 쪽이잖아요.

화이트아웃 뉴질랜드 촬영 첫날 첫 장면을 찍는데, 테이크를 21번 갔다고. 그 전날 악몽을 꾸고 잠을 못 자겠는 거예요. 이런 적이 없었는데. 비싼 돈 들여 이 먼 데까지 왔는데 우리가 원하는 대로 찍고 갈 수 있을지 부담이 됐던 것 같아요. 게다가 조그만 천막 안에서 촬영을 하는데 뉴질랜드 스탭 30명하고 한국 스탭 30명이 동시에 떠들고 있으니 머릿속이 하얗게 되더라고요. 고생해가면서 21번 만에 겨우겨우 오케이를 받았는데, 장면이 너무 설명적인 것 같아서 편집에서 그 신 전체를 잘랐어요. 감독님한테 아주 잘 잘랐습니다라고 했어요. 푸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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