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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이 독자에게] <극장전>을 보고

오랜만에 홍상수 감독 인터뷰를 하면서 그와 처음 이야기를 나눴던 때가 떠올랐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개봉을 앞둔 1996년의 어느 날, 당시 <씨네21> 기자였던 김영진 선배와 난 너무나 낯선 영화를 만든 이 신인감독에게 물어볼 것이 많았다. 지금보다 훨씬 날렵하고 젊었던 홍상수 감독의 첫인상은 흔히 볼 수 있는 지식인 같았다. 그러나 영화에 대한 이야기로 깊이 들어가면서 그의 언성은 높아졌고 기자의 상투적 질문이 무색할 답변들이 쏟아져나왔다. 그건 그가 만든 영화만큼 색다른 경험이었고 일종의 정신적 충격이었다. 홍상수 감독을 만나기 전까지 자기 영화의 방법론을 그처럼 일목요연하게 설명하는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 영화이론서에서 결코 본 적 없는 사유체계를 접하면서 영화란 무엇인가에 관한 내 생각도 많이 바뀌었다.

나는 <극장전>이 지금까지 홍상수 영화 가운데 가장 좋다. 솔직히 홍상수 영화가 얼마나 진보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 그의 영화는 언제나 전작에서 한 단계 훌쩍 점핑했다는 느낌을 준다기보다 나선형으로 미묘하게 변한다는 느낌이다. 따라서 좋다는 것은 우선 정서적인 측면에서다. 한마디로 <극장전>의 인물들은 하는 짓이 귀엽기 짝이 없다. 감독은 연출의도에서 ‘희극의 효과’라는 표현을 썼는데 정말 영화보는 동안 내내 키득키득 웃었다. 홍상수 영화의 인물들이 우스꽝스런 행동을 하는 건 늘 있는 일이지만 <극장전>에서 그들은 속이 시커먼 속물 지식인이 아니라 정말 평범한 사람들처럼 보인다. 홍상수는 그만큼 너그러워진 것일까.

또 하나 <극장전>은 솔직하다. 홍상수는 번번이 비슷한 이야기를 겹쳐놓는 서술법을 택하는데 이번엔 톡 까놓고 두 이야기가 영화와 현실이라고 구분했다. 막상 우리가 보는 것은 비슷한 영화 두편인데 왜 그랬을까. 홍상수 영화의 핵심 가운데 하나가 이 질문에 들어 있다. 그는 우리가 갇혀사는 이데올로기의 작동방식이 영화가 관객을 길들이는 방식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양쪽 모두 우리가 스스로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튼튼해 보이는 무엇인가에 손쉽게 기대게 만든다는 점에서. 따라서 영화와 현실(또는 기억이나 모방 아니면 무엇이라 이름 붙이든 두 이야기) 양쪽에 구멍을 뚫어 인식체계의 혼란을 불러오는 홍상수 영화의 귀결점은 이상한 불안감이다. 그건 스와 노부히로 감독이 9·11 테러에 대해 했던 말을 연상시킨다. “9·11 테러가 발생했을 때 우리가 받은 느낌이나 감각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다. 의미화되지 않은 이미지에는 그처럼 사람을 불안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그런데 예컨대 오사마 빈 라덴의 사진 같은 것이 함께 몽타주되면 우리가 맨 처음 느꼈던 그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불안감은 사라지고 모든 것이 이것이 원인이고 이것이 결과라는 식으로 그럴싸하게 의미화된다. 의미화되면서 하나의 스토리가 형성되고 우리는 그것을 통해 안심할 수 있게 된다.” 홍상수 영화가 끝났을 때 일종의 어지럼증이나 체증이 생겨나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가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무의미’이다.

“생각을 해야 한다.” 난 <극장전>의 이 대사가 좋다. 웃기고 절묘한데다 솔직하다. 그건 또 다른 계몽이 아니라 사람이 그 정도 결심은 할 수 있다(물론 결심한 대로 살진 못하겠지만!)는 감독의 믿음처럼 보인다. <극장전>의 결말이 남긴 것도 일종의 불안감이지만 동시에 그래도 숨통이 트인다는 느낌을 받았다. 무의미에서 비롯되는 불안과 그래도 살 만하다는 느낌이 양립할 수 있는가? <극장전>은 무엇보다 그 균형이 완벽한 영화라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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