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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숏컷] 누구나 악마가 될 수 있다

<모래와 안개의 집>

<모래와 안개의 집>을 보고 나니, 우울해졌다. 결말 자체가 음울한 때문이기도 하지만, 점점 늪으로 빠져드는 그들을 보는 것 자체가 더욱 힘들었다. <모래와 안개의 집>은 한채의 집을 둘러싼 분쟁을 그리고 있다. 아버지의 유일한 유산을 실수로 경매에 넘겨버린 여인과 모든 것을 잃고 미국에 와서 새 출발을 하려는 이란 출신의 남자. 여자는 집을 되찾으려 하고, 남자는 내놓지 않으려고 한다. 서로의 갈등이 고조되면서 스릴러물이 되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지만, <모래와 안개의 집>은 오히려 그들의 마음을 헤집어보는 것으로 일관한다. 그들은 자신의 것을 지켜야 할 이유가 있었고, 그것을 위한 선택을 한다. 그들은 각자의 정의를 위해 행동하는 것이다. 그걸 신념이라고도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 신념과 선택 때문에, 그들은 파멸한다. 서로를 파멸시킨다. <모래와 안개의 집>을 보고 나서 우울했던 이유는, 그런 그들이 사악하다거나 이상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들은 그냥 우리의 이웃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뺏긴 것이 억울해서 고함을 지르고, 때로 과격한 행동을 하기도 한다.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해 고집을 부리며 타인의 말을 듣지 않고, 간혹 법에 호소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정말 화가 나거나, 억울해지면 뭔가 못된 짓을 하기도 한다. 남자가 조금만 여인의 호소에 귀를 기울였다면, 여인이 조금만 더 자신의 선택에 고심을 했더라면 파국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릇된 선택을 하고, 나락으로 떨어진다. 우리 모두가 그렇다.

기시 유스케의 <검은 집>에 나오는 ‘마음이 없는’ 유형의 인간을 제외한다면, 우리 대개가 그런 인간이 아닐까. <모래와 안개의 집>에 나오는 것보다 더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 더 사악한 짓도 할 수 있다. 뭔가 특수하거나, 단지 미쳤기 때문이 아니다. 그런 마음은 어쩌면, 우리 모두의 내면에 이미 존재하는 것들이다. 오래전에 부천서 성고문 사건이 있었다. 대자보로, 신문기사로 사건의 개요와 주변 상황을 알게 되면서 이상하게 머리에 남아 있는 사실이 있었다. 가해자가 독실한 종교인이라는 것. 그 시절에는 그저, 그가 위선적인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평일에 온갖 끔찍한 일들을 저지르고도, 주말에는 기도하며 스스로를 용서받는 자. 신이 용서했는지는 몰라도, 아마 그는 스스로를 용서했을 것이다. 그런 위선으로 자기를 속이고, 가족을 속여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어쩌면 그는 위선자가 아니라 자신의 그릇된 혹은 이기적인 신념을 절대화시킨 것일 수도 있다. <인터프리터>에서 아프리카의 소국 만토바의 대통령 주와니는, 한때 민중의 영웅이고 민주투사였지만 지금은 모든 정적을 살해하고 민중을 학살하는 독재자다. 그는 왜, 어떻게 변해버린 것일까. 그토록 잔인하게, 성자에서 학살자로 바뀌어버린 것일까. 아니, 아마도 바뀐 게 아닐 것이다. 그의 내면에는 그런 잔인함과 독선, 욕망 같은 것들이 존재했지만 그걸 억누르고 있었던 것뿐이다. 하지만 조건이 바뀌고, 다른 상황이 오자 그는 마음껏 자신의 본성 중 일부분을 드러낸 것이다. 과거의 주와니도 주와니고, 지금의 주와니도 주와니다. 운동권 출신이 오히려 더 지독하고 한심한 기득권자로 바뀌는 모습을 수없이 봐왔지 않은가. 그들은, 바뀐 상황에서 자신의 본성(의 일부분)을 마음껏 분출하는 것이다. 변한 게 아니라.

성선설과 성악설 중 택해야 한다면 나는 성악설을 택할 것이다. 하지만 가장 정확한 것은 인간의 마음에는, 선과 악이 공존하는 것이다. 누구나 성자가 될 수 있고, 누구나 악마가 될 수 있다. 그걸 택하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이다. <모래와 안개의 집>을 보면서, 나는 그들의 선택에 절망해야만 했다. 우리는 왜, 아니 나 자신은 왜 이리도 어리석은지. 성자가 되는 길은 선명하지만, 욕망을 버리는 것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모래와 안개의 집>을 보고 나니, 더 우울해진다. 그건 미국의 현실이 아니라, 인간의 역사 그 자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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